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금융사고 이어지면서
4대 금융지주 회장들 내부통제 강화 의지 밝혀
‘확장’이란 단어는 사라져
-
4대 금융지주 회장들이 신년사를 내고 을사년(乙巳年) 새해를 시작했다. 올해 신년사의 특징은 ‘확장’보단 ‘안정’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신년사 단골 메뉴이던 '1등', '해외진출', '신사업', 'IT' 등은 모두 사라지고, '내부통제'와 '사회기여', 그리고 '주주환원'이 메인 테마로 떠올랐다.
지난해 크고 작은 금융사고로 어려움을 겪은데다, 혼란한 정국 속 수익 확대가 쉽지 않을 거라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경기 침체로 인해 '이자 이익' 확대에 대한 금융당국과 대중의 시선이 차가워진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신한투자증권 파생상품 사고를 겪은 신한금융은 ‘내부통제’에 신년사의 방점을 찍었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2일 “관리, 감독, 평가, 모니터링 전반을 살펴 실효성 있는 내부 통제를 확립하고 핵심 경쟁력으로서 정착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내부 통제에 역점을 두고 전사적 노력을 기울엿지만, 고객과 사회의 눈높이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라고 자성하기도 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스캔들 제로’를 이어가겠다는 의미로 읽히는 부분이다.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의 신년사 역시 ‘안정’에 방점이 찍혔다. 양 회장은 “올해는 어느때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혼돈과 격변이 예상되는 상황으로 고객과 시장의 불안감을 상쇄시킬 수 있는 ‘견고한 신뢰와 안정감’을 보여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주주환원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양 회장은 “지난해 발표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흔들림 없이 이행할 것이며, 고객이 안심하고 KB를 믿고 거래할 수 있도록 주주와 고객의 가치제고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올해 그룹 출범 20년을 내세우며 ‘도전’을 다시금 꺼내 들었다. 이를 위해 계열사 간 긴밀한 협업을 요구했다.
함 회장은 “협업은 자기희생과 헌신에서 시작되며,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얽매이기 보다는 그룹 전채의 계열사 간 시너지를 확대함으로써 비은행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속 가능한 성과를 창출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올해 함 회장의 연임 여부가 결정되는 만큼 그 어느때보다 ‘단합’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2일 신년사를 통해 “올 한 해를 비상경영 체제로 운영하겠다”라고 밝혔다. 작년 손태승 전 회장의 부당대출 사건으로 큰 홍역을 앓았고, 올 해 경제 상황도 낙관하기 힘들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임 회장은 신년사에서 지난해 발생한 금융사고와 관련, “뼈아픈 사고로 고객께 심려를 끼쳤고 임직원들 자긍심에 상처를 입었다”라며 “회장으로서 정말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룹 경영의 전략 방향으로 “내부통제 체계 전반을 근원적으로 혁신하고, 윤리적 기업문화를 확립하겠다”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자회사 핵심 사업 경쟁력과 불확실성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위험 관리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우리금융은 내부적으로 기업문화 개선의 원년으로 올해를 삼을 것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간 여전한 파벌 싸움 등 조직문화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부당대출 등 금융사고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부적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처럼 올해 4대 금융지주 신년사에선 ‘확장’이란 단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해만 해도 양종희 KB금융 지주 회장은 “KB는 리딩이라는 타이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KB 브랜드’ 자체가 대한민국 금융의 스탠다드로 인식돼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 계열사의 선두권 도약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도 "틀을 깨는 혁신과 도전 신한인이 가져가야하는 조건"이라며 '일류(一流) 신한'을 앞세웠다.
지난해 연이어 터진 금융사고뿐 아니라 혼란한 정국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작년 연초부터 ELS 사태를 시작으로 부당대출, 파생상품 사고까지 금융권은 내부통제 홍역을 앓았다.
더불어 혼란한 정국 속에서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것도 섣불리 공격적인 확장 모드로 나아가기 힘든 배경으로 꼽힌다. 금융지주의 핵심 계열사인 은행권은 올해에도 자산 규모 확대에 따른 이자 이익 성장이 예상되는데, 경기가 침체에 접어들며 '이자 장사'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날카로워진 부분이 부담이다. 현 국내 다수당인 야당은 앞서 지난 2023년 11월 은행 초과이익의 40%를 환수하는 '횡재세'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국도 혼란스럽다 보니 4대 금융지주 신년사가 작년과 확연하게 달라졌다”라며 “올해는 다들 몸을 사리자는게 경영의 큰 모토인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