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10만원 괴리에도 주저하는 분위기 커
SM엔터 사태 손실 악몽, 고려아연에서 재현될까
대차 전략 실패에 장중 손절매 우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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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엔터 경영권 분쟁이 떠오르네요. 이번엔 무리하지 않을 겁니다."(한 증권사 트레이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MBKㆍ영풍과 최윤범 회장 간 '쩐의 전쟁'으로 치닫는 가운데, 증권사 프랍트레이딩(proprietary tradingㆍ자기자본거래) 부서 직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들 중 다수는 과거 카카오와 하이브간 SM엔터테인먼트 공개매수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갑작스러운 화해 이후 큰 손실을 본 쓰라린 경험을 떠올리고 있다. 고려아연 사태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까 우려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다.
지난주 77만원 선을 횡보하던 고려아연 주가는 지난 14일 전 거래일 대비 0.12% 감소한 79만30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달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고려아연 공개매수가를 기존 75만원에서 83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최 회장 측이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89만원까지 올렸으나 주가는 80만원 선을 끝내 넘지 않았다.
증권가에서도 주저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특히 이런 공개매수 거래에서 적극적으로 시장 참여자들이 보유한 종목을 대여하거나 차입해 차익을 실현하는 증권사 프랍 부문의 트레이더(이하 프랍)들은 신중한 행보를 보였다.
한 중소형 증권사 트레이더는 "이달 초만 해도 75만원 밑으로 주가가 떨어지지 않는다면 고려아연 주식을 83만원에 매수 청구할 수 있다는 분위기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매수보단 관망세에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공개매수 물량 부족과 높은 경쟁률, 그리고 예기치 못한 합의 가능성 등 여러 변수들이 프랍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가로막았다는 분석이다. 특히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엔터) 경영권 분쟁 당시 큰 손실을 본 프랍들이 많아, 이번에도 유사한 사태가 재현될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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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상반기 SM엔터 주가는 하이브와 카카오의 인수 경쟁으로 장중 16만원대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하이브가 SM엔터 인수를 포기하고 카카오와의 지분 매수 경쟁을 종료하면서 주가는 최초 공개매수 가격인 주당 12만원대 이하로 떨어졌다.
당시 카카오의 공개매수 대상 물량이 시장에 있는 지분 전량이 아니었기 때문에, 12만원대 매도마저 실패하는 사례가 다수 등장했다. 카카오는 약 30%의 지분을 추가 매입했지만, 그보다 많은 청약이 들어오면서 최종 경쟁률은 약 2.27대 1에 달했다. 공개매수 청약에 주주들이 100주를 신청했다면, 카카오가 그중 44주만 매입했다는 의미다.
이에 증권사 프랍들은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는 기관들의 물량을 대차로 빌려와 리스크를 줄이려 시도했다. 카카오가 청약주식 수가 예정 수량을 넘을 경우 청약 수량 비율대로 주식을 매입하겠다는 '안분비례' 방식을 내세웠기 때문에, 더 많은 주식을 확보해 공개매수 성공 확률을 높이려 한 것이다.
다만 이 전략도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예상보다 많은 물량이 공개매수에 응하기 위해 리콜(반환 요구)되면서 대차 물량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SM엔터 공개매수에 응하기 위해 주당 15만원 수준에 주식을 대차로 빌려오거나 선물 계약을 체결했던 프랍들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며 "일부는 장중에 손절매를 시도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고 회상했다.
이때 '뜨거운 맛'을 본 증권사 프랍들은 이번 고려아연 공개매수 건에 대해 매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차익 거래 기회가 있어 보이지만, SM엔터 사태의 경험으로 인해 쉽사리 움직이지 못한 분위기다. SM엔터 사태처럼 영풍과 최 회장 측이 갑작스럽게 합의해 주가가 급락하면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이날 기준으로 고려아연 주가는 79만원대에 머물러 있다. 최대 89만원이라는 공개매수 가격이 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10만원의 가까이 괴리가 발생한 것이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최윤범 회장이 공개매수가를 얼마나 올릴지, 고려아연 주주들이 얼마나 공개매수에 응할 것인지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며 "경쟁률이 높을수록 내가 공개매수에 낙찰받을 물량은 적어지기 때문에 그 뒷감당이 쉽지 않아 프랍들도 적극적 참여를 꺼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