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R은 2조 중반 원하지만…투자사들 '몸값 과도'
매립 사업 전망과 현금흐름 평가가 밸류의 관건
"맥쿼리도 드롭" 매도자-투자사 시각차 좁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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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태영그룹 계열 폐기물처리업체 에코비트 매각 숏리스트(적격예비인수후보)에 국내외 사모펀드(PEF) 운용사 네 곳이 선정됐다. 앞서부터 기대 몸값이 높아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 가운데 투자자들 사이에서 현재 매도자가 원하는 밸류(기업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한 분위기다. 실사 후 에코비트의 핵심 사업인 매립지 사업에 대한 평가가 향후 가격 격차를 줄이는 데 관건이 될 전망이다.
금융투자(IB)업계에 따르면 태영그룹과 에코비트 매각 주관사인 UBS·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은 인수 숏리스트로 IMM PE·IMM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 싱가포르 케펠인프라스트럭처트러스트, 홍콩 거캐피탈(Gaw Capital), 칼라일그룹을 선정했다. 매각 대상은 에코비트 지분 100%이다. 매도자 측이 2조원대 중반 안팎의 매각가를 원하는 것으로 거론된다.
지난달 31일 UBS와 씨티증권은 에코비트 매각을 위한 예비입찰을 진행했다. 예비입찰에는 이번 숏리스트에 선정된 곳들 외에도 MBK파트너스, 블랙록자산운용, 미국 인프라 투자 전문 회사 스톤피크가 참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숏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IMM PE와 IMM인베스트먼트는 컨소시엄을 맺고 참여했다. 당초 IMM PE측과 IMM인베스트먼트는 별개로 딜을 진행하려고 했으나, 막판에 컨소시엄으로 선회했다.
규모가 큰 딜이고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만큼 굳이 '한지붕 아래'에서 경쟁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평이다. IMM PE과 IMM인베스트먼트는 각각 컨소시엄으로 입찰하지 말자는 원칙을 갖고 있지만, 이번 태영건설(에코비트) 딜은 특수성이 있기도 하고 펀딩 측면에서도 힘을 합치는 것이 이점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파악된다.
케펠인프라는 싱가포르 케펠그룹 계열사다. 케펠그룹은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이 대주주로 있는 상장사로, 선박과 인프라 투자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다만 케펠 측이 2조원이 거론되는 딜에 뛰어들 자금이 부족한 상황이라 최종 승기를 잡을 가능성이 크진 않다는 관측도 있다. 타사와 경쟁력을 고려해 매도자인 KKR이 케펠 측에 FI(재무적 투자자)를 구해주겠다는 제안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거캐피탈은 부동산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운용사다. 작년 4분기 기준 운용 자산 규모가 359억달러 수준이다. IMM인베스트먼트 출신 조현찬 상무가 인프라 부문 대표 겸 한국 총괄을 맡고 있다. 국내 시장에는 오랜만에 등장한 이름으로, 숏리스트에 포함된 타사들에 비해 제시할 수 있는 가격에서 경쟁력이 있을 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칼라일은 해당 딜을 한국 사무소에서 주도하고 있는데, 최근 칼라일의 투자 및 회수 성과가 미미하고 글로벌 펀딩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라 한국에 투자할 동력에 의문도 없지않은 분위기다. 특히 칼라일이 국내에서 비슷한 종류의 딜을 진행한 경험이 많지 않아 실사 이후 투자 의지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숏리스트가 선정된 상황이지만 여전히 매도자와 매입자 간의 기업가치 눈높이 차가 큰 분위기다. 현재 매도자 측이 원하는 2조원 중반대의 가격은 원매자들의 자금 여력을 고려하면 성사되기는 어렵다는 평이다.
에코비트의 몸값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은 매립 사업의 전망이다. 에코비트의 실적 절반 이상을 매립사업이 차지한다. 시간이 갈수록 매립지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이 지금의 매각가에 의구심을 가지는 이유다.
특히 코로나 상황에서 수요가 높아지고 매립 단가가 높아지면서 매립지 사업의 밸류가 두 배 이상으로 높아진 점이 고려된다. 코로나 이전 수준 밸류를 고려하면 현재 매도자가 원하는 가격대는 과도하다는 것. 매립 단가가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실제 기업가치를 이전 수준으로 봐야한다는 시각이다.
결국 추후 매립 사업의 현금흐름(캐시플로우)이 어떻게 될 것인지가 관건이다. 에코비트가 지금 요구되는 가격에 응당하는 현금흐름이 창출될 만큼의 매립 공간이 있는지 투자자들 사이에서 의구심이 남아있다. 매도자 측은 현재 개발 중인 6곳의 매립장 사업까지 포함해 가치를 인정받길 바라지만 새 사업장들이 아직 인허가 단계인 점은 불확실성을 남기고 있다.
PE 입장에서는 인수가가 높을수록 인수 후 엑시트(투자 회수) 선택지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조 단위 매물을 다시 받아줄 만한 플레이어들은 한정적이다.
인프라 투자 차원에서 접근하는 투자자들은 인프라 투자 수준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는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맥쿼리자산운용이나 EQT파트너스 등 인프라 성격 거래에 강점이 있는 투자자들이 불참한 점을 고려하면 실사가 진행되면서 가격을 두고 줄다리기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숏리스트로 선정된 투자사들은 곧 VDR 실사(Virtual Data Room Due Diligence)를 개시할 예정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맥쿼리처럼 인프라성 딜에 경험이 많은 투자자들은 에코비트의 밸류를 2조원 이하로 보고 불참한 것이고, KKR은 그 가격으로는 매각할 수 없으니 다소 생소한 곳들이 여럿 들어온 것 같다”며 “정확한 밸류 측정을 위해 매립 사이트별로 매립량 등을 정확히 파악하는 실사가 중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투자자들의 실사가 진행되면서 추후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에코비트의 투자성이나 가격에 여전히 의구심은 있지만, 인수 후에 손해만 나지 않으면 PE들 입장에서는 운용보수를 챙길수 있는 큰 딜이기 때문에 매도자 측과 가격이 맞춰지면 어쨌든 거래는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