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E&S 붙여 SK온 지원 여력 확보 의도로 풀이
상장-비상장 합병, SK이노 주가 부진 변수 될 듯
배당 줄어들 SK㈜ 주주, 기존 FI 동의 여부 미지수
전기차 부진한데 근본적 해결책 될까 의구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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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이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룹 안에서 관리 가능한 회사들을 합쳐 SK온 살리기에 힘을 싣겠다는 것인데 실제 실행까지 난관이 적지 않다. 상장사와 비상장사간 합병 비율 산정 문제부터 각 회사의 주주와 투자자까지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푸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일 SK이노베이션은 SK E&S와의 합병 보도에 대해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합병 등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고 공시했다. 아직 차주 열릴 경영전략회의의 공식 안건으로 오르진 않았지만 다양한 시나리오 중 하나로 고심하고 있다.
SK온 고민 해결에 알짜 SK E&S 카드까지 검토
SK그룹은 수년간 SK온의 부진에 발목이 잡히고 있다. 전기차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매년 수조원의 설비 투자금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 그 동안 다양한 방도를 활용했거나 검토 중이지만 시장의 관심은 시들하다. 그룹 수뇌부의 역점 사업이다 보니 어떻게든 보릿고개를 넘길 방도를 찾아야 했는데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이 새로운 방안으로 부상한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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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과 SK E&S는 지주사 SK㈜의 자회사이자 SK그룹의 중간지주회사다. SK이노베이션이 SK온 지원 부담에 허덕이는 반면 SK E&S는 그룹의 재무 부담을 완충해 준 알짜 회사로 꼽혀 왔다. 합병 시 SK온이 모회사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을 여지가 더 커진다. 이 외에 SK온에 SK E&S의 일부 사업을 붙이면 회사의 재무 부담도 줄어들게 된다.
SK온은 2차 상장전투자유치(프리 IPO)를 추진 중이고, 이 외에도 다른 대기업과 사업을 주고 받는 빅딜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러나 이 경우 실행 주도권을 시장이나 거래 상대방에 내줄 수밖에 없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은 SK그룹 안에서 능동적으로 해결책을 찾는다는 의미도 있다.
상장 SK이노-비상장 E&S 합병비율 산정 고민
이 합병안은 여러 선택지 중 상대적으로 쉬운 안으로 볼 수 있지만 실제 실행을 위해선 난관이 적지 않다. 당장 두 회사를 어떤 비율로 합칠 것인지부터 고민이다.
SK이노베이션은 상장사고 SK E&S는 비상장사다. 관련 법에 따라 상장사와 비상장사를 합칠 경우 상장사는 이사회 결의일(혹은 합병계약일) 전날을 기준으로 1개월-1주일-최근일 평균종가를 산술평균하고, 비상장사는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가중산술평균해 합병가액을 정한다.
20일 SK이노베이션 주가는 합병 기대감에 급상승세를 보였다. 미리 이사회 결의를 통해 가격을 정해두지 않았다면 향후 합병가액을 산정하는 데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예외 규정에 따라 상장사는 합병 가치가 자산가치에 미달할 경우 자산가치를 활용할 수도 있다. 즉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 이하라면 1배에 맞춰 합병가액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PBR 0.5배를 밑돌지만 예외 규정을 활용할 경우 시가보다 높은 수준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시가에 힘을 주면 SK이노베이션 주주, 자산 가치에 힘을 주면 SK E&S 주주에 불리해진다. 두 회사가 SK그룹 소속이라 하더라도 주주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법에 따라 상장사는 기준 시가, 비상장사는 본질 가치로 합병을 추진해야 하는데 SK이노베이션 주가가 낮다는 걸림돌이 있다"며 "물론 시장 가치가 PBR 1배보다 낮을 경우 자산 가치를 적용할 수 있지만 이 경우는 SK E&S 쪽에 불리해진다"고 말했다.
이사회, 주주에 기존 투자자까지 복잡한 이해관계
SK㈜와 SK이노베이션, SK E&S의 각 경영진과 이사회가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데 사외이사들은 책임 소지가 발생할 사안에 대해서는 적극 동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SK E&S로선 앞으로 어느 정도 부담이 생길지 모르는 SK온의 상황에 끌려들어가는 것이 달갑지 않다. 총수익스왑(TRS) 형태로 들어와 있는 주주 입장도 마찬가지다. 일부 사업을 SK온과 붙이는 안 역시 SK E&S에 크게 득이 되지는 않는다.
SK이노베이션 주주들 역시 PBR 1배에 버금가는 수준에서 합병이 논의되지 않는 한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 반대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이 몰리면 자금 사정 빡빡한 SK이노베이션이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SK E&S는 지난 5년간(2019~2023년) 각각 7300억원, 6547억원, 3857억원, 6308억원, 5270억원을 배당했다. 지분 90%를 가지고 있는 SK㈜의 핵심 자금줄이다. 나아가 SK㈜의 주주들이 믿는 구석이기도 했다. 그런데 SK이노베이션과 합쳐지면 배당 여력은 상당 부분 SK온 지원에 쓰일 가능성이 크다. SK㈜ 이사회나 외부 주주들이 이를 반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외부 세력에 공격의 빌미를 줄 수도 있다.
SK E&S는 2021년 글로벌 사모펀드(PEF) KKR에서 2조원 이상의 자금을 유치하며 도시가스 자회사들을 상환 자산으로 제시한 바 있다. 합병 시 계약 상대방이 달라지니 KKR의 동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SK온 쪽은 더 복잡하다. 1차 프리IPO를 통해 들어와 있는 국내외 투자자가 많다. 마찬가지로 수익 보장 계약의 주체가 SK이노베이션에서 합병회사로 바뀔 수 있으니 동의를 얻어야 할 수 있다. SK온 투자자들이 배터리 외 이종 사업을 붙이는 것을 반길지 미지수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과 SK엔무브의 합병 검토도 진행한 바 있다. SK㈜ 아래 SK이노베이션, SK E&S의 상황과 비슷한데 SK엔무브 재무적투자자(FI)가 반대 의사를 밝히며 초기에 논의가 중단됐다.
SK E&S 합친다고 2차전지 재무부담 끝날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을 통해 SK그룹의 2차전지 고민이 완전히 해소될 것이냐다.
SK이노베이션만 있을 때보다는 SK온에 대한 지원 여력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고, 우량 회사로서 자금 조달도 보다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기차 수요 부진이 예상보다 장기화하면 그룹 전체로 위기감이 확산할 수 있다. 연 수천억원의 배당 역량이 얹어지더라도 수조원대 설비 투자금에 비하면 살림이 빠듯할 것으로 예상된다.
합병 회사가 SK온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새로운 고민이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 증자를 추진하며 주주들의 격렬한 반대에 마주해야 했다. 결국 배터리 시장에 대한 시장의 분위기가 좋지 않기 때문인데, 이는 합병회사 체제에서도 동일하게 이어질 수 있는 고민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합병 시 SK E&S의 배당 여력은 SK온에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큰데 SK E&S나 SK㈜의 주주들이 이를 반길지 의문"이라며 "황금알을 낳던 거위(SK E&S)의 배를 갈라서 그룹 전반이 어려워지는 길로 가는 게 아닐지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