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서 배운 게 없다'...신한證 사태에 신한지주는 책임 없나
입력 2024.10.23 07:00
    Invest Column
    근본적 책임은 지주 인사시스템에 있다는 평가
    20여년간 '관리'와 '전문성' 사이에서 갈팡질팡
    "임원들, 책임 회피와 자리 보전에만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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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한 번, 내부통제를 되짚고 강화하겠습니다. 주주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스럽습니다." (지난 17일 신한금융지주 주주서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신한금융지주가 주주서신 형식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사회 의장 명의의 주주서신은 이른바 '라임 사태' 때도 없던 일이다. 담당 임원의 관리 부실이 원인으로 언급되는데, 근본적인 책임은 지주에 있다는 게 금융권의 공통된 평가다.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책임을 지지 않는' 인사 시스템이 현 신한투자증권의 부실한 내부통제를 낳았다는 것이다. 2002년 H&Q아시아퍼시픽으로부터 굿모닝증권을 인수한 지 22년, 1985년 동화증권(구 신한증권)을 인수한 것부터 따지면 40년간 증권사를 보유해왔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관리 체계를 확립하지 못한 것이다.

      2002년 굿모닝신한증권 출범 이후 신한금융지주의 증권 최고경영자(CEO) 인사 원칙은 '관리'와 '전문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해왔다. 

      합병 직후 세력이 더 컸던 굿모닝증권 출신 도기권 전 대표가 운영 방안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지주는 외부 인사였던 이강원 전 대표를 선임해 '관리'와 '전문성'을 모두 잡으려 했다. 믿었던 이강원 전 대표가 취임 1년만에 한국투자공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지주는 '관리'에 무게를 실었다. 

      은행 출신인 이동걸ㆍ이휴원 전 대표가 6년간 증권을 맡아 조직을 안정시켰다. 다만 이들은 낙하산이라는 한계가 명확했다는 평가다. 경영진과 노동조합 사이의 반목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증권사로서도 굿모닝신한증권은 은행계 계열 증권사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일류 은행'에 걸맞지 않는 '삼류 증권'은 2010년대 들어 신한금융그룹의 숙제가 됐다. '은행 낙하산 사장'에 대한 반감이 심했다. 증권에서 잔뼈가 굵은 강대석 전 대표를 선임해 5년을 맡긴 이유다. 이 기간 순이익이 크게 늘며 증권은 한때 '5대 증권사'의 반열에 들어가기도 했다. 

      물론 이는 표면상 그럴싸했을 뿐이었다. 주식연계증권(ELS) '몰빵'이 수익의 비결이었다. 레버리지 비율이 치솟으며 재무가 불안해졌다. 지주가 급하게 5000억원을 수혈(2016년 증자)해줘야 했다. 비은행 계열사 중 자기자본수익률(ROE)이 가장 낮았지만, 이후에도 지주는 두 차례 더 증자로 자금 지원을 해줘야만 했다.

      다시 '관리'가 화두가 됐다. 은행원인 김형진 전 대표가 선임됐다. 은행 출신에 증권사 경험이 많지 않은 김형진 전 대표는 조직을 장악하지 못했다. 강대석 전 대표 시절 심어진 라임 사태의 씨앗이 김형진 전 대표 시절 싹을 틔웠다. 라임 사태의 주범으로 평가받는 임일우 전 PBS사업본부장은 이 시기 20억원이 넘는 보수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이 상황을 지켜본 조용병 전 회장은 다시 '전문성'을 꺼내 들었다. 동양증권 출신 김병철 전 대표를 전격 발탁했다. 외부 출신이지만, 증권의 운용사업(GMS)을 7년간 총괄해 내부 장악력도 있던 인사였다. 그러나 국가적 이슈로 비화한 라임 사태의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했다. 김병철 전 대표는 임기의 반만 채우고 하차했다.

      그리고 지금, 증권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전문성' 원칙만 남았다. 김병철 전 대표를 이어 또 다시 외부인인 이영창 전 대표, 그리고 김상태 현 대표가 취임했다. 여기에 지주가 계열사 사업영역의 의사결정권까지 가져가는 '매트릭스 조직' 구조가 겹치며 외부 출신 대표들의 조직 장악력은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신한증권은 10여년 전부터 일단 일을 벌이고, 소수 세력이 이익을 독점하고, 문제가 되면 축소ㆍ은폐하고, 책임은 사장이 지고 나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며 "내부에서 경쟁을 통해 CEO를 육성하려는 지주의 의지가 보이지 않으니, 임원들이 책임 회피를 반복하며 자리를 보전하고 사익만 추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발표한 '책무구조도'는 책임 회피 매뉴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지주 및 증권 내부에는 직간접적 책임을 가진 임직원들이 책무구조도 뒤에 숨으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관료화ㆍ정치화한 신한금융의 인사 시스템이 낳은 풍경이란 비판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ELS, 라임 사태, 그리고 이번 LP(유동성공급자) 계정 선물거래까지, 문제가 표면화하기 전 담당 임원은 수십억원의 성과급을 챙겼다. 단순 사고가 아니라 금융 '범죄'에 가까운 일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지적을 받아들인다면, 관리 책임이 있는 지주가 범죄를 방조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아직 1년 2개월의 임기를 남겨두고 있는 김상태 사장의 거취는 어떻게 될까. 증권 안팎에서는 '임기가 남은 김상태 사장은 올해 지주 자경위(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의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일견 옳은 이야기다. 김형진 전 사장은 임기를 4개월 앞두고 사임했다. 김병철 전 사장도 임기를 9개월 남기고 사임했다. 이들의 거취는 자경위의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올해 자산관리(WM) 담당으로 취임한 정용욱 부사장이 차기로 언급되지만, 김상태 사장이 기업금융(IB) 및 홀세일 등 영업을 담당할 때에나 공동대표 등으로 활용할만한 카드란 평이다.

      외부 전문가 풀(pool)은 이미 고갈 상태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40년간 증권사를 보유하고도 증권업을 모르는 지주 경영진과 손발을 맞춰보겠다는 증권 전문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임원들이 대표를 중심으로 뭉치지 않고, '면피'와 '각자도생'에 집중하고 있다는 이야기 역시 증권가에 널리 퍼져 있다.

      지금 신한투자증권에 필요한 건 경영 관리와 영업 경험을 두루 갖추고, 상품에 대한 이해력과 판단력이 있으며, 글로벌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보유한 리더라는 것에 의문의 여지는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리더가 신한투자증권에 갈 이유도, 매력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지주의 업보다. 그리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