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재편 무산…정권 교체에 웃었는데, 탄핵 정국에 울었다
입력 2024.12.10 15:28
    6차례 정정신고에도 강행했지만
    두산에너빌리티 결국 주주총회 취소
    계엄 사태 이후 주가 폭락
    "주매청 규모 6000억원 초과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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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계획이 무산됐다. 투자자들의 강력한 반발, 금융당국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계획을 강행했지만, 든든한 지지자였던 현 정부가 탄핵 정국으로 빠지면서 그 파도를 결국 넘지 못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사업회사와 자회사인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투자회사로 분할하는 안건이 상정한 임시주주총회를 취소한다고 10일 공시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예상하지 못한 외부 환경 변화로 주가가 단기간 내 급격히 하락해 주가와 주식매수청구가격 간의 괴리가 크게 확대했다"며 "분할합병 안건의 주총 특별결의의 가결요건의 충족 여부가 불확실하고 (회사가 정한) 주식매수청구권 규모를 초과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며 철회 배경을 설명했다.

      두산그룹 구조개편은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의 지분을 두산로보틱스에 넘기는 게 핵심이었다. 관건은 분할·합병 비율이었는데, 두산에너빌리티는 이제까지 6번의 정정신고서를 제출하고서야 최종적으로 금융감독원의 승인을 얻을 수 있었다. 당초 계획과 비교해 최종 계획은 분할·합병 비율이 일반 투자자들에게 다소 유리해졌단 평가를 받았으나 여전히 주총 통과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행동주의펀드의 반발, 글로벌 연기금들의 반대표 행사, 그리고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의 반대표 행사 권유 등으로 주요 투자자들이 반대표를 행사할 유인이 높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달 초까지만해도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가가 회사가 제시한 주식매수청구권 가격보다 높았기 때문에 주주들이 실익을 따져본다면 주총 통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룹이 선제적으로 철회계획을 밝히진 않았다.

      두산그룹 입장에서 상황이 급격히 악화한 건 계엄 사태 이후였다. 대통령의 계엄 발표 이후부터 펼쳐진 탄핵 정국은 '원전' 사업을 강력히 지원하던 현재 정권의 유지 가능성을 모호하게 했다. 정책적 지원 가능성이 흐릿해지면서 두산에너빌리티의 주가 역시 하락세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주가는 주식매수청구가격(2만890원)을 크게 밑돈 상태가 현재까지도 지속하고 있다.

      주주총회를 3일 앞둔 지난 9일, 두산에너빌리티의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은 '조건부 찬성' 방침을 발표했다. 10일 기준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인 2만890원을 넘을 경우에 한해 찬성표를 행사하겠단 것인데, 전일 종가 대비 20%가량 상승해야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사실 조건부 찬성이라기보단 기권에 가까운 의사 표시인 셈인데, 실익에 따라 표결 향방을 정하겠단 의지로 해석됐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하거나 기권한 주주들만을 대상으로 부여한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지분 6.85%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한다고 해서 반드시 주총통과가 어려운 것만은 아니었다. 찬성표가 확실한 ㈜두산 및 특수관계인들의 지분율이 30%를 넘기 때문에 일반 기관들과 주주들의 지지가 있다면 주총 통과도 노려볼만한 상황이긴 했다. 다만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한인 1월2일까지도 주가가 주매청 가격을 밑돌 경우,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주들의 주매청 행사 규모가 상당히 늘어날 수 있단 부담은 존재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주식매수청구권 한도를 6000억원으로 설정했다. 이날 주가 기준 국민연금이 보유한 지분가치만 7000억원이 넘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다면 주식매수청구권 한도를 훌쩍 넘는다. 

      과거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 역시 합병을 시도했으나 주식매수청구권 신청 규모가 예상보다 늘어남에 따라 계획을 취소한 사례가 있다. 두산그룹 역시 주총 통과 여부와 무관하게 불확실성을 지속할 수 없단 판단이 깔려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산그룹은 전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에 따라 원전 사업이 위기를 맞자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었다. 이후 약 3년간의 구조조정을 통해 산업은행 관리 체제를 벗어날 수 있었고, 현재 정부가 들어서 원전 사업이 정상 궤도로 돌아오며 그룹의 실적도 뚜렷한 개선세를 보였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해외 원전 수출도 앞둔 상황이었고 사업적 성장세를 근거로 구조 개편을 시도했다. 다만 갑작스런 대통령의 계엄 발표에 따른 정치적 혼란에 유탄을 맞은 기업이 됐다.

      다수의 투자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계획을 강행했던 두산그룹은 신뢰도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단 평가다. 사업의 지속 가능성 역시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당분간 사업 및 지배구조 개편의 계획이 재차 등장하긴 어려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