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대 1 가뿐히 넘어…청약일 겹쳐도 단타 나서는 기관들
본래 목적인 '합병 상장' 사례는 줄어…고평가 논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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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주 시장 열풍이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시장으로까지 번진 이래 '이상과열'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보통 10대 1을 넘지 않던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이 1000대 1을 넘어서며, '가급적 청약일을 겹치지 않게 한다'는 증권사간 암묵적인 동의도 깨진 상태다.
과열된 공모주 열기에 사실상 원금이 보장되면서도 초과수익이 가능한 스팩에 기관 자금이 몰리며 생긴 현상이란 분석이다. 스팩 시장이 일종의 투기판으로 변질되며 존재 목적이 흐려지고 있단 지적이 적지 않다. 정작 스팩 합병을 통한 상장 성공 사례는 줄어들고 있어서다.
6월 한 달간 청약에 나서는 스팩은 총 8건이다. 한국스팩14호, 미래에셋비전스팩5호, 에이치엠씨아이비스팩7호, KB스팩29호, 미래에셋비전스팩6호 등 5건은 수요예측 기간이 겹쳤다. 이 중 4곳은 지난 11일 청약일까지 겹쳤다. 통상 스팩의 경우 청약일을 겹치지 않게 계획을 짜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처럼 여겨졌는데, 이것이 깨진 것이다.
이들 모든 스팩의 수요예측 경쟁률은 1000대 1을 가뿐히 넘어섰다. 일반 청약 경쟁률도 300대 1에서 700대 1까지 형성되며 '1주 받기도 힘들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올해 2분기 증시 문턱을 넘은 스팩들의 수요예측 경쟁률은 모두 1000대 1 이상을 기록했다. 특히 4월 22일 상장한 신한스팩13호는 133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2분기 중 가장 높은 성과를 냈다.
상장 첫날 시초가도 여전히 높게 형성되는 모습이다. 다만 5월 중 상장한 스팩들은 공모가 대비 시초가 등락률이 100% 이하로 나타나는 분위기다. 특히 KB스팩28호의 등락률은 16.5%에 그쳤다. 1분기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스팩들의 등락률은 대체로 100% 수준이었던 것과는 상이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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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권 장세 속에 기관들이 스팩을 사실상 '저위험 차익거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첫날 공모가 상승이 400%까지 가능해지면서 당일 시현할 수익이 높다는 점을 매력으로 꼽히고 있다. 원금보장이 가능한 부분도 장점이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장기투자를 지향하는 기관들의 경우, 목돈을 들여 스팩 공모에 참여해 몇 주만 받자니 가성비가 떨어지니 참여를 잘 안하려는 분위기"라며 "과거 LG에너지솔루션 등 공모주에 참여해 높은 수익률을 시현해본 기관들을 중심으로 스팩 단기투자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파악된다"라고 말했다.
다만 스팩 시장이 투기장으로 변질되는 데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스팩은 타 법인과의 합병을 목적으로 해 공모 상장하는 명목회사로, 직상장 조건을 맞추기 어려운 기업들은 자금조달 우회로로 택해왔다. 그러나 스팩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합병 상장이 어려워지거나 스팩 투자자들이 합병 대상 기업에 대해 고평가를 지적하며 불만을 제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일례로 피아이이 등이 꼽힌다. 실제로 합병 성공률이 높지 않은 점은 수년 전부터 문제시돼 왔다.
스팩 합병 이후 주가가 하락한 사례가 늘어난 것도 스팩 시장을 투기장으로 만드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스팩 합병을 통해 상장한 모비데이즈는 상장일 주가 대비 75.94%가량 주가가 하락한 상태다. 에스에이티엔지 또한 2600원대 주가가 1700원대로 하락했고 휴럼도 2800원 수준에서 1000원대로 주가가 주저앉은 상태다.
스팩 상장 당일 주가가 하락, 공모가 수준으로 내려가면 기관들이 스팩 물량을 순매수하는 모습도 나타나곤 있다. 미래에셋비전스팩4호는 상장 이후 이틀간 연속 순매수세가 지속되는 추이가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합병 상장 전 물량 확보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스팩 합병 상장을 통해 증시에 입성하려는 기업들의 펀더멘탈에 의문을 갖는 목소리가 늘고 있고 상장 이후 주가가 하락곡선을 그리면서 스팩 상장이 쉽지 않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라며 "이런 와중 스팩 상장 첫날 주가 상승을 기대하며 투자에 나서는 기관들로 스팩 제도 자체의 목적이 희석되고 있다고 보여진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