손 내민 민희진 vs 대답 없는 방시혁…선택은 하이브 주주들 몫
입력 2024.06.04 07:00
    취재노트
    화해 제안한 민희진, '경영자 자질' 어필해
    "어도어의 이익이 주주 이익…숫자로 증명"
    묵묵무답 하이브…주주는 '일할 사람' 원해
    추후 대응으로 시장에 명확한 메시지 줘야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개저씨들”, “맞다이로 들어와” 등 수많은 거친 어록(?)을 남기며 대중에 어필한 첫 번째 기자회견과 달리, 두 번째 기자회견에서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경영자’로서의 자격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법원에서는 승기를 잡았으니, 이제는 ‘주식회사 하이브’가 보여준 행동에 대한 의문을 던짐과 동시에 향후 본인에게 중요한 명분이 되어줄 시장(주주)에 호소한 셈이다.

      5월30일 법원은 민 대표가 하이브에 대해 신청한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다음날 오전에 열린 어도어 임시주주총회에서 민 사내이사는 유임돼 자리를 지켰다. 하이브는 어도어의 사내이사 2명을 해임시키고, 신임 사내이사로 김주영 CHRO, 이재상 CSO, 이경준 CFO의 사내이사 선임안을 통과시켰다. 

      그날 오후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두 번째 기자회견을 열고 소회를 밝혔다. 민 대표는 “펀치를 한 대씩 주고받았으니 이제 됐다고 생각하고 삐지지 말자”며 하이브에 타협을 제안했다. 민 대표는 “인간관계가 얼마나 복잡한데, 공개적으로 다 얘기를 할 필요가 있나. 대의적으로 어떤 게 더 실익인지 생각을 해서 모두에게 더 좋은 방향을 (고민하자)”고 말했다. 

      민 대표는 “주식회사는 한 사람만의 회사가 아니고, 여러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또 하나의 사업적인 비전을 위해 다 같이 가야 하는 조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제가 어도어를 위해 헌신하며 일을 한 것이 하이브에도 큰 기여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법원에서도 배임이 아니라고 판결이 된 상황에서 이제 건설적인 방향으로 논의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시 한번 판이 바뀌어야 하고, 모두를 위해서 어떤 결정을 할지 재고가 필요하다. 감정적인 부분들을 내려놓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경영자 마인드”라고 말했다. 

      민 대표 입장에서는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는 것이 가장 최선의 대응이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법원에서는 승기를 잡았고, 예상대로 하이브 측이 어도어 이사진을 교체했으니 이제 ‘판을 뒤집을’ 결정은 하이브에 넘겨졌다. 추가적으로 민 대표의 배임을 증명해 법적 대응에 나설지, 아니면 수백억원의 벌금과 추가 발생가능한 비용을 감당하고 민 대표를 해임할지는 전적으로 하이브의 선택이다. 민 대표와 ‘불편한 동거’를 이어갈지 ‘극적 화해’를 이룰지도 하이브에 달렸다. 

      민 대표가 두 번째 기자회견을 예고한 뒤 하이브 주가는 장 중 5% 넘게 빠졌지만, 민 대표가 하이브 측에 화해를 제안하면서 장 막판 상승 반전했다. 

    • 손 내민 민희진 vs 대답 없는 방시혁…선택은 하이브 주주들 몫 이미지 크게보기

      하이브 측은 추후 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진 않았다. 다만 보도자료를 통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후속 절차에 나설 계획"이라며 추가 대응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이브가 민희진 대표를 배임으로 지목하고 ‘경영권 찬탈 의혹’을 시작하고, 주가가 요동치는 동안에도 방시혁 의장 등 하이브 경영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방시혁 의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달 28일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이 국내 기업인들을 만나는 자리에 나타난 정도다. 민 대표는 “저번 기자회견 이후 방시혁 의장과 대화나 대면 등 소통이 있었나”는 질문에 “전혀 없었다”라고 답했다. 

      하이브가 잠잠한 동안 민 대표는 적극적으로 시장에 ‘경영자 자질’을 어필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민 대표는 “경영인은 숫자로 증명해야 하고, 기간 안에 어느 정도의 수익을 내고 회사에 어떤 이익을 줬느냐가 실제 ‘배신감’의 척도”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보이 그룹이 통상 5~7년 만에 내는 성과를 걸그룹으로 2년 만에 냈다”며 “경영인으로 보여야 하는 자세는 숫자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숫자가 나오지 않으면 경영인으로서 질타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 대표는 “(주주들이) 이런 불확실성 리스크를 계속 가지고 가는 게 맞나 의구심이 든다. 저희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고 일을 하게 하면 이익을 내고 그게 결국 주주환원 아니냐”라고 말했다. 

      하이브가 어떤 결론을 향해 갈지는 모르겠지만, 민 대표가 ‘정공법’에 나선만큼 하이브도 시장에 제대로 된 메시지를 던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하이브는 이번 사건으로 잃은 게 적지 않다. 조 단위 시총이 증발됐고, 음반 몰아주기 등 각종 의혹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으며, 연쇄효과로 소속 아이돌들을 향한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K팝 팬덤 사이에선 ‘하이브 반사이익’으로 타사 아이돌들이 ‘재조명’ 받고 있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물론 민 대표 입장에서도 잃은 것이 없지 않다. 그가 말한 것처럼 엄청난 법률자문 비용에 더해, 시장의 평판도 호불호가 갈렸다. “만약 민희진 대표가 하이브를 나와 새로운 회사를 차린다면, 투자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대형 VC 등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민 대표가) 투자자를 정말 무시했다고 보여서 다시 신뢰 쌓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회의적 반응과, “나라면 투자하겠다. 뭐라도 하지 않겠나”는 긍정적 반응을 동시에 보였다.

      동시에 그가 대중의 호응을 얻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엔터테인먼트업의 본질이라면, 민 대표는 이번 사태로 대중을 ‘즐겁게 하는’ 차원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걸그룹 뉴진스도 ‘난관을 극복하고 데뷔한’ 아이돌이라는 귀중한(?) 서사를 얻었다. 

      이번 사태가 향후 대한민국 기업들이 보일 갈등 양상을 예고했다는 평가도 있다. 하이브가 신흥재벌 회사인 만큼 형제간의 싸움처럼 ‘승계’ 문제는 아니지만, 앞으로 이런 신산업 기업에 일어날 수 있는 유사한 문제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총수(오너)는 경영진을 믿을 수 있을지, 투자자는 경영진을 믿을 수 있을지, 경영진은 이 회사를 믿을 수 있을지라는 문제가 드러났다. 

      한 대형 사모펀드 대표는 이런 관전평을 내놨다.

      “지금 대한민국의 재벌 총수들은 모두 방시혁 의장 입장에 공감하면서 이 사건을 보고 있겠죠. '내 회사인데, 역시 (경영진들) 믿지 못하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