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개정 없인 불가능…상임위 권한 조정 '깜깜'
정무위 축소·기재위 강화…국회 권한 지형도 변화
금융권 "국감 이중 대응·인력난 불가피" 우려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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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정부가 금융위원회를 해체하고 금융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는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정치권과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정부는 정책과 감독을 분리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상임위 업무 분장과 피감기관의 국회 대응 부담이라는 현실적 난제가 더 크게 다가온다는 평가다.
이번 개편안은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위가 출범한 지 17년 만에 금융정책·감독 체계를 다시 갈라놓는 조치다. 당시 정부는 재정경제부 산하 금융정책국과 금융감독위원회를 통합해 금융위원회를 만들었다. 금융정책과 감독을 한 손에 쥐어 위기 대응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금융위의 권한 집중과 책임 불분명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재명 정부는 금융정책을 다시 기재부로 되돌려 '경제부처의 큰 그림' 속에서 관리하고, 감독은 금감원이 맡는 이원화를 추진하고 있다. 금융정책과 규율을 기재부의 거시경제 정책과 연동하겠다는 의도다. 동시에 금감원의 독립성을 강화해 금융사고·소비자보호를 보다 충실히 챙기겠다는 논리다.
문제는 국회다.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반드시 국회법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 현행 국회법 제37조에는 금융위원회가 정무위원회 소관으로 명시돼 있다. 금융정책이 기재부로 이관되면 기재위 소관으로 바꿔야 한다. 과거 정부조직법 개편 때도 늘 국회법 개정으로 상임위 소관을 정리했다.
그러나 현재 국회 내부 논의는 전무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 야당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금융위 해체에 따라 상임위 조정이 불가피하지만, 관련한 상임위 권한 조정 논의는 현재까지 전혀 없었다. (정부·여당은) 국회법 개정은 그때 가서 보겠다는 수준"이라며 "올해 국감은 현행 체제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올해 가을 국정감사에는 변화가 없고, 내년 이후에야 제도 변화가 반영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회 상임위 지형이 바뀌면 정무위와 기재위의 역할도 크게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정무위가 금융정책과 감독 전반을 다뤘지만, 앞으로는 기재위가 금융정책을 흡수하게 된다. 정무위는 감독·소비자보호 중심으로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정무위의 힘이 줄어드는 대신, 기재위는 세제·재정과 금융정책까지 통괄하며 '경제 컨트롤타워' 상임위로 위상이 강화된다.
이 같은 변화는 정치적으로도 민감하다. 정무위는 그동안 금융정책을 매개로 정당 간 정책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무대였다. 상임위 권한이 기재위로 이동하면 국회의 정책 토론 지형도 달라진다. 여야 모두 금융정책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정책 영향력이 달라질 수 있어, 상임위 재편은 단순 절차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이라는 평가다.
피감기관인 금융권의 부담도 커진다. 그동안 은행·증권·보험사는 정무위 국감에 집중해 대응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기재위와 정무위를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 한 은행권 대관 담당자는 "금융위 설치법 손질과 금감위 신설 법령 근거가 나와야 대응이 가능하다"며 "아직까진 관련 법령이 구체화하지 않아 어떻게 대응책을 세우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편이 현실화한다면) 정무위와 기재위를 모두 커버해야 하니 대관팀 인력이 부족하다. 여의도와 세종을 동시에 오가야 해 출장·인력 재배치도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재부는 세종에 본부를 두고 있어, 금융권 대관 담당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와 세종을 동시에 챙겨야 하는 상황이 현실화될 수 있다.
대관업무는 단순한 일정 대응이 아니다. 의원실과의 소통, 질의 대응 준비, 국감 자료 제출 등 전담 인력이 필요하다. 금융권 관계자들이 "지금 인력으로는 이중 상임위 대응이 어렵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상임위 조정이 언제 현실화될지도 변수다. 상임위 업무 분장은 교섭단체 원내대표 협상으로 이뤄지는데,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면 국회법 개정이 지연된다. 여야 협상이 지연될 경우 상임위 조정은 내년 하반기 이후로 밀릴 수 있다. 정부가 목표로 한 내년 1월까지 금융당국 조직개편이 마무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변수도 크다. 현 정무위원장은 윤한홍 위원장으로, 야당인 국민의힘 소속이다. 윤 위원장은 현재 공개적으로 개편안에 반대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법사위·본회의 관문이 남아 있어 언제든 제동이 걸릴 수 있다. 필요시 여당이 패스트트랙 카드를 꺼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정치적 갈등을 키울 수 있다.
결국 금융위 해체가 현실화되려면 단순히 정부조직법만 통과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회법 개정, 상임위 분장 협상, 관련 법령 정비 등 다층의 절차를 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금융권은 정무위·기재위 양쪽 국감을 동시에 대비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는 금융위 해체를 효율성 강화로 설명하지만, 현장에서는 국감 이중 대응과 인력난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라며 "정책은 기재위, 감독은 정무위로 나뉘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 결국 그 비용과 혼란은 금융권이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