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매칭 나서야 하지만 녹록지 않아
주요 기관 출자 거르고 결성 시한도 촉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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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상반기는 주요 기관투자가들의 사모펀드(PEF) 출자 일정이 겹치며 어느 때보다 운용사(GP)들의 각축전이 치열했다. 어렵사리 운용사 지위를 따낸 곳들도 속이 편치만은 않다. 펀드 결성 시한은 넉넉지 않은데 큰손 출자자(LP)나 은행들은 출자에 나서기 어렵거나 시기를 늦추는 모습이다. 하반기 내내 자금 매칭을 둔 경쟁이 뜨겁게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예년엔 국민연금이나 산업은행 등 중량급 기관들은 서로 두 세달 시간 여유를 두고 출자 계획을 밝히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는 여러 기관이 동시에 움직였고, 5~6월에 운용사 실사 및 프리젠테이션(PT) 일정이 몰렸다. 주요 운용사 경영진들은 투자 활동은 잠시 내려놓고 자금을 따내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경쟁 강도도 예년보다 더 치열해진 분위기다. 작년 이후 한앤컴퍼니와 MBK파트너스 등 해외서 주로 자금을 받던 대형사가 국내 출자 시장에 뛰어들며 사실상 큰 자리 하나씩이 줄어들게 됐다. 최근 기관들이 회수 성적을 중시하는 터라 운용사들은 회수액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막판까지 급박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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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쟁한 운용사들이 기관들의 선택을 받았지만 갈 길은 멀다. 상반기 콘테스트 성적표가 좋지 않은 곳들도 다 이름값이 있다 보니 하반기에도 비슷한 강도의 경쟁을 감수해야 할 전망이다. 수천억원 수준의 현실적인 펀드 목표 규모를 정한 곳들이 많지만 현재 시장 상황에선 그조차도 달성하기 녹록지 않아 보인다.
주요 기관 중에서 올해 콘테스트를 거르려는 곳들이 적지 않다. 교직원공제회는 내년 상반기 중 PE 출자 사업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에 약정한 출자금도 제대로 소진되지 않은 상황이라 출자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고 있다. 이 외에 사학연금이나 행정공제회 등도 올해 PEF 출자를 하지 않는 쪽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팬데믹 시기 PEF의 구원자로 떠올랐던 시중은행들도 출자 여력이 줄었다. 정부의 대형 정책펀드에 잇따라 동원되며 위험가중자산(RWA) 관리가 어려워졌다. 정책펀드나 일반 PEF나 위험 가중치가 같아 정부 일을 먼저 신경쓰면 민간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다. 하반기에도 계속 정부의 대형 정책펀드 자금 수요가 있다. 출자 여유가 없는 은행들은 찾아온다는 운용사를 만류하느라 진땀을 빼는 분위기다. 펀드 결성에 쏠쏠한 자금을 대던 캐피탈사들도 지주사의 눈치를 보고 있다.
한 PEF 운용사 대표는 “시중은행은 큰 손이면서도 콘테스트 부담 없이 자금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지만 정책펀드 출자 부담 때문에 일반 PEF에는 출자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핵심 출자자(앵커 LP)만 잡으면 중소형 기관들이 앞다퉈 자금을 붙여줬겠지만 이제는 경쟁 강도 심화, 출자자군 축소 등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 주요 사업에서 목표치 절반을 채우고 시작해도 쉽지 않다. 기관들은 펀드당 출자 한도가 있기 때문에 매칭 자금을 제대로 모으지 못하면 기존에 따낸 출자금 규모도 줄어들 수 있다. 하반기 험로가 예상되다 보니 올해는 아예 출자 경쟁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운용사도 나타나고 있다.
시간 여유가 넉넉한 상황도 아니다. 조 단위 대형 PEF들은 길게는 2년간 자금 조달 기간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국내 기관들은 짧게는 수개월, 길어야 1년인 경우가 많다. 산업은행, 한국성장금융 등이 주관하는 정책 성격이 짙은 펀드들은 올해 안에 1차 자금 모집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촉박하다.
다른 PEF 운용사 대표는 “산업은행 쪽 펀드는 일정 기간에 정책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특징 때문에 펀드 결성 기간이 짧다”며 “멀티 클로징이 허용되긴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빠듯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