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추진 전 '체급 확대'·정체성 찾기'에 몰두
SK실트론 활용법 부상에도 잠잠…"기대로 그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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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리밸런싱에 착수한 SK그룹의 자금 조달 수단 중 하나로 기업공개(IPO)가 언급되고 있지만, 당장 실행 가능한 선택지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적격상장(Q-IPO) 조건으로 외부 투자를 받은 계열사들 마저도 정체성 및 체급 문제로 인해 구체적인 움직임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SK그룹 계열사에 자금을 투입한 재무적투자자(FI)들은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룹이 원하는 만큼의 기업가치(밸류에이션)을 인정받는 게 쉽지 않음에도, 눈높이를 낮추지 않고 있는 게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그룹 계열사 중 연내 상장은 물론, 향후 1년 이내에 상장이 가능한 회사는 사실상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적격상장 요건으로 투자를 유치한 계열사 SK에코플랜트(2026년), SK온(2028년), SK엔무브(2027년) 역시 마찬가지라는 평가다.
SK에코플랜트는 일찍이 주관사를 선정하긴 했으나 상장 추진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SK온은 연초 외국계 증권사들로부터 미국 증시 상장 시 장단점을 담은 자료를 제공받는 등 상장 시장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아직까진 정해진 바 없다는 입장이다.
법원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으로 하여금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로 1조원 이상의 재원을 지급하라고 한 데 따라 SK실트론의 상장 시나리오가 수면위로 떠올랐지만 기대감으로만 그치는 분위기다.
상장에 한 차례 실패한 계열사들은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원스토어는 지난해 말 FI들로부터 투자유치를 받으며 IPO 약속 시한을 2028년으로 미뤘다. 11번가는 최대주주인 SK스퀘어가 매각 주도권을 FI에 넘기며 상장 기한을 연장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FI와의 조건 재협상에 나설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으나 최근 신선식품 배송업체인 오아시스가 지분 인수 제안을 하면서 국면이 달라지고 있다.
상장을 앞둔 계열사는 많지만, 그룹은 무엇보다도 'SK온 살리기'에 총력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고의 혹은 중과실로 Q-IPO에 실패할 경우 그간 SK온에 자금을 투입한 FI들은 조기상환청구권(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SK온이 지난해 중순까지 유치받은 자금은 5조원 수준이다. 약속한 대로 2028년까지 100조원의 기업가치로 증시에 입성해야 하는데 수익성 저하에 발목이 잡힌 만큼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SK온은 지난해 5818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SK온과 SK엔무브의 합병 시나리오가 제기된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란 지적이 나온다. SK엔무브는 꾸준히 실적을 내는 등 그룹 내 캐시카우라는 인식이 있다. 합병을 통해 SK온의 실적 개선을 꾀하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다. 다만 FI인 IMM크레딧솔루션(이하 ICS)가 해당 시나리오에 반대한 상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수익자들 또한 SK온과 SK엔무브 합병으로 예상 가능한 장밋빛 시나리오만을 믿고 합병안을 쉬이 수락할 순 없는 노릇이다"라며 "수익 뿐만 아니라 사업성까지 의문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SK온을 살리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보긴 한다"라고 말했다.
현 시점에서는 SK온의 모회사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두 기업의 합병 비율을 결정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주주들간 이해관계 조율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SK E&S는 SK이노베이션과 달리 돈을 버는 회사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분기 연결기준 976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SK E&S 주주의 반발이 예상되는 배경이다. 두 기업이 합병하고 자회사인 SK온에 유동성이 공급된 이후 상장 추진이 가능할 것이란 설명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SK E&S와 SK이노베이션은 삼성증권을 자문사로 선정해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된 조언을 구하는 등 꽤나 진정성 있게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합병이 마무리 돼야 SK온도 실적을 개선하고 상장 절차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에코플랜트 또한 상장을 앞두고 밸류에이션 고민이 크다. SK에코플랜트는 건설사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수년간 친환경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러나 실적은 부진하다. 지난해 순이익은 적자전환을 했다. 건설업황은 악화했고 환경기업 인수에 따른 비용 부담이 그 원인이다. 물론 주요 매출처인 SK하이닉스의 업황 개선을 기대해볼 법 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SK에코플랜트는 '환경기업'으로 명확하게 포지셔닝, 유사기업군을 피어그룹에 포함시켜 원하는 몸값을 인정받는 것이 직면한 과제로 파악된다. 주관사에서도 SK에코플랜트의 상장 추진을 위해 건설부문을 인적분할하는 등 지배구조 관련 조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SK에코플랜트 FI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상장 추진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제기되는 분위기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SK에코플랜트는 FI들에게 상장 추진에 대한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모습을 적잖이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라며 "시장에서는 IPO 신호탄으로 해석했던 IPO 추진 관련 태스크포스(TF)를 조직한 것도 투자자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었다"라며 "상장까지 아직 여유가 있으나 조금 지켜볼 필요는 있다"라고 말했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소송 2심 법원 판결 이후 SK실트론 또한 상장 후보군으로 떠올랐다. 최태원 회장은 SK실트론 지분 29.4%를 보유하고 있다. 해당 지분을 유동화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최태원 회장과 해당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총수익스왑(TRS) 계약을 맺고 있는 한국투자증권이 그 역할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아직은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삼성증권은 TRS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