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은 자식 일이라면 비싼 자문비용도 선뜻
재벌들이 앞서 이혼·자녀 관리로 로펌 찾아와
대형로펌 변호사도 '고객 관리' 사건 수임 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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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법률시장 성장이 부진한 가운데 계속 수요가 늘고 있는 시장이 있다. ‘이혼과 학폭(학교폭력)’이다. 이혼은 재산분할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고, 학폭은 자식 문제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부모들 덕에 대형 로펌들도 사건 수임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업계에서는 "요즘 대한민국 법률시장은 이혼과 학폭이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최근 서울의 한 로펌에 지방 중견기업 사모님이 찾아왔다. 의뢰인은 남편의 오랜 여성 편력을 견디다 결국 직접 증거를 수집해 이혼 소송을 결심하고 로펌을 방문했다. 지방의 탄탄한 중소기업 기업 가치가 수천억대임을 고려하면, 재산분할 규모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이혼 사건은 수임료나 성공보수가 계약을 하기 나름인데 재산 분할 규모가 클수록, 상급심으로 갈수록 보수도 커지게 된다”며 “다만 이 분야도 변호사들 경쟁이 심하고 의뢰인들도 법률비용은 어떻게든 ‘덜 쓰고’ 싶어 해서 기대보다 수익이 적을 때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혼 사건은 대형 로펌 입장에선 딜레마가 있다. 대형 로펌 입장에선 컴플라이언스 이슈가 있고, 의뢰인 입장에선 법률 비용이 부담스럽다. 이런 이유로 대형 로펌들은 이혼 등 가사 분야는 크게 공을 들이지 않아 왔다.
이혼 소송의 경우 유책 배우자가 뚜렷한 경우가 많고, 맞소송을 시작하면 법률 대리인 입장에서는 무조건 재산을 ‘지키는 쪽’보다는 ‘받는 쪽’이 유리한 면이 있다. 대한민국의 상황상 남편이 ‘지키는’, 부인이 ‘받는’ 경우가 많다. 협의이혼이 아니라 소송전까지 가는 경우 유책이 인정되는 경우는 외도나 가정 폭력 등 ‘확실한’ 상황이 많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들은 주요 대형 로펌들과는 자문 계약이 맺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반대 편’에서 일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에는 이혼 사건의 재산 분할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고 수요가 늘어나면서 대형로펌도 인력을 보강하고 수임에 나서는 분위기다. 사적 이슈를 꺼리던 재벌가들도 참지 않고 이혼 소송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정몽익 KCC 글라스 회장과 부인 최은정 씨의 이혼 소송이 대표적이다. 정 회장이 2013년에 최 씨를 상대로 먼저 이혼 소송을 제기했지만 불륜 등 정 회장의 유책이 인정되면서 2016년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최 씨는 2019년 정 회장이 두 번째 이혼 소송을 내자 맞소송에 나섰고 1100억원대 재산분할을 요구했다. 결국 2022년 이혼 조정이 성립됐고 재산분할 규모는 수백억원 대로 알려진다. 정 회장 측 법률대리는 법무법인 로고스, 최 씨의 법률대리는 법무법인 율촌이 맡았다.
현재 진행 중인 스마일게이트 창업자 권혁빈 CVO(최고비전제시책임자)의 이혼소송은 법무법인 화우가 권 CVO의 법률 대리를 맡고 있다. 이번 최태원 SK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김앤장이 최 회장 대리를 맡았다.
한 대형로펌 가사 변호사는 “이혼 소송은 개인 비용이기 때문에 재벌들도 법률 비용을 부담스러워하는데, 대형로펌은 수임료를 싸게 해주는 대신 기업자문 등 후속 거래들을 약속 받는 식으로 일감을 맡는다”며 “로펌 입장에서도 재벌들의 ‘가장 가려운 곳’을 해결해 주면 앞으로 그룹과의 관계에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혼과 더불어 최근 법률 자문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분야는 ‘학교폭력(학폭)’ 등 청소년 사건이다. 2012년부터 학교가 학폭 가해학생에 조치한 사항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하면서 이미 법률시장에서 학폭 전문 변호사 수요가 늘어난 지 오래다.
통상 학폭 사건으로 부모들이 서초동 법률 사무소 등을 찾지만, 최근에는 청소년들의 법률 사건 범위가 성·경제범죄 등으로 확장하면서 대형로펌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성범죄의 경우 중형 선고를 받게 되고, 고등학생만 되어도 형이 확정될 재판 기간을 고려하면 성인 수준의 형량이 나올 수도 있는 사건이라 ‘필사적’으로 변호해야 한다.
꼭 민사나 형사 등 해당 분야 변호사가 아니고 M&A 등 타 분야 변호사들도 고객의 이슈를 해결해 주기 위해 사건을 수임하기도 한다. 기업자문의 경우 기업가들과 네트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고객 관리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직접 변호에 나서는 것이 아니어도 사건을 수임해 온 것만으로 수임료를 일정 부분 나눌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학폭이나 성범죄 이슈들은 원래 연예인 고객이 많았다. 기업과 달리 연예인은 컴플라이언스 이슈가 없기 때문에 대형 로펌들도 연예인 사건은 종종 맡아왔다. 배우 한예슬이 과거 자신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 온 유튜버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할 때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한 바 있다. 배우 하정우는 과거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 관련 법적 대응에서 율촌·태평양·바른 등의 도움을 받았다.
‘자녀 이슈’라면 재벌 오너가 3세 이슈들도 빼놓을 수 없다. 오너가 이슈가 터지면 초기 대응은 그룹 법무팀단에서 나서지만 이어 재판 등 ‘A부터 Z까지’ 종합적인 대응에 나서려면 로펌의 도움이 불가피하다.
2021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장남이 새벽에 음주운전(도로교통법 위반)을 하고 약식 기소를 받아 벌금형을 받았다. 2019년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도 변종 마약을 흡연하고 밀반입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바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은 2010년 호텔 종업원 성추행 폭행 및 집기파손, 2017년엔 주점 종업원 폭행ㆍ순찰차 파손으로 구속 기소됐고 수개월뒤 대형로펌 변호사들 상대 음주폭행 사건사고를 일으킨 바 있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집안이 부유할수록 부모들이 자식 일이라면 돈을 아끼지 않고, 최근에는 외동 자녀가 많다 보니 부모들 입장에서는 하나 있는 자식을 ‘실패’ 하지 않기 위해 처벌 경감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한다”며 “대형 로펌 변호사들도 자신의 분야에 한정 짓지 않고 고객의 일이라면 일감을 수임해서 해결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