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시장 간보는 발행사들…주관사들 미매각 처리 '골머리'
입력 2025.07.02 07:00
    금리 인하 기대에 조기 발행 움직임
    롯데·CJ 신용도 낮은 계열사 중심
    '나눠 찍기' 등 탐색적 조달 전략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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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기업 계열사들의 회사채를 통한 조달 시도가 다시 눈에 띄고 있다. 상반기 발행량이 지난해에 준하는 수준을 기록하며 활발했던 가운데, 일부 기업들은 하반기 금리 인하 기대감을 반영해 조기 발행을 검토하거나 시장 반응을 확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신용등급이 낮거나 조달 여건이 까다로운 기업들이 제한적으로 수요예측에 나서는 사례가 늘었지만, 일부 시도는 미매각으로 마무리되며 주관사의 부담으로 남았다. 발행사들이 주관사와의 '온도차'를 안은 채 발행을 강행하고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이달 말 롯데건설은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전량 미매각을 기록했다. 대표 주관사는 KB증권·NH증권·한국투자증권·키움증권 등이다. A0 신용등급 기준 1년물 5.7%, 1.5년물 5.9%라는 금리를 제시했지만 기관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결국 롯데건설은 총액인수 계약에 따라 증권사들이 물량 전량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인수단은 할인매각 방식으로 시장에서 물량을 나눠 파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 대형 증권사 IB부문 관계자는 "수요예측 분위기가 나쁠 것을 예상했음에도 롯데그룹의 후속 물량을 염두에 두고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도 "내심 꺼리면서도 상황상 빠지기 어려운 딜이었다"며 "국내 회사채 시장은 연간 30개 정도의 발행사만 돌면 대부분이 커버되기 때문에 참여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롯데케미칼도 하반기 회사채 시장 복귀를 채비하고 있다. 지난해 기한이익상실(EOD) 위기를 겪은 이후 사실상 첫 공모 회사채 발행이 될 전망이다. 당시 회사채 재무약정을 어기며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내놓고 상황을 봉합했던 롯데케미칼은, 주관사들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반기 타이밍을 보겠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사 롯데시네마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 역시 조심스럽게 조달 시장에 발을 들이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총 1600억원 규모로 기업어음(CP)을 찍었다. 다만 발행 주관 업무를 맡은 증권사 내부에선 "꼭 해야 하느냐"는 이견도 분분했다. 현재는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검토 중인데, 주관사들은 내심 한숨을 쉬는 분위기다. 

      한 대형 증권사 RM은 "최근 CP나 신종자본증권 가운데 잘 팔리는 경우가 드물다"며 "롯데컬처웍스 역시 내부적으로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

      이처럼 회사채 시장에 살짝 얼굴을 비추려는 움직임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CJ CGV는 지난달 신종자본증권 수요예측에서 400억원 소량 모집에도 100억원의 주문만 받으며 미매각을 피하지 못했다. 신용등급은 A-지만, 신종자본증권 특성상 실제 투자자들이 인식하는 위험은 BBB 수준이라는 점도 외면의 배경이 됐다. 주관사단 내부에선 시기를 조율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발행사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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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발행 규모를 나눠 시장 반응을 확인한 뒤 추가 발행에 나서는 전략도 눈에 띈다. 대한항공은 올해만 1월과 5월 두 차례 각각 35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1월 연초 효과와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 기대감 등이 맞물리며 수요가 빠르게 몰린 영향이다. 그룹 물류 계열사 한진도 1월과 5월에 각각 나눠 약 2500억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BBB급 HL D&I는 건설업 불황 속 1월과 6월 각각 810억, 900억원을 발행하며 시장 반응을 탐색했다. 한 대형 증권사 IB본부장은 "A급이나 BBB급 비우량채는 단번에 수천억원을 찍는 게 부담이라, 먼저 시장 탐색 발행을 하고 여건을 봐가며 추가 발행하는 방식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반기에는 이 같은 '간보기' 흐름이 더 확산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근 증권가에선 8~9월 이후 금리 인하가 한 차례 이상 단행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앞선 증권사 본부장은 "3분기에 금리 저점을 노려 올해 말 또는 내년 조달 수요를 앞당기는 기업들이 나올 수 있다"며 "조기상환 검토하던 기업들도 분위기를 보고 다시 발행으로 돌아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하반기 수급 환경은 그리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7월은 전통적인 채권시장 비수기로 꼽히고, 3분기 중 추경안 통과 시 대규모 국채 발행도 예고돼 있다. 홈플러스 기업회생 신청 이후 BBB급 이하 회사채에 대한 리테일(개인 투자자) 심리도 위축돼 있다. 

      앞선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홈플러스 사태 이후 리테일 고객들의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강화됐다"며 "산업은행이나 연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이 나서 투자해준다는 기대가 있어야 비우량채 시장도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하반기 회사채 시장은 '누가, 언제, 얼마나 조달하느냐'보다 '누가 감당할 수 있느냐', 그리고 '왜 그 물량을 감당하려 하느냐'가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발행사의 신용도나 구조뿐 아니라, 주관사의 수요예측 역량과 셀다운 능력이 직결되는 구조인 까닭이다. 일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주요 발행사와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전략적 인수'가 가능한 증권사 중심으로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