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건설사도 안전하지 않다"…브릿지론 단계서 표류하는 사업장 수두룩
입력 2024.06.20 07:00
    본PF 못넘어간 조단위 사업장들 상당수
    자회사 매각, 인력 감축 통해 유동성 확보
    "PF 우발채무 부담 증가…손실 확대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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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가 중소형 건설사를 넘어 대형 건설사까지 확산하고 있다. 브릿지론 단계에서 본PF로 넘어가지 못하고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는 사업장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사업적·재무적으로 비교적 탄탄하다고 평가받는 10대 건설사들도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긴축 경영에 돌입하는 등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현대건설은 가양동 CJ 공장 부지 개발, 가양동 이마트 부지 개발, 르메르디앙호텔 부지 개발, 힐튼호텔 부지 개발 등 조 단위 대형 프로젝트들이 본PF로 넘어가지 못한 채 브릿지론 연장을 거듭하고 있다. 현대건설의 브릿지론 규모는 약 4조2000억원이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현대건설과 동일한 신용등급(AA)을 보유한 건설사들의 전체PF(본PF, 브릿지론) 가운데 브릿지론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 정도다. 70%의 브릿지론 가운데 대부분(약 94%)를 현대건설이 차지하고 있다. 

      단순히 브릿지론 비중이 크다는 점이 부실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사업 현장에서는 불확실성이 크단 위기감이 감지된다. 실제로 일부 대규모 프로젝트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사업비가 부족한 사업장엔 현대건설이 기존에 제공한 보증과 더불어 추가로 보증을 서는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대구 등 일부 지방 사업장의 경우 본PF 전환 후에도 착공을 못 하는 사업장이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GS건설은 인천 검단 아파트 주차장 붕괴 사고 보상, 부동산 경기 둔화 등으로 작년 연간 영업손실 3385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고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현재는 스페인 수처리 자회사 GS이니마 매각을 통해 유동성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GS이니마는 GS건설이 2012년 인수해 지분 100%를 보유한 글로벌 수처리 기업으로 GS건설 연간 영업이익의 15%를 차지하는 알짜 회사다.  GS건설이 지분 20%를 매각한다면 3000억원가량의 현금조달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하반기 이후 자금 조달 환경이 악화하면서 본PF로 전환하지 못하고 브릿지론의 차환 연장을 이어오는 프로젝트가 늘어났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신용도가 우량한 AA급의 신용보강이 증가하는 점은 조달 환경 악화로 과거 대비 건설사의 PF 우발채무 부담이 늘고, 이로 손실이 확대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건설사가 신용보강을 제공한 브릿지론 사업장이 부실화할 경우 채무인수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으며 후순위 대출에 대한 신용보강일 경우 담보매각을 통한 대금 회수가 어려울 수 있다.

      건설업계의 사업환경은 당분간 녹록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고금리·고분양가로 위축된 부동산 수요로 미분양 리스크는 이어질 것이며, 이에 건설사의 유동성 대응력도 떨어지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금융당국의 부동산PF 사업장 관리 계획 아래에서 유의, 부실우려 단계에 해당하는 사업장 관련 익스포져 포함 여부에 따라 건설사의 PF우발채무 현실화 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며 "특히, 재무역량 대비 브릿지론 등에 대한 우발채무 부담이 높거나, 관련 PF 대출의 만기가 단기화돼있을 경우 해당 관리 계획 하에서 영향이 크게 나타나 신용위험이 상승할 전망이다"고 밝혔다.

      불황이 깊어지면서 건설사들은 긴축경영에 돌입하는 등 나름의 생존전략을 짜고 있다.

      10대 건설사 중 재무구조가 가장 양호하다는 시장 평가를 받는 DL이앤씨마저 주택부문 직원 1200명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이미 DL이앤씨는 지난 3월 31일 대대적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마창민 전 대표를 포함해 임원 18명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주택(6명)·토목(7명) 부문이 대부분이다. 작년 말 기준 DL이앤씨의 미등기 임원이 57명임을 고려하면 전체 임원 중 3분의 1이 물러났다. 

      대우건설은 6월부터 1년 동안 최장 2개월의 유급 휴직제도를 시행했다. 본사 직원 1500명 중 필수 인력 20%를 제외한 인원이 최장 2개월 휴직한다. 이 기간 지급되는 급여는 기본급의 50% 수준이다. 휴식을 통한 재충전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지만, 외부에선 인건비 절감이 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흥그룹은 2022년 대우건설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최소 5년 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기로 합의한 바 있는데, 최근엔 대우건설 출신 주요 인력이 정리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롯데건설은 사업현장 인력을 내보내고 해당 자리에 본사 인력을 채워 넣는 것으로 전해진다. 건설사가 긴축경영에 돌입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행태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롯데건설은 지난 3월 말 도급사업에 대한 PF우발채무는 4조3100억원으로 자기자본 2조6500억원 대비 과도하다는 분석이다. PF우발채무 중 브릿지론은 3조6600억원으로 그 비중이 높은 수준이다.

      포스코이앤씨는 상무급 이상 임원의 급여를 10% 이상 삭감하기로 했다. 한화 건설부문도 그룹 방침에 따라 임원 급여의 20%를 반납하기로 했다. GS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은 작년 실적에 대한 성과급이 없다고 전해진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주요 건설사의 전반적인 수주 기조는 '보수'다"며 "양질의 사업장만 수주를 검토하거나, 상반기에 시장 동향을 파악하며 수주 대신 기존 사업장 관리에 집중하는 곳이 늘어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