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 달 새 시총 격차도 4兆 축소...최선호주 시각 변화
펀더멘탈보다는 리더십ㆍ청사진에 따라 움직여온 양사 주가
"KB, 다음 먹거리 제시해야"..."신한, ROE 제고 답 내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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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뱅크'를 향한 '머니무브'가 시작된걸까. KB금융그룹과 신한금융그룹을 바라보는 증시의 시각이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 'NEXT'(다음 먹거리)에 대한 선명성이 사라진 KB금융이 주춤한 사이, 밸류업을 앞세운 신한금융이 파고들며 양 사 간 밸류에이션(가격) 격차가 줄고 있는 것이다.
지난 15년간 두 회사의 자산과 실적은 꾸준한 우상향을 그려왔지만, 주가는 리더십과 그 리더십이 제시하는 청사진에 따라 극명하게 갈려왔다. 금융권에서는 향후 주가의 방향 역시 두 라이벌 중 더 '리딩뱅크'에 어울리는 청사진을 내놓느냐가 가를 것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 거래일 기준 KB금융 현 주가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60배, 신한금융의 PBR은 0.57배에서 형성됐다. 지난 1분기 20% 가까이 벌어졌던 밸류에이션 갭(격차)이 5% 이내로 줄어드는 모양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도 한때 8조7000억원 넘게 KB금융이 앞서있다가, 이제는 그 격차가 4조8000억원 안쪽으로 내려왔다. 불과 두 달 새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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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장의 흐름이 가장 선명하게 주가 흐름에 반영된 게 바로 지난달 31일이었다. KB금융 주가는 이날 외국인ㆍ기관 동반 매도세로 인해 장중 2% 가까운 하락폭을 보였다. 반면 신한금융은 연기금 및 국내 기관들의 매수세에 힘입어 오름세를 보였다. '밸류업 수혜주'로 주목받으며 최근 한 달 간 거의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였던 것과는 달리 뚜렷한 '디커플링'(비동조화) 추세였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KB금융에 대한 압도적인 '최선호주' 시각이 옅어지고 있다"며 "2021년부터 2023년 사이엔 '은행주는 KB금융만 담아두면 된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지금은 신한금융과 하나금융도 함께 담아야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월 한국투자증권과 교보증권이 KB금융 대신 신한금융을 은행주 중 탑픽(Top-pick; 최선호주)로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 15년간 양사 모두 펀더멘털은 성장...주가 가른 핵심은 '리더십'
지난 15년간 KB금융의 주당순자산(BPS)는 2.8배, 신한금융 BPS는 3.0배 성장했고 주당순이익(EPS) 역시 꾸준한 우상향 추세였다. 그러나 주가의 흐름은 달랐다. 주가를 좌우한 건 펀더멘털이 아닌, '리더십'과 '청사진' 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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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2위'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던 강정원 전 행장 시절, KB금융이 신한금융과 2조원 이상 시가총액 격차를 벌릴 수 있었던 이유는 '신한사태'였다. 당시 라응찬 회장ㆍ신상훈 사장ㆍ이백순 행장이 극한 대립하며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2010~2014년 사이엔 정 반대였다. 낙하산 논란으로 조직을 휘어잡지 못한 어윤대 회장과 'KB사태'를 촉발한 임영록 회장 시기를 거치며 KB금융 주가는 암흑기로 접어들었다. '구원투수'로 나타난 윤종규 전 회장 취임 전후 KB금융과 신한금융의 시총 격차는 역대 최대인 9조4000억원까지 벌어졌다. 당시 신한금융은 시장에서 0.9배의 PBR을 인정받았고, KB금융은 0.6배였다. '1등 신한'은 50%의 밸류에이션 프리미엄을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윤종규 회장의 리더십이 자리를 잡으며 KB금융은 다시 역전의 기회를 맞이했다. 윤 회장은 '아시아리딩뱅크'와 '비은행 확장'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했고, 실천했다.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에 이어 현대증권(현 KB증권)을 품에 안았고, 카자흐스탄 BCC은행 전액 손실처리 이후 사실상 공백 상태이던 해외 확장에 나섰다. KB금융은 2017년말 시총 기준 리딩금융그룹으로 올라섰고, 한동우 회장 재임 6년간 안주해있던 신한금융과의 시총 격차를 5조원 넘게 벌렸다.
조용병 회장으로 선장이 바뀐 신한금융은 오렌지라이프(현 신한라이프)에 과감히 베팅하며 비은행 확장 의지를 보였다. 비슷한 시기 윤종규 회장이 채용비리에 휘말리며 2019년 두 그룹의 지위는 잠시 신한금융 우위로 바뀌기도 했다.
다만 이 구도가 오래가지 못했던 것 역시 리더십의 차이였다. 이후 KB금융은 푸르덴셜생명 추가 인수에 나서며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반면 신한금융은 사모펀드를 대상으로 1조9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감행하며 주주들의 신뢰를 잃었다. 그 결과 2020년 이후로는 KB금융이 다시 우세를 잡았고, 현재까지 큰 추세는 변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NEXT' 청사진 안보이는 KB금융 아성 '흔들'...신한금융 추격 시작
최근의 주가 흐름 역시 이 같은 '리더십'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가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 11월 취임한 양종희 회장은 아직 '자기 색깔'을 뚜렷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양 회장은 신년사 등을 통해 '고객'과 '디지털'을 강조하고 있지만, 피부에 와닿진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당장 주력 계열사인 국민은행은 고객들에게 경쟁사보다 유리하지 않는 금리의 상품을 제시하고 있고, 상반기 주택담보대출 확대에 몰두하다 갑자기 상품 취급을 사실상 중단하는 조치를 취하며 혼란이 일기도 했다.
한 증권사 금융 담당 연구원은 "생성형 인공지능(AI)에 전사적으로 투자해 고객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메시지가 나오기도 했는데, 결국 금리ㆍ수익률ㆍ솔루션으로 승부해야 하는 금융업에서 AI가 얼마나 도움이 될 지 미지수"라며 "글로벌은 수습이 우선이고 비은행은 추가 여력이 없어 당분간은 마진 방어가 성장성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 본부장은 "최근 은행주 중에서는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을 조금 더 담는 추세인데, 신한금융은 그간 상대적 밸류에이션이 낮았고 하나금융은 4대 지주 중 유일하게 자기자본이익률(ROE)이 10%를 넘어 매력이 있다고 봤다"며 "KB금융은 앞으로 1~2년은 '윤종규 레거시'(유산)로 굴러가겠지만, 그 이후가 어떨진 아직 보이는 게 없다"고 지적했다.
신한금융은 올 상반기 '고비'를 넘긴 상황이다. 주요 주주 중 하나였던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PE)가 지분을 대량 처분하며 주가가 곤두박칠쳤다. '주주가치'를 강조한 진옥동 회장이 막상 실행방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며 KB금융과의 시총 격차가 8조7000억원 가까이 벌어지기도 했다.
운용사 관계자는 "비은행 포트폴리오는 미완성이고, 수익성은 KB금융에 못 미치고, 주주환원도 대세를 따라가는 정도의 수준인 신한금융에 투자할 이유가 이전까진 크지 않았다"며 "KB금융의 힘이 빠진 타이밍에 공격적인 주주환원책을 약속하며 시장을 이목을 집중시키는 덴 성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신한금융 역시 가야할 길이 멀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밸류업 정책 발표 이후 신한금융 주가는 급등했다. 올해 예상 주당 배당금(DPS)은 2160원으로, 최근 주가 기준 배당수익률은 3.6% 수준까지 떨어졌다. 배당수익률이 정기예금 수준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ROE 제고와 비은행ㆍ글로벌 확장은 어떻게 해 나갈 것인지가 향후 주가 방향을 결정할 핵심 변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