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신규 스팩상장 3건…최근 3년 합병 성사율도 50%대로 낮아
PIPE 규제에 대형 스팩딜 불가능…증권사 실무 역량 축적도 막혀
"정부 '금융 선진화' 기조와도 괴리, 스팩 자금조달 경로 정상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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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시장은 신규 상장 3건에 그치며 유례없는 침체를 겪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증시 반등과 함께 일부 증권사를 중심으로 신규 스팩 발행 재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업계에선 구조적 제약이 해소되지 않는 한 실질적인 스팩 시장 회복은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순한 신규 상장 건수보다는 업계의 스팩 인수합병(M&A) 역량 부족, PIPE(Private Investment in Public Equity) 거래의 비활성화 등 근본적 한계가 맞물리며, 스팩의 본래 취지인 '유망 기업 발굴과 효율적 상장 경로 제공' 기능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스팩 시장이 구조적으로 위축된 배경에는 단순한 시장 수급이나 증시 이슈만이 아닌, 제도적·실무적 결함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PIPE 거래가 사실상 무력화된 현행 규제 구조가 스팩 시장 정상화를 가로막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PIPE는 스팩이 인수합병을 추진할 때 전략적 투자자나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조달받는 사모 방식 유상증자로, 미국 등 선진국에선 자금 조달과 동시에 딜의 품질을 검증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그러나 국내에선 상법상 이사회 결의로 가능한 PIPE조차, 한국거래소 정관상 '주주총회 특별결의' 요건으로 제한되면서 사실상 활성화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처럼 PIPE가 막히다 보니 스팩이 자체 자금만으로는 유니콘 기업 등 기업가치가 큰 유망 기업을 인수하기 어렵고, 자연히 인수합병까지 이어지는 스팩 딜 자체가 성사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이 구조가 증권사 내부의 실무 역량 축적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PIPE를 활용한 스팩 인수합병 자체가 막히면서, 증권사들도 실질적인 합병 구조화 경험을 축적하기 어렵고, 결국 스팩 신규 상장에만 집중하는 왜곡된 흐름이 반복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최근 상장된 국내 스팩 다수는 공모 규모가 100억원 안팎에 그쳐, 별도 자금 조달 수단(PIPE 등)이 없는 한 시가총액이 작은 소형 비상장사 외엔 인수 여력이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삼성스팩 9호와의 합병을 통해 코스닥에 상장한 케이지에이의 경우, 200억원 규모의 공모금으로 조성된 스팩으로는 2017년 이후 약 8년 만에 등장한 사례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글로벌 투자은행(IB) 제프리스(Jefferies)가 PIPE를 활용해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 기업을 대상으로 대형 스팩 합병을 주도하는 미국 시장과는 대조적인 구조다.
결과적으로 '스팩 신규 상장만 많고 합병은 잘 이뤄지지 않는' 구조가 고착되며, 국내 스팩 시장 전체의 신뢰도도 떨어지고 있다. 실제 주요 스팩 주관 증권사의 최근 3년 평균 합병 성공률은 50%대에 머무른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PIPE라는 핵심 수단이 막혀 있는 상황에선 증권사도 M&A 역량을 쌓기 어려워지고, 이는 다시 양질의 스팩 딜 부재로 이어진다"며 "결국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스팩 시장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팩에서의 PIPE 거래 허용이 정부가 추진 중인 자본시장 선진화 기조에도 부합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는 최근 자본시장 선진화를 핵심 정책으로 제시하며, 상법 개정 등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이사회 충실의무 강화, 중소기업 자금조달 경로의 다양화, 코스닥 시장 활성화 등이 주요 과제로 언급된다.
PIPE는 스팩 합병 과정에서 외부 투자자 유치를 통한 자금 조달 수단으로 작동하는 동시에, 전략적 투자자의 참여를 통해 합병 대상 기업의 실질 가치를 검증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이는 자본시장 내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고, 우량 중소기업이 보다 신속하고 투명하게 증시에 진입할 수 있는 구조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정부가 강조하는 '효율적 자금조달 체계 구축'과 '시장 신뢰 제고'라는 목표와 맞닿아 있다.
아울러 이사회 충실의무 강화 등 지배구조 개편이 병행될 경우, 기존의 사전 규제를 사후 책임 중심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도 마련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PIPE 거래는 상법상 이사회 결의만으로도 가능한데, 거래소의 '숨은 규제'가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요구하면서 사실상 제도를 막고 있다"며 "이로 인해 스팩 합병이 어려워지고, 증권사의 실무 역량과 시장 신뢰까지 저하되는 구조가 반복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이야말로 PIPE 규제를 정상화해 스팩 본연의 기능을 회복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