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CIO 참석하는 행사 중요도 높아져
최근에는 외국계 운용사들까지 가세해
출자 공고 없지 않지만 중견 PE 자리는 줄어
관심있는 딜 파악해 프로젝트 출자라도 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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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한 행사에 참석해 세컨더리 PD(Private Debt; 사모대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앞선 연사들이 주요 대체투자 이슈를 모두 언급해 새로운 주제를 찾다 보니 나왔던 이야긴데, 바로 다음날 한 운용사가 세컨더리 PD 딜을 들고 찾아와 놀랐습니다" (한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LP)인 연기금·공제회의 출자 기조가 깐깐해지면서,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지고 있다. 펀드레이징이 급하거나 트랙 레코드가 필요한 PE 입장에선, 어떻게든 출자금을 따내기 위해 주요 연기금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연단에 서는 행사에 참석하는 일이 중요해졌단 평가다.
이와 같은 행보는 LP와의 접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형 PE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통상 일정 규모 이상의 PE들은 이미 국내 기관들과 '네트워킹'이 잘 형성돼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소형 PE와 더불어 국내에서 펀딩을 진행하는 외국계 운용사들도 행사에 참석하는 빈도가 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대형 공제회 관계자는 "국내외 가릴 것 없이 다양한 GP들을 만나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GP들과 주로 소통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소형, 또는 신생 PE의 경우 어차피 쉽게 출자받지 못할 것을 알기에 찾아오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갈수록 출자 환경이 얼어붙고, 외국계 운용사까지 펀딩 경쟁에 가세하면서 중·소형 PE의 설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 운용사가 투자 행사에 참석해 연기금 CIO의 '입'에 주목하는 이유도 블라인드펀드 출자금을 따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CIO가 관심을 보이는 프로젝트 딜이라도 따내려는 움직으로 풀이된다.
사실 출자 공고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은 현재 역대 정기 사모투자 출자액 가운데 가장 큰 1조5500억원 규모로 위탁운용사를 선정하고 있다. 공무원연금공단 역시 4년 만에 국내 PEF 출자 사업을 재개했다. 4개 운용사에 총 1400억원을 출자한다. 외려 지난해보다 기관의 출자금액 자체는 늘었다.
다만 중·소형 PE의 입지는 더 줄었단 평가다. 국민연금은 PEF 분야에 총 4곳의 운용사를 선정하는데, MBK파트너스부터 VIG파트너스 등 쟁쟁한 후보들이 지원서를 제출했다. 이들과 경쟁해 승기를 잡는 것은 쉽지 않다. 공무원연금공단 역시 중형분야 지원 기준을 AUM 2조원으로 상대적으로 높게 설정해 지원서 접수 자체가 5~6곳 정도에 그쳤다.
프로젝트의 경우에도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여전히 보수적인 기조를 취하고 있다. 프로젝트 출자 시장의 큰 손 MG새마을금고가 출자 비위가 불거지며 지갑을 닫은 상황에서, 연기금·공제회 등도 감사 등을 고려해 프로젝트 출자를 최소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프로젝트 위주로 덩치를 키워야 하는 중·소형 PE 입장에선 현재 기관투자가가 관심있어 하는 딜을 파악해 그에 맞는 투자건을 제안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실제로 CIO 한 마디에 다음날 세컨더리 PD 딜을 들고 찾아간 운용사의 일화는 PEF 운용사들의 '조급함'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세컨더리 PD라는, 아직은 국내에는 생소한 딜까지 발굴해 LP를 찾아갈만큼 출자금을 따내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컨더리펀드란 벤처캐피탈, 사모펀드, 자산운용사 등이 기존에 투자한 포트폴리오를 다시 인수해 수익을 내는 펀드로, 그동안은 주로 사모 주식투자 시장 위주로 활성화됐다. 다만 최근 고금리가 이어지면서 자금 재조달(리파이낸싱)이 어려워지자, 이와 같은 세컨더리펀드가 사모대출 시장까지 확장됐다.
한 연기금 CIO는 "LP와 GP라는 관계의 특수성도 있겠지만, 예전보다 확실히 말 한마디 한마디에 GP가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며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