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성 중시… 보수적인 영업기조 유지
고위험 상품 은행 판매 어려워져
증권 협업 늘며 '풍선효과'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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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은행계 증권사들이 올해도 자산관리(WM) 중심의 신중한 영업 기조를 유지할 전망이다. 부동산 PF 리스크와 경기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기업금융(IB) 부문에 힘을 쏟기 어려운 까닭이다.
이 과정에서 그룹 및 은행과의 협업이 다시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사모펀드 및 주식연계증권(ELS) 사태 이후 은행 창구에서 고위험 상품 영업이 쉽지 않아진 까닭이다. 은행ㆍ증권 연계영업의 재확대가 차후 또 다른 금융사고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계 증권사들은 대부분 지난해 전년대비 좋은 실적을 냈다. 2023년 2924억원, 534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던 하나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은 지난해 2251억원, 25억원의 순익을 내며 흑자전환했다.
KB증권은 5857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전년대비 50%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NH투자증권도 24% 늘어난 6866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금융사고 여파로 대규모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했던 신한투자증권 역시 2023년 1009억원 대비 크게 증가한 2458억원 순이익을 기록했다.
실적 증가의 배경은 브로커리지와 WM 분야였다. 지난해 미국 증시의 호황으로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투자 비중이 증가한 것이 핵심으로 꼽힌다.
지난해 4분기 해외주식 거래대금은 258조원으로 전 분기 대비 34.9% 증가했다. 통상적으로 해외주식 수수료율은 국내 주식 거래 수수료율보다 두 배 이상 높아 그만큼 증권사의 수수료 이익 역시 증가한다. 또 거래대금 확대뿐만 아니라 금융상품 판매 관련 수수료도 증가했다.
신한투자증권의 경우 지난해 수탁수수료와 금융상품수수료 수익이 전년 대비 각각 10%, 15% 늘었다. KB증권 역시 동일 항목에서 수익이 4.6%, 13.6% 증가했다. 하나증권도 수탁수수료 수익이 5.1% 올랐고 WM 부문의 영업지표인 수익증권수수료 수익이 전년 대비 13.9% 증가했다.
IB 부문에선 희비가 교차했다. KB증권은 IB부문에서 전년 대비 14.9% 증가한 3592억원의 수수료 수익을 기록했으나 신한투자증권의 IB 부문 수익은 전년 대비 11.2% 감소한 1,878억원에 그쳤다. 우리증권 역시 IB 수수료 수입이 전년 대비 10.5% 줄어든 170억원이었다. 2023년부터 본격화된 글로벌 경기침체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둔화에 따른 충당금 등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은행계 증권사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브로커리지 등 리테일 쪽 강화를 통한 수익 창출 전략을 이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주식투자 비중 증가 등 리테일 분야 성장세가 실적으로 확인됐고 부동산 PF 부실 등 위험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IB 부문보단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은행 등 그룹과의 협업도 늘려나갈 전망이다. 은행계 증권사는 리테일 분야에서 그룹 내 은행과 협력을 통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까닭이다. 실제로 KB증권은 WM 부문 강화를 위해 지난해 12월 'KB 골드앤와이즈 더 퍼스트' 도곡센터를 설립해 지점을 늘려나가고 있다.
'라임사태' 이후 은행ㆍ증권 복합점포 확장에 제동을 걸었던 신한금융그룹 역시 신한투자증권에 자산관리총괄 조직을 신설하고 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WM 부문 사업 강화에 나섰다.
잇딴 금융사고 후 대체투자 및 파생상품을 은행 창구에서 판매하기가 어려워지며, 주요 은행계 금융그룹들이 증권계열사와의 협업을 강화하는 추세라는 분석이다. 금융당국 역시 고위험ㆍ고난도 금융상품의 경우 은행별로 극소수 거점점포에서만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 실장은 “은행계 증권사는 기본적으로 비은행계 증권사보다 ‘안전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영업 활동 역시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며 “경기침체 장기화와 부동산 PF 부진 등으로 IB 부문의 리스크가 커질 수 있는 만큼 은행계 증권사는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한 리테일 분야를 강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은행계 증권사가 IB 부문을 강화한다고 해도 부동산 경기 악화란 리스크가 있는 부동산 PF 보단 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 등 기업자금 조달 사업 쪽으로 포트폴리오를 짤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은행ㆍ증권 연계 영업의 확대가 또 다른 금융사고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그룹 입장에선 수수료 수익을 늘리기 위해 고수익ㆍ고위험 상품 판매를 포기할 수 없는만큼, 은행 고객을 증권으로 이동시키며 '풍선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결국 한정된 고객 풀(pool) 내에서 수익을 내야 하는만큼, 은행ㆍ증권 연계영업이 활발해질수록 증권사는 고위험 상품 판매에 힘을 실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증권사 창구 판매 상품의 경우 금융당국이 '자기책임 원칙'을 좀 더 엄정하게 적용하는 점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