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만 해도 '삼성 램'은 조립컴 '필수 공식'
이제는 '하이닉스 램'이 대체...'수율 개판' 평가
레거시 메모리 시장 입지 아직 굳건하다지만
초(超) 격차 잃은 2017년, 사업지원 TF 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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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DRAM)은 삼성 램만 사는 이유가 뭔가요?"
"다른 램보다 호환성이 좋고 안정성도 받쳐주죠. 추가 오버클럭도 잘 들어가고, 가격도 매우 저렴합니다."
(2019년 4월, IT커뮤니티 '퀘이사존' CPUㆍ램 게시판)
"삼성 램 요즘도 별로인가요?"
"기본 클럭에서도 에러가 나는 수준의 수율 개판 메모리가 지금 삼성의 현실입니다. 예전 이름없이 판매되던 싸구려 중국산 수준입니다."
(2023년 9월, IT커뮤니티 '퀘이사존' CPUㆍ램 게시판)
15년 전까지만 해도 조립식 컴퓨터를 맞출 땐 '삼성 공식'이 있었다. 메인연산장치(CPU)와 메인보드는 예산과 취향에 따라 선택하더라도, 램과 하드디스크는 무조건 삼성이었다. 최고 성능에 가격까지 저렴한 삼성 램은 안 쓰는 게 바보였다. 하드디스크는 저렴한 가격에 고객 친화적인 애프터서비스(A/S) 정책이 일품이었다.
2011년 삼성이 하드디스크 사업부를 미국 씨게이트에 매각한 뒤엔, 웨스턴디지털(WD)이나 도시바가 하드디스크의 새로운 공식이 됐다. 이 시기에도 '램은 삼성'이라는 공식은 바뀌지 않았다. 적어도 5년 전까지는 그랬다.
뭔가 이상하다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한 건 2022년말의 이야기다. DDR4에서 DDR5로 세대가 바뀌며, '삼성 램'이 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2023년 초 컴퓨터 전문 유튜버들이 본격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IT커뮤니티가 불타올랐다.
이후 '램은 SK하이닉스'가 새 공식으로 자리잡았다. SK하이닉스의 DDR5 램은 가격이 다소 비싸기 때문에, '가성비'로 마이크론 제품을 추천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물론 메모리 반도체 영역에서 삼성전자의 입지는 아직 굳건하다는 평가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약 5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빗그로스(B/G;용량 출하량)는 전년동기 대비 일부 감소했지만, 평균 판매 가격(ASP)가 8~9%가량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B2B(기업 간 거래) 시장에서의 경쟁력과 협상력은 여전히 단단하단 평가가 적지 않다. 삼성전자의 DDR4 16GB SDRAM은 컴퓨터 전문 온라인샵 '다나와'에서 메모리 부문 판매량 수위를 기록하고 있다. 마이크론과 비슷한 가격인 DDR5 16GB SDRAM 역시 30%가량 비싼 SK하이닉스 동급 제품에 비해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문제는 삼성전자가 레거시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마저 '평판 리스크'에 노출돼버린 현 상황 그 자체다.
아직까진 조립식 컴퓨터 시장이라는, 비교적 작은 시장에서의 평판이 떨어진 것에 불과하다. 다만 이 역시 일종의 '징후'라는 점에서 '하인리히의 법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인리히의 법칙은 '1 대 29 대 300'으로 알려진, 큰 사고 전에는 수십 차례의 징후와 수백 차례의 경미한 사고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통계적 법칙이다.
실제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달 들어 삼성전자'만' 매도한 배경에 이런 상황도 하나의 원인이 된 것으로 파악된다.
한 외국계 증권사 반도체 담당 연구원은 "D램 시장 상황이 그렇게 나쁘다고 볼 순 없는데 품질 등 이슈로 삼성전자 제품만 제대로 팔리지 않고 있다"며 "AI는 물론 레거시 시장에서도 삼성전자만 밀려나는 상황이라 안 좋게 보는 시각이 업계 전반에 공유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가 레거시 반도체 시장에서 초(超) 격차 기술력을 유지한 건 2017년 11월 10나노급 8GB DDR4 디램 양산까지였다는 평가가 많다. 공교롭게도 2017년 11월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가 출범했고, 정현호 부회장(당시 사장)이 사령탑에 올랐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그간 견고했던 램 제품의 평판마저, 추락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