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한 민희진, 위태한 뉴진스…하이브가 잃은 것과 얻은 것
입력 2024.09.30 07:00
    취재노트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걸그룹 뉴진스의 “민희진 대표를 복귀시켜라”는 요구에 어도어는 25일 “민 전 대표의 복귀는 불가하다”면서 ‘사내이사와 프로듀싱 업무 임기 보장’을 절충안으로 제시했다. 이에 민 전 어도어 대표는 대표직 복귀 요구를 유지하며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민 전 어도어 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5월 가처분 승소 이후 하이브로부터 ‘돈을 줄 테니 받고 나가라’는 협상안이 들어왔다. 하지만 돈이 목적이 아니었기에 거절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하이브는 “거짓 주장”이라고 맞서고 있다. 민 전 대표는 해당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해 “자회사 사장이 모회사의 심기를 대놓고 거스른 데 대한 공개 처형”이라고 답했다. 

      이대로 간다면 결국 남은 것은 법적 분쟁 뿐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이브와 민 전 대표, 그리고 뉴진스도 냉정하게 득과 실을 따져야 할 때가 왔다는 평이다. 지난한 법적 공방은 ‘돈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길어질수록 변호사들만 돈을 벌 것”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이미 하이브는 이번 사태로 평판에 큰 타격을 입었다. 주가 하락으로 재무적 피해까지 이어졌다. 투자자들이 향후 주가를 비관하면서 2021년 11월 발행한 3회차 전환사채(CB) 풋옵션 행사비율이 27일 기준 80%에 육박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조기상환일(11월 5일) 기준 하이브가 투자자에게 돌려줘야 하는 금액은 약 3200억원에 이른다.

      앞으로도 하이브는 강경 대응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어도어 외의 다른 산하 레이블에도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라도 물러서기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하이브가 기업으로서의 안정성을 증명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이브는 시가총액이 조 단위에 이르고 엔터기업으로는 최초로 대기업에 지정됐다. 한 자회사, 한 아티스트가 타격을 입는다고 회사가 흔들린다면 직원들도, 주주들도 그 회사를 신뢰할 수 없다. 하이브가 쉴 새 없이 신인 아이돌을 배출하고 있는 것도 리스크를 분산시키려는 이유가 크다. 

      하이브의 행보에 K팝 팬들 사이에서는 ‘공장형 아이돌’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하지만, 시장에서는 ‘하이브니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난 몇 년간 YG엔터테인먼트가 ‘3대 엔터사’에서 점점 존재감이 줄어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도 ‘동시에 여러 메인 그룹을 굴릴 수 없는’ 시스템의 부재를 꼽는다. 돌발 리스크가 특히나 많은 엔터사일수록 대체재가 충분히 마련되는 것이 기업의 존속과 성장 측면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평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하이브 입장에선 어떤 잡음이 있든 '회사가 돌아가는 것'이 1순위다”라며 “회사는 결국 돈을 버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뉴진스나 민희진 측과 합의가 된다면 일단은 갈등을 봉합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민 전 대표는 강경한 입장인 가운데 뉴진스의 행보도 주목된다. 앞서 뉴진스 멤버들은 지난 11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민희진이 대표로 있는, 경영과 프로듀싱이 통합된 원래의 어도어를 원한다”며 “방시혁 의장님과 하이브는 25일까지 민희진 대표를 그룹 경영과 프로듀싱에 복귀시켜 달라”며 이 분쟁에 뛰어들었다. 현재 활동 중인 걸그룹이, 직접 경영권 분쟁 상황에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의외라는 평가가 많았다. 

      뉴진스 멤버들이 ‘25일’이라는 2주 기한을 언급한 것은 추후 법적 분쟁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다. 지난해 걸그룹 피프티피프티와 소속사 간의 법정 다툼에서 법원이 소속사 측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법원이 피프티피프티 네 멤버가 소속사 어트랙트를 상대로 낸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는데, 이때 ‘소속사 측과 충분한 합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즉 신의성실을 다하지 않았다는 판단이 포함돼 있다. 만약 뉴진스 멤버들이 추후 하이브와의 ‘이별’을 위해 전속계약 효력 부존재 확인 소송 등을 제기하게 된다면 이러한 ‘충분한 합의 노력’이 참고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로선 하이브와 대치해 뉴진스가 '얻을 것'이 어떤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전속계약이 통상 7년인 점을 고려하면 '일방적 해지'는 상당한 위약금을 부담해야 한다. 위약금 규모는 법적으로 규정돼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전속 계약 해지 성사가 쉽지 않다. 동방신기 JYJ와 배우 고 장자연 사건 등 각종 연예계 계약 분쟁으로 정부가 2009년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를 만들었고, 이후 개정을 거쳐 올해도 개정안이 고시됐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뉴진스 멤버들이 법적으로 소송에 나선다면 '끝장을 보겠다'인건데, 법적으로 계약 해지 사유가 충분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법적 분쟁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의무 위반으로 하이브가 지원을 하지 않을 이유가 생긴다. 뉴진스가 인기 그룹이지만 또 하이브는 무조건 ‘뉴진스’가 있어야 할 이유가 없으니 냉정하게 누가 더 피를 볼 것인지 잘 따져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어도어 사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엔터업계에서는 안타까운 시선이 이어지고 있다. 한 대형 엔터사 관계자는 “(지금이)K팝에 굉장히 중요한 시기인데 덩치가 큰 하이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 업계에서는 다들 안타깝게 보고 있다”며 “하이브가 겪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하는데, 업계에서 여러 사람들이 제각각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만큼 이번 사태로 ‘K엔터’ 산업 자체가 오명을 쌓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