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한투 관련 거래 '보고대상' 지정…"스크리닝 목적일 듯"
SK온 프리IPO 청산 이후 균열 조짐…독이 된 IRR 10% 수완
최근까지도 거래 활발했지만 당분간 한투證 주관 힘들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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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그룹은 한국투자금융지주의 오랜 단골이었다. 지난 수년 SK그룹이 자본시장 문을 두드릴 때마다 한국금융지주의 적극적인 참여가 두드러졌다. 그러나 숨 가빴던 올해 사업 조정(리밸런싱) 작업을 마무리하면서부터 양사 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SK그룹은 각 계열사가 한국금융지주와 거래한 내역을 다시 들여다보고 앞으로 신규 계약을 결정할 때 SK㈜까지 보고를 거치도록 지시했다. 원래도 컨트롤타워인 SK㈜가 각 계열에서 진행 중인 거래를 수시로 살피고 관여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특정 금융사를 콕 집어 보고절차를 재상기한 것이다. 투자은행(IB) 커버리지 사이에서는 양사 관계의 첨병 격인 한국투자증권부터 SK그룹 일감에서 후순위로 밀려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대형 증권사 한 커버리지 담당은 "한국투자증권은 당분간 SK그룹에서 나오는 거래를 주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라며 "원래 각 계열사마다 거래 주관사 선정은 자율이었는데 이제 수뇌부 보고를 거쳐야 한다. 한국금융지주를 압박할 목적으로 스크리닝을 하겠다는 의도로 받아들여진다"라고 설명했다.
그간의 관계를 감안하면 이례적 조치란 평이다. 한국투자증권을 필두로 한국금융지주 계열 금융사들이 SK그룹의 앓던 이를 빼준 사례가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2022년 진행된 SK온의 상장전투자유치(프리 IPO)다. 당시 SK온은 다수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와의 협상이 틀어진 데다 시중금리가 급격히 치솟으면서 투자유치에 애를 먹고 있었다.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한투PE)가 앵커 투자자로 나서면서 그해 연말 8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당시 한투PE가 조성한 펀드에는 한국투자캐피탈과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등 계열 금융사가 핵심 출자자(LP)로 참여하기도 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당시 출자 시장 한파로 펀딩이 어렵게 되자 한국투자증권 리테일 창구에서까지 자금 모집이 이뤄지면서 SK온 투자가 이뤄졌다"라며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과 최재원 당시 SK온 수석부회장 사이 관계가 조명되기도 했고, 결과적으로 한국금융지주가 SK그룹과의 관계를 완전히 굳혔다는 관전평이 나왔다"라고 말했다.
이듬해 한투PE 컨소시엄이 나머지 4000억원을 투자할 때도 한국금융지주 계열 금융사들은 핵심 LP로 이름을 올렸다. 그룹 일감에서 한국투자증권의 역할도 점점 부각됐다. 원래도 대형 증권사 중 공격적인 영업력으로 정평이 난 곳이지만 SK온에 대한 과감한 베팅을 감안하면 마땅한 대접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한국투자증권은 작년 9월 SK온이 주가수익스와프(PRS) 방식으로 1조원 규모 제 3자배정 유상증자에 나설 때도 단일 금융사 중 가장 많은 금액(4000억원)을 책임졌다. 직전인 7월 SK온의 5000억원 영구채 발행에서도 절반 이상을 직접 인수했다. 2023년 SK이노베이션 유상증자 당시 대표 주관 자리를 꿰찼듯 향후 SK온 기업공개(IPO)도 한국투자증권이 맡게 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달 SK이노베이션이 발행한 7000억원 영구채에서도 참여기관 중 가장 많은 물량(2000억원)을 받아갔다.
SK그룹의 기류가 갑자기 바뀐 배경을 두고선 여러 추정이 오르내린다.
우선 SK그룹이 SK온 재무적투자자(FI) 지분을 조기 상환한 과정이 조명된다. 당초 한투PE 컨소시엄을 비롯한 FI들은 적격상장(Q-IPO)을 조건으로 7.5%의 내부수익률(IRR)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FI들은 지난해 SK엔텀·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의 합병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주주간계약에 더 많은 권리를 요구했고, 그 덕에 청산 때 IRR 10% 이상의 회수 성과를 끌어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투PE를 통해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입한 한국금융지주가 가장 많은 수익을 챙겼다.
SK그룹 입장에서 보면 IPO 불확실성을 겪을 필요 없이 조기 회수를 허용한 대가로 당초 약정보다 250bp(1bp=0.01%) 이상 웃돈을 얹어준 셈이다. 협상 과정에서 이사회 자리를 확보한 FI들이 수완이 상당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SK온 이사회에는 김마이클민규 한투PE 대표와 부재훈 MBK파트너스 스페셜시튜에이션스 부회장이 각각 기타비상무이사로 참여하고 있었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협상 과정에서 외국계 큰손들로 분류된 MBK컨소시엄보다도 한투PE를 비롯한 국내 FI들의 목소리가 더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라며 "GP가 수익 극대화를 노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간의 관계나 FI로 참여할 수 있었던 배경 등을 감안하면 SK그룹 심기가 좋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6월 SKC가 자기주식으로 발행한 2600억원 규모 사모 영구교환사채(EB)도 같은 맥락에서 거론된다. 해당 EB는 한투PE가 2500원을 인수하며 물량 대부분을 소화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한투PE가 회수 불확실성을 방지할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계약에 담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 것으로 확인된다. 계열사 매각에 대한 동의권 외 동반매도청구권(태그얼롱) 등 통상 사채권자에게 주어지는 권리 이상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정황을 종합하면, 한투PE를 위시한 한국금융지주의 투자 수완이나 협상력 발휘가 SK그룹과의 관계에 적잖은 부담을 남긴 모습이다. 실제로 SK그룹 수뇌부에서 한국금융지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관계나 신뢰 기반의 파트너로 여겨왔는데, 실제론 수익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인 탓에 반감이 불거졌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SK그룹 실무진을 상대로 영업을 이어가야 하는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연좌제 격으로 휘말려 들게 됐다는 관전평도 나온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발행사가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내린 결정에 대해 따로 입장은 없다"라고 말했다.
SK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진행중인 그룹 차원 리밸런싱 전략의 일관된 추진을 위해 지주사와 관련 자회사가 한국투자증권 뿐만 아니라 모든 금융사와의 거래를 통상적으로 스크리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