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스러움' 대신 '투명성', 회사의 '성장' 중요해
블랙스톤·KKR·칼라일 등 대형사들은 리테일 기웃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글로벌 대형 사모펀드(Private Equity)들의 화두는 ‘사모펀드’ 색깔 지우기다. 과거 사모펀드가 한정된 투자자로부터 ‘비밀스럽게’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투자 전략을 공개하고 리테일 시장에서도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운용규모가 수천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커지자 단순히 '투자 수익률'이 아니라 자체적인 성장과 지속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면서다.
글로벌 대형 사모펀드(PEF)들은 ‘Multi Asset Investment Firm’과 같은 표현으로 회사를 지칭하고 있다. 세계 최대 PEF 블랙스톤은 공식 홈페이지에 ‘world’s largest alternative asset manager’라는 표현을 쓰고, 글로벌 PEF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칼라일도 ‘global investment firm’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이들이 PE 투자 부문을 별도로 명시하고 있긴 하지만, 여러 투자 부문 중 하나로 제시되며 회사의 정체성을 사모투자로 한정하고 있지 않다.
이처럼 대형 PE들이 ‘사모펀드’의 색깔을 갈수록 지우고 있는 배경으로는 더 이상 자금 조달이 ‘한정된’ 시장이 아니라는 점이 꼽힌다. 이들은 전 세계의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책임투자 등 ESG(환경·사회·거버넌스)에 신경을 쓰면서 돈을 받는 PEF들도 ESG요소를 더욱 갖추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경영의 투명성, 사회적 책임 등 공적인 요소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대형 PEF들은 포트폴리오의 ESG 뿐 아니라 ESG보고서 발간 등 자체 ESG 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일부 대형 PEF들은 ESG 관련 인증 및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상장사인 PEF들의 경우 신경 쓸 부분은 더욱 늘어난다. 단순 수익률 차원을 넘어 회사로의 ‘성장’을 고민해야 하는 부담이 더욱 크다. 일부 글로벌 대형 PEF의 경우 총 운용 자금 규모가 수천억달러에 달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높은 수익보다는 ‘안정적’ 수익과 회사의 지속가능성이 더욱 중요해졌다. 투자 전략이나 계획 등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기관 투자자 등 소수에게 공유되던 정보들도 공개적인 IR(Investor Relations) 자료에 상세히 기술하는 추세다.
현재 KKR, 블랙스톤, 칼라일 등 글로벌 3대 사모운용사들이 주식 시장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KKR과 블랙스톤은 뉴욕증권거래소, 칼라일은 나스닥에 상장돼 있다. 영국계 사모펀드 운용사로 유럽 최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CVC캐피털도 올초부터 암스테르담 주식 시장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성장을 신경 쓰면서 글로벌 PEF들이 가장 먼저 주목한 지점은 자금 조달 시장 확장이다. 최근 글로벌 PEF들은 국내외서 고액 자산가 투자자들을 타깃으로 한 리테일 상품들을 계속해서 출시하고 있다. 이들의 핵심 고객은 기관이었고, 개인들에게는 철저히 정보를 제한했다. 하지만 고액자산가 시장이 커지면서 오히려 개인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자산운용사와 같은 영업 전략을 보이고 있다.
운용자산이 1400조원에 달하는 블랙스톤은 최근 개인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려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보이고 있다. 블랙스톤뿐만 아니라 아폴로글로벌, KKR, 칼라일, 브룩필드 등도 유사한 펀드를 만들어 개인 투자자의 자금을 조달하는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증권사 등을 통해 VIP 고객을 대상으로 KKR·골드만삭스·칼라일 등의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블랙스톤은 올해 3월 개인 투자자 대상 사모펀드인 ‘Blackstone Private Equity Strategies Fund (BXPE)’를 출범했다. 해당 펀드는 13억달러를 조달했는데, 블랙스톤이 리테일 시장을 통해 모금한 가장 큰 금액이다. 해당 펀드는 블랙스톤의 전통 영역인 기업 인수 등의 자금에도 활용된다. 블랙스톤은 인프라 펀드와 신용 펀드 등 추가적인 리테일용 펀드를 출시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알려진다.
한 PEF업계 관계자는 “(이러한) 해외 대형 PEF들은 지금까지 ‘질적 성장’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운용 규모나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 '사적인' 영역을 넘어서면서 스스로의 성장에 대한 부담이 커진 상태"라며 “확장을 생각하면 아시아 시장 투자도 늘리겠다는 입장인데,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 비중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시장이 커지는 장점도 있지만 자본력을 앞세우면 싸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로컬 펀드에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