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 대비 준비 부족 지적…전산 불안 재확인
'디지털 리딩뱅크' 구호 무색, 과제만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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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NH농협은행이 올해 핵심 프로젝트로 추진해온 'NH인증서' 업그레이드 도입을 전격 연기했다. 인증서 신규 발급 과정에서 전산 오류가 발생해 일부 고객의 온라인 거래가 하루 종일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진 탓이다. ‘전산에 약하다’는 오랜 평가를 불식시키지 못한 채, 인프라 부족이 다시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협은행은 지난 15일 새로운 본인 인증 수단으로 새 NH인증서를 도입했다. 지난 4월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본인확인기관으로 신규 지정된 후 5개월만이다. 농협은행은 선정 당시 NH인증서를 다양한 금융·공공·민간 제휴 온라인서비스에 활용할 수 있도록 클라우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농협은행은 새 NH인증서 출시 당일부터 기존 인증서를 거래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기존 인증서로는 계좌조회 등 단순 업무만 가능하도록 제한하고, 새 NH인증서를 신규 발급해 사용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이로 인해 혼란이 벌어졌다. 새 인증서 발급 수요가 몰리자 인증서 발급 페이지 접속 대기에만 20~30분이 소요됐다. 서버 부하가 가중되며 신분증 확인·비밀번호 입력 단계에서 전산이 멈추는 사례가 속출했다. 고객센터에는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
결국 농협은행은 도입 연기를 결정했다. 농협은행은 15일 늦은 오후 고객 사과문과 함께 NH인증서 업그레이드를 연기하겠다고 공지했다. 이체 등 금융서비스는 기존 인증서로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새로운 NH인증서 도입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경쟁사와 비교되는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KB국민은행은 2022년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된 뒤, 2023년 4월 자체 인증서 전면 도입에 앞서 재발급 절차를 사전 진행해 기존 고객 1200만명 가운데 1000만명의 전환을 이미 완료했다. 같은 시기 본인확인기관으로 지정된 신한은행 역시 670만여명 규모의 인증서 재발급 고객에 대한 절차가 원활히 이뤄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인증서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고객 불편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농협은행이 NH인증서 도입을 연기한 것은 다소 의아하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이전부터 반복돼 온 농협은행의 '전산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다. 국내 시중은행의 전산관련 금융사고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다만 농협은행의 경우 2011년 4월 대규모 전산망 마비로 3일 가량 고객 서비스가 중지된 이후 전산 인프라 및 보안의식이 부족한 금융회사의 대명사로 꼽혀왔다.
이후 2014년 고객 예금 증발 사고, 2018년 농협은행 직원들의 금융 전산망 조작 사고 등이 발생하며 이 같은 이미지는 개선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 6월에도 위조 신분증을 발각하지 못하고 사기범에게 5200만원의 대출을 허용해 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올 초 취임한 강태영 농협은행장은 '디지털 리딩뱅크 도약'을 내세웠던 바 있다. 네이버 데이터센터에 방문하고, 생성형 인공지능(AI) 플랫폼 구축에 착수하며 '디지털 행장'을 자처했다. 강 행장은 이번 NH인증서 도입을 앞두고도 "고객 편의성과 보안성을 더욱 높이고 차별화된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포부를 밝혔지만, 첫 서비스 출시 과정에서 난관을 겪으며 과제가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