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DX 두고 양사 신경전 지속, 원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
방산업계, "경쟁력 제고 위해서는 협력 필요해"
원팀 두고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지속적으로 말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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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방산 수출 확대를 위해 '팀코리아' 구성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 간 갈등의 골이 깊어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두고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갈등이 재점화하면서다. 양사는 '원팀'을 두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협력 여부를 저울질하는 모습이다.
최근 방사청은 "양 조선업체가 함정수출 사업의 전략적 대응을 위해 원팀 구성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며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두 업체는 미묘하게 다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큰 틀의 합의가 있었지만 세부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한화오션은 "합의가 있었다는 건 확정적 의미인데 확정된 것은 없다"며 "관련 논의도 방사청 주관으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최근 진행 중인 원팀코리아에 대한 논의는 KDDX 건과는 별개로, '해외 수출'에 한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관련업계에서는 두 업체가 KDDX 사업과 관련해 신경전을 지속하고 있어 수출에 한해서도 협력이 쉽지 않을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갈등은 산업통상자원부가 KDDX 사업의 방산업체로 두 업체를 복수지정하며 재점화했다. 문제는 법적문제로 귀결된다. 과거 양사 간 갈등이 극으로 치달았던 '군사기밀 유출 사건'을 두고, 해당 사건이 KDDX 사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HD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의 함정 관련 자료를 몰래 유출한 사건이 벌어졌고, 2022년 11월 사건 관계자 9명 전원이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한화오션 측은 HD현대중공업의 보안 리스크가 여전하다고 보고 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유죄판결을 받아 이미 원칙이 깨졌는데, 기존의 원칙인 수의계약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라며 "경쟁입찰 혹은 공동건조 방식 등의 다방면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 측은 보안 관련 사법리스크는 모두 해소됐다는 입장이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유죄판결을 받았고 2022년 11월부터 3년간 제안서 평가에서 1.8점의 감점을 받고 있다"며 "소수점 차이로 떨어지는 시장이라 이미 일감을 타 회사에 많이 내어줘 특수선 도크에 일감이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함정 건조 사업은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초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통상 함정의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방산업체로 지정돼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를 진행한다. KDDX의 개념설계는 한화오션이,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각각 수행했다.
양사가 KDDX 최종 사업자 선정 경쟁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명확하다. 양사 모두 이지스 전투 체계를 모두 국내 기술로 만드는 첫 국책 사업인 만큼 '상징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또, 방산업계 내에서 함정 건조 사업의 미래 사업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과거에는 KDDX 사업을 두고 양사가 '자존심 싸움을 벌인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최근 들어 해양 방산 시장이 확대되며 전략적 가치가 커진 모습이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업 수주 여부가 향후 해외 방산 시장 진출 및 포트폴리오 강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KDDX 사업은 7조8000억원의 대규모 사업이고, 해당 사업을 끝으로 당분간 우리 해군이 발주하는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소식이 전무한 상황이기에 양사가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지난 4일 열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K-방산 이슈 세미나'에서 한화오션은 KDDX 사업과 관련, 국익을 위한 원팀코리아를 강조했다. HD현대중공업은 향후 한국의 방위산업을 위한 원팀코리아를 강조하면서도 선도함 기본설계에 들어간 연구개발 비용 등의 문제를 꼬집었다.
양사 모두 '국익'을 내걸고 있지만 입장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모습이다. 협력이 국익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면 사안 별 공동 대응이 당연하지만, 양측은 ‘원팀’이라는 단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며 각자의 입장을 바꾸고 있다. 작년 10월 캐나다 잠수함 수주전을 두고는 HD현대가 ‘팀코리아’를 주장하며 한화오션과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웠지만, 한화오션은 단독 수주에 무게를 둔 발언을 잇따라 내놨다.
방산업계 내에서는 수출에 있어 원팀이 절실하다는 평가다. 방위사업은 국내에서 수익을 내는 데 한계가 있어 결국 수출을 해야 하는데, 독일과 일본의 방산 기업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력을 갖춘 상황이기 때문이다. 타국의 방산업체들은 컨소시엄을 꾸려 한 팀으로 해외 수주에 나서는 상황이다. 지난해 호주 호위함 입찰 경쟁에서 한국이 탈락한 것과 관련, 양사의 협력 부재가 주요 원인으로 분석됐다.
일각에서는 양사 간 합의를 이룬다고 해도 협력은 단기적일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이미 각 사가 잘하는 분야가 뚜렷하기에 기업 입장에서는 원팀이어야 하는 당위성이 약하다는 설명이다.
호주 호위함 입찰 경쟁에서 실패한 원인을 협력의 부재로 꼽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애초에 호주에서 원하는 사양을 두 업체가 못 맞췄기 때문이다. 한국의 두 업체는 '가성비'를 내세웠지만, 호주에서는 항행 거리가 긴 호위함을 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방위산업 관련 전문가는 "KDDX 건은 이미 미뤄질대로 미뤄진 상황이니 양사 모두 상반기 내로 나올 방사청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향후 방산업 수출에 있어서는 국가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정부와 기업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