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부, "연간 VC 업계 관련 감사 제보·민원성 신고 170건"
정책자금 의존 구조…중ㆍ소형 VC "생존 위해 제도 보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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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유력 대선 후보들이 잇따라 대규모 자금 투입 공약을 내놓자, 모태펀드 등 정책자금 출자사업 확대 기대감이 커지며 벤처캐피탈(VC) 업계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정책자금 관련 사업 선점을 둘러싼 VC 간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인 가운데, 경쟁 과열로 일부 업체가 익명제보나 투서 등 '비공식 경로'를 통해 경쟁사를 견제하는 행태가 빈번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최근 업계에서는 모태펀드 자금을 둘러싼 의혹이 외부로 먼저 알려지며 긴장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지난 3월, 한 VC가 지원받은 모태펀드 자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관련 기관이 사실관계 확인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업체는 이에 대해 "이미 중소벤처기업부 등으로부터 감사를 수차례 받은 만큼 실체 없는 의혹"이라고 반박했다. 중기부 산하 공공기관 한국벤처투자 측은 "비밀 유지 조항에 따라 수사 진행 여부나 상황 등은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를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경쟁 업체 등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투서 등을 넣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통상 업계 내 비위 행위는 풍문으로 실무자들에게 먼저 알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외부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이번 사례는 익명 제보나 투서를 통한 제기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VC 관계자는 "업계가 워낙 좁다 보니 한두 다리만 건너면 비위 사실이나 의혹은 금방 퍼지게 된다"며 "이처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의혹이 나오는 경우는 대부분 익명 제보나 투서가 배경일 때가 많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VC업계 관련 자체 검사, 제보, 민원성 신고는 연간 평균 170건에 달한다. 대다수 제보는 익명으로 접수돼 제보의 배경이나 구체적인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책자금이 확대가 이뤄지면 자금 수급이 완화돼 VC 간 경쟁도 줄어들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현장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라는 분석이 많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처럼 유동성이 과잉 공급되던 때에는 중소 VC들도 비교적 수월하게 정책자금 등을 조달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글로벌 증시와 금융시장이 위축된 상황이다. 이로 인해 LP 등은 안정성을 더욱 중시하게 됐고, 풀린 정책자금조차 경쟁력 있는 대형 VC에게 쏠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이는 모태펀드의 제도 구조와도 맞물린다는 분석이다. 모태펀드 출자사업은 정량평가 비중이 높은 심사 구조를 갖고 있어, 객관적인 수치와 트랙 레코드 중심의 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실적이 부족한 VC들은 본질적인 투자 역량과 무관하게 평가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이기 쉽다. 이에 일부 업체가 경쟁 과정서 상대의 평판에 흠집을 내거나 부정적 이슈를 부각하는 방식으로 간접 견제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한 VC 운용담당자는 "모태펀드 출자사업 전후에 이같은 익명 제보나 투서가 많이 나온다"며 "한정된 자금을 두고 VC 모두가 달려드는 구조다 보니 이런 방식이 꾸준히 발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는 이 같은 '비공식 견제' 행위가 발생하는 배경으로 국내 벤처투자 시장의 구조적 제약을 지적하기도 한다. 중ㆍ소형 VC 입장에서는 민간 자금 유치 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 벤처 투자 특성상 금융권 레버리지 활용도 어려워 자체 수익 구조만으로는 펀드 결성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정책자금은 단순한 재원이 아니라 VC의 실질적인 생존 기반으로 작용하며, 이를 둘러싼 경쟁이 과열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중소형 VC 관계자는 "국내 VC는 인수금융 같은 레버리지 수단이 거의 없어 사실상 순수 자본만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구조에서는 결국 공적자금, 특히 모태펀드 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