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 생태계 고사 우려…구조혁신펀드가 단비 될까
입력 2025.01.16 07:00
    캐즘 장기화에 배터리사부터 협력사까지 고전
    생태계 하단 기업은 시장성 자금 조달도 난망
    사전적 구조조정 지원하는 구조혁신펀드 주목
    이차전지 관심 높지만 조건 조율은 난항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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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차전지 산업에 드리운 먹구름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 전기차는 안 팔리는데 각국의 지원 정책도 약화했다. 국내 1위 LG에너지솔루션은 작년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73% 줄었다. 다른 배터리사들의 상황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LG화학, 포스코홀딩스, 에코프로비엠, 엘앤에프 등 소재기업들도 타격을 입고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황제주'로 부각됐었지만 전방 산업 부진에 속수무책이다.

      그나마 이차전지 기업과 주력 협력사들의 사정은 낫다.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할 때 성장 자금을 많이 끌어왔었고, 국가 중요 사업으로서 지원 가능성도 크다. 이미 어느 정도 성장 궤도에 오른 터라 시장성 자금을 조달하는 길이 막혀 있지는 않다. 어려운 과정에도 메자닌을 발행하고 기존 차입금도 상환하는 등 재무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문제는 이차전지 생태계 하단에 위치한 배터리 소재·장비 협력사들이다. 기술 변화 과정에서 상위 기업들과 보조를 맞추려면 꾸준히 투자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녹록지 않다. 먼저 주목받다가 공급과잉 상황에 처한 양극재 관련 협력사들은 매출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어 상황이 더 어렵다는 지적이다. 산업 저변이 휘청이면 결국 본류로 위기가 확산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협력사들이 사모펀드(PEF), 그 중에서도 정책 목적의 기업구조혁신펀드 자금을 활용할 가능성에 시선이 모이고 있다.

      구조혁신펀드는 기업의 사전적·사후적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목적으로 운용된다. 한동안은 조선사와 조선 기자재 기업들을 투자처로 주목했었지만 작년부터는 이차전지로 중심 축이 옮겨가는 모습이다. 재작년 4호 구조혁신펀드부터 운용을 관장하고 있는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정책 목적 달성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이차전지 산업에서도 규모가 작은 장비 업체들이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구조혁신펀드와 어려운 기업들을 연결해주는 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구조혁신펀드를 통해 이차전지 분야에 투자하는 사례도 있다. 작년 한국투자PE는 이차전지 소재 기업 CIS케미칼과 전해액 생산업체 덕산일렉테라 등에 투자했다. 투자 당시에도 캐즘(전기차 수요부진) 상황이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고 투자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본격적으로 투자에 나설 5호 구조혁신펀드 운용사(GP)들도 이차전지에 관심을 갖고 있다. 건설, 철강, 화학 등도 부진하지만 그보다는 이차전지 분야가 투자 대비 회수 성과가 좋을 것이란 기대가 있다. 이번 위기를 넘으면 예전과 같은 호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올해 이차전지를 비롯한 첨단전략산업 육성에 37조원의 정책금융을 공급하기로 하는 등 지원 의지를 놓지 않고 있다.

      이차전지 기업 입장에서도 일반적인 PEF보다 구조조정 지원에 자금 60%를 써야 하는 구조혁신펀드를 활용하는 편이 장벽이 낮을 수 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펀드와 기업간 거래 금액과 구조를 둔 실랑이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정이 어려운 기업일수록 경영권을 지키기 어렵고, 활용 자금의 금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 구조혁신펀드 운용사 관계자는 "이차전지 산업 전반이 어렵기 때문에 앞으로 투자 요청이 많이 들어올 것으로 보고 있다"며 "국가 중요 산업이고 장기적으로 성장할 것이라 투자하기에 나쁘진 않지만 기업 쪽에서 높은 금리를 감수하고 돈을 쓰려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