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입주 무산에 마곡 지역 오피스 과잉 공급 겹쳐
국민연금 8000억 회수 난망…PF대출 금융사도 전전긍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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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민연금이 2조3000억원 규모로 선매입했던 대형 업무단지 '마곡 원그로브'(마곡CP4)가 준공을 앞두고 공실 문제에 직면했다. 우량 임차인으로 기대를 모았던 쿠팡의 마곡 입주가 무산된 상황에서, 마곡 지역 오피스 물량이 넘쳐나 임차인을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수천억원을 투입한 국민연금과, PF대출을 제공한 국내 금융기관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달 말 준공 예정인 원그로브의 오피스 임차율은 여전히 '0%'를 기록 중이다. 여의도 IFC(국제금융센터) 규모와 유사한 약 9만평 규모의 오피스 공간을 한 곳도 채우지 못한 것이다. 리테일(상가) 공간 역시 이마트트레이더스가 4만평 중 절반을 사용하기로 계약했을뿐, 나머지는 아직 임차인을 채우지 못한 상황이다.
원그로브는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위치한 대규모 복합시설로, 연면적 46만3098㎡(약 14만평) 규모 중 오피스 공간이 약 9만평을 차지한다. 준공할 경우 국민연금이 2조3000억원에 매입해주기로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미 공사 과정에서 8000억원의 에쿼티(자기자본)를 투자했다. 신한은행·교보생명·푸본현대생명·산업은행·신협·MG새마을금고 등 금융사들도 1조8700억원 규모의 PF 대출을 제공했다.
원그로브는 시공사인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사태로 공사가 지연되면서 사업 초기부터 난항을 겪었다. 대주들이 완공을 위해 3700억원에 달하는 태영건설 몫의 공사비를 추가 출자해야 했고, 공사 재추진 과정에서 시행사들간 공사비 분담을 두고 갈등이 불거져 임차 마케팅도 지연됐다.
당초 후순위인 국민연금을 비롯, 원그로브 투자자들은 쿠팡을 중심으로 한 IT 기업들의 입주만을 기대했지만 쿠팡과의 물밑 협상이 결렬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본사를 유치하려 했던 다른 IT 기업들마저 강남 테헤란로나 서초 지역으로 쏠리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마곡 지역 전체 오피스 공급량이 20만평에 달하는 것도 투자자들의 불안 요소다. 원그로브 주변 CP1~CP3 지역에 오피스가 올해 연이어 준공되면서, 임차인 우위 시장이 형성됐다. 업무시설만 포함해도 이미 20만평 이상의 물량이 공급된 상태다.
한 부동산 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임차인들이 최근 마곡보단 강남을 선호하면서 마곡 지역에 오피스가 초과공급된 상황"이라며 "시행사면서 투자자인 이지스자산운용 측이 대행사 7곳을 선임해 홍보하고 있지만, 7월까지 단 한 건의 계약도 성사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원그로브 프로젝트 대주단의 리파이낸싱(차환) 만기는 내년 3월이다. 내년 초까지는 딜 클로징을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임차율이 최소 30%는 돼야 한다는 것이 투자업계 중론이다.
대주단은 임차인에게 받는 보증금 및 임차료 일부를 리파이낸싱 재원으로 활용한다. 이미 조 단위의 사업비를 지불한 상황에서, 추가 임차 계약이 없으면 불리한 조건으로 리파이낸싱을 할 수밖에 없다. 임차율 개선에 실패할 경우 국민연금을 비롯한 투자자들의 대규모 손실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 투자자는 "8000억원을 잃을 수 없어 조급해진 국민연금이 어떻게든 리파이낸싱까지는 끌고 갈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면서도 "9만평 중 메인 테넌트(임차인)가 3만~4만평은 채워줘야 하는데, 악재가 겹치면서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은 발을 빼고 싶어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의 마곡 투자 펀드를 운용하는 이지스자산운용 측은 현재의 공실 문제가 일시적이라는 입장이다. 주변 부동산 가격을 고려할 때 원그로브의 자산 가치가 여전히 높고, 워낙 대규모 시설이기 때문에 과거 여의도 IFC처럼 임차인을 채우는 데 수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지스 측은 "현재 20개 기업이 임차 의향을 보였고, 이달 내 1~2곳과 곧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라고 밝했다.
PF업계는 원그로브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규모 자금이 투입된 프로젝트인 만큼, 이 사업의 성패가 향후 부동산 개발 시장과 기관투자 흐름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내다본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거액 투자가 손실로 이어질 경우, 공적 자금의 대체투자 운용 건에 대한 논란도 재점화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준공 후 미분양을 일반적으로 '악성 미분양'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같은 현상이 오피스 지구까지 확산될까봐 염려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