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증권 1300억 손실 사태가 남긴 교훈
입력 2024.10.24 07:00
    "1만계약은 글로벌 헤지펀드급"…증권업계 충격파
    영업부서에 1조 선물거래 권한…리스크 부서 '속수무책'
    수수료 비즈니스서 북 트레이딩으로 변질된 LP 업무
    당국 감독 강화 우려에 증권가 전반 긴장감 고조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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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나한테 1만계약이 가능한 선물 계좌가 있었다면 벌써 FIRE(조기은퇴)했거나 감옥에 갔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신한투자증권발(發) 1300억원 ETF LP(유동성공급) 손실 사태를 두고 한 증권사 트레이더가 던진 자조 섞인 한마디다. 통상적인 트레이딩 부서에서도 1000계약 미만으로 거래 한도를 제한하는데, 영업부서에서 이런 규모의 계좌를 운영했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신한투자증권은 이달 홀세일그룹 산하 국제영업본부의 법인선물옵션부가 ETF LP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약 13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ETF LP 업무는 통상 오후 3시 45분에 거래가 마감돼 야간 선물 거래가 불필요함에도, 담당 부서는 야간 선물 거래를 지속했다. 더욱이 1만 계약(한화 약 8000억원 규모)이라는 과도한 거래 한도를 보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 대형 증권사 트레이딩본부장은 "ETF LP를 하면서 1000개 미만으로 헷징 운용하는 것도 많은 편"이라며 "1만 계약은 글로벌 헤지펀드의 주요 전략 포지션 정도의 규모로, 국내 일개 운용 부서에서도 감히 꿈꾸기 어려운 사이즈"라고 혀를 내둘렀다.

      영업부서에 과도한 트레이딩 권한 부여?…"리스크 관리는 뒷전"

      증권가에서는 신한투자증권의 안전 불감증(不感症)을 두고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그중에서도 영업부서인 홀세일그룹 산하에 ETF LP 업무를 두면서 과도한 트레이딩 권한까지 부여한 사실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는 트레이딩 부서 수준의 리스크 관리 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 허점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JP모건과의 스왑거래를 허위로 작성해 손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이번 사태에서 신한투자증권의 결제부서(백오피스)는 JP모건 결제부서와 직접 거래를 확인하지 않은 채, 영업부(프론트)에서 제공한 텀시트만으로 스왑 거래를 승인했다.

      파생상품 담보관리를 담당하는 한 백오피스 업무 담당자는 "노셔널(명목금액) 1조짜리가 담보 없이 왔다갔다 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옵션 계약서를 만들려면 백투백 거래를 해야 하고 이에 대한 확인 작업도 필요한데, 아무리 파워가 있는 영업부서라도 백오피스가 이를 그냥 넘어간 것이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ETF 호황 속 LP 업무 변질이 부른 참사…본연의 역할은 사라져

      증권사들의 ETF LP 부서는 원래 운용사로부터 주식을 싸게 빌려 헤지펀드에 대차 수수료를 받는 '수수료 비즈니스'가 주된 수익원이었다. 하지만 공매도 금지 조치로 대차 비즈니스가 사실상 중단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미 충원해둔 인력들의 실적 압박은 여전했고, 결국 본연의 LP 역할과는 거리가 먼 트레이딩으로 방향을 틀게 됐다는 지적이다.

      한 중소형 증권사 트레이딩본부 관계자는 "신한투자증권을 비롯한 몇몇 증권사들이 홀세일그룹에 LP부서를 넣은 것도 모자라, 거기에 선물 트레이딩을 할 수 있는 북(회삿돈)까지 열어준 것은 방만 경영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고 꼬집었다.

      '신한發 날벼락' 반발하는 증권가, "조직 탓 말라" vs "예견된 일"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는 당국은 영업과 운용 부서의 분리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현재 증권사들의 내규와 내부통제 적정성을 전수조사하면서, 부서 간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사들의 심기는 불편해진 모습이다. 특히 NH투자증권과 KB증권 등 영업부서에서 LP운용을 꾸려왔던 증권사들은 당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신한發 날벼락'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호가 제시와 매매가 주된 업무인 만큼 영업부서에서 담당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입장부터 "개인의 일탈을 조직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항변까지 목소리가 높아지는 형국이다.

      실제로 홀세일 부서에서 LP 업무를 하는 것 자체가 규정 위반은 아니다. 해외에서도 LP 등 '플로우 비즈니스'를 영업 부서에서 담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12억 성과급의 그림자...수익 좇다 무너진 내부통제

      담당 부서의 높은 성과급 체계는 이번 사태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수익을 많이 내는 부서일수록 발언권이 세지고 내부 통제도 느슨해지기 마련이란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번 사태의 주요 인물인 임태훈 국제영업본부장은 올 상반기에만 12억43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이는 회사 내 4번째로 높은 금액이다.

      증권업계는 후폭풍을 우려해 리스크 관리 강화에 속속 나서는 모습이다. 신한투자증권은 이미 ETF LP 관련 파생상품 옵션 매도 보유한도를 1만계약에서 600계약으로 대폭 축소했다. 다른 대형 증권사들도 서둘러 한도 축소 등 자체 점검에 들어갔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결국 개인의 일탈이라고 하지만, 그 일탈을 가능케 한 건 조직"이라며 "리스크책임자(CRO) 교체나 실무자 징계로 끝낼 게 아니라, 업무영역 구분 명확화와 성과급 체계 재검토 등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