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B+ 두산에너빌도 기관 매수
은행 차입보다 회사채 발행 비용이 유리
신세계ㆍ삼성도 공모채 시장 '기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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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내 회사채 시장이 연일 호황세다. 대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줄을 잇는 가운데, 기관들이BBB급의 저신용 회사채까지도 적극 매수하면서 수요예측에서 '완판'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저금리 기조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오갈 곳 없는 시장 유동성이 회사채 시장에 쏠린 결과로 해석된다.
이달 진행된 삼성물산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 결과는 조달시장의 열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삼성물산이 발행한 5000억원 규모의 공모채는 수요예측 과정에서 무려 2조원이 넘는 오버부킹을 기록했다. 2년물의 경우 6.2대 1, 3년물은 8.67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신용등급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두산밥캣 인적분할 및 두산로보틱스와의 합병을 추진하면서 금융 당국의 제재를 받은 두산에너빌리티는 BBB+ 신용등급임에도 불구하고 8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서 5000억원에 가까운 주문이 몰렸다. 그중에서도 3년물에는 3600여억원의 자금이 집중되면서 7.2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회사채 시장은 여름휴가와 추석을 전후로 비수기에 속하지만, 올해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회사채 발행에 나섰다. 9월 초 대기업 계열 회사채 수요예측 결과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기업들이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한화그룹 지주사인 ㈜한화 3년물은 이달 수요예측에서 11.62대 1의 경쟁률을, 포스코인터내셔널 3년물도 8.5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달성했다. 현대트랜시스와 현대제철도 각각 AA- 등급과 AA 등급으로 다양한 만기의 회사채를 성공적으로 발행했다.
이는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시장의 관심이 큰 폭의 금리 하락 가능성에 쏠린 영향이다. 이에 기관투자자들도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저신용 회사채에 주목하고 있다. 향후 금리 하락 가능성에 대비한 기관들의 선제적 투자도 회사채 투자에 집중된 분위기다.
증권사 기업금융부 관계자는 "최근 발행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기관투자자들의 폭발적인 참여"라며 "리테일(개인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 단계까지 가지 않고도 신디케이션 부서 내에서 물량이 전부 소진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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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들의 회사채 투자 행보는 대기업들의 조달 행렬에 더욱 불을 붙이는 모양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다음달 공모 회사채 발행을 준비 중인 기업은 20곳이 넘는다. GS그룹(GS에너지, GS엔텍)과 신세계, CJ그룹(CJ프레시웨이), 롯데그룹(롯데칠성음료) 등 대기업 계열사가 주를 이룬다.
신세계그룹은 올해에만 이미 2조5000억원의 넘는 회사채를 발행했다. 작년 총 발행량(2조4000억원)을 3분기에 넘어선 것이다. 이중 절반은 공모 시장을 통해 해결했다.
이 같은 시장 분위기 속에서 보수적인 재무 정책으로 유명한 삼성전자마저 최근 회사채 발행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의 밸류업 정책에 동참해야 하는 대기업 지주사들도 최근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 매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회사채 발행을 늘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장기 회사채 금리가 기존 차입금 이자 비용 아래로 내려가면서, 조달 구조를 개선하려는 행보다. 지주사 회사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에 회사채를 발행해 금리가 높은 단기 차입금을 상환하기에 유리한 환경이다.
증권사 채권투자전략팀 관계자는 "올해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가 예년보다 크고, 금리 인하 기대감도 있어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은 작년보다 늘어날 것"이라며 "AA급 이하 회사채에서는 국고채 3년 금리가 3개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를 밑도는 역캐리 현상이 이어지고 있어, 기업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보다 회사채를 발행하려는 현상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