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시장 귀환 알린 외국계 IB…고난도 크로스보더 거래서 존재감
입력 2025.09.30 07:00
    3분기 DIG에어가스 등 대형 M&A 계약 속속
    외국계 IB, 회계법인 주도 시장서 존재감 부상
    국내 바이어 위축, 해외 바이어 물색 중요해져
    "회계법인-IB 격차 여전"…당분간 역할론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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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외국계 투자은행(IB)들이 M&A 시장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기업과 사모펀드(PEF)들이 국내에 발 묶이는 사이 IB들은 대형 회계법인에 밀려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회계법인이 처리하기 힘들거나 해외 고객이 참여하는 거래가 늘면서 IB들의 활용도가 다시 주목받는 모양새다.

      오랜 기간 한국 M&A 시장의 주연은 외국계 IB였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확장 전략을 적극 펼치며 IB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IB들은 매년 수조~십수조원의 자문 실적을 쌓았다. 연말 리그테이블 순위는 어느 IB가 그 해의 랜드마크 거래를 했느냐에 따라 갈렸다. 최고 호황기인 2021년엔 JP모건이 1위였다.

      기업들은 2022년 금리 인상기 이후 확장 정책을 폐기했다. PEF들은 금리 부담과 각종 규제에 발이 묶였다. 이들이 국내에서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사이 회계법인들이 부상했다. '어차피 다 우리 고객들이니 IB에 밀릴 게 없다'며 M&A에 힘을 실었다. 2022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내리 회계법인이 1위를 차지했다.

      3분기 들어선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5조원에 육박하는 DIG에어가스, SK이노베이션의 LNG 사업 유동화(3조원) 초대형 거래 외에 조단위~수천억원대 거래 계약이 줄을 이었다. 이들 거래에 참여한 IB들이 오랜만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UBS가 2위에 올랐고, 골드만삭스가 4위를 차지했다. 10위권 안에 IB 6곳이 포진했다.

      올해 최대어 DIG에어가스는 전방산업 수요 부진, 잠재적 경쟁 매물, 맥쿼리자산운용의 매각 희망가 등 요소로 난이도가 높은 거래였다. 결국 해외에서 큰 손을 찾아 오느냐에 거래 성패가 달려 있었다. 글로벌 PEF간 경쟁을 붙이는가 싶더니 한국 시장 확장 의지가 큰 해외 기업을 잡는 데 성공했다.

      이 외에도 IB들은 외국 고객이 참여한 국경간거래(크로스보더)에서 존재감을 보였다. SK에코플랜트의 환경사업이나 GS이니마, 리멤버앤컴퍼니 M&A는 해외 기업과 PEF가 인수자로 나섰다. SK이노베이션의 LNG 유동화는 국내 증권사가 투자자로 정해졌지만 애초 글로벌 PEF를 염두에 두고 시작된 거래다.

      한동안 한국 시장에서 잠잠했던 골드만삭스는 안재훈 대표 체제에서 다시 힘을 내고 있다. 올해 초 주니어 인력을 대거 영입하며 시선을 모았던 JP모건은 판단이 옳았음을 입증해가는 모습이다. 모건스탠리는 김세원 대표 부임 후 명가 재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회계법인의 유일한 대항마 격이었던 UBS는 올해도 꾸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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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장 IB들이 대형 회계법인들의 아성을 무너뜨릴 것이라 보긴 어렵지만 전보다 격차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회계법인이 광범위한 국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영업하는 사이, IB는 IB의 시각과 해결책이 필요한 거래를 적극 공략했다. 회계법인이 조직 정비에 어수선한 것도 IB엔 기회일 수 있다.

      한국처럼 회계법인이 M&A 분야에서 존재감을 보이는 국가는 많지 않다. 회계법인들도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긴 하지만 크로스보더 M&A에서는 IB의 역량이 더 낫다. 유동성 급한 기업, 투자회수에 나서야 하는 PEF 입장에선 IB를 통해 돈 많은 글로벌 인수자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경제 환경 상 앞으로 이런 거래가 늘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IB 인력들은 거래 성사를 목표로 트레이닝 되지만 회계사들은 투입한 시간에 따라 보수를 받는 데 익숙하다 보니 서로 성향이 다르다"며 "최근엔 회계사들도 경험이 쌓이고 있지만 IB와의 격차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 중이거나 진행 예정인 거래들은 난이도 높은 것들이 적지 않다. 테일러메이드는 해외에서 큰손 투자자를 찾아야 하고, 투자자인 F&F와도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어프로티움은 DIG에어가스처럼 맥쿼리가 원하는 금액을 맞춰줄 곳을 찾는 게 중요하다. DL케미칼의 카리플렉스는 시장에 매력도를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과제다.

      외국계 IB 입장에서 한국은 큰 시장이 아니지만 아주 도외시할 수도 없다. 특히 국내에서 활약하는 뱅커들 입장에선 한국과 관련된 거래에서의 성과가 중요하니 치열하게 움직인다. 예전엔 자체 수익성만 중시했다면 이제는 리그테이블 순위도 관심을 두고 있다. 실제 역량은 물론 고객과 시장에 '보여지는 모습'도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IB들은 M&A 외에 ECM, DCM 분야에서도 활로를 찾고 있다. IPO에 대한 기대감은 줄었어도 무신사 등 대어의 주관 경쟁은 치열하다.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 서울보증보험 블록딜 등 국가와 관련된 거래도 IB들의 관심이 높다. 특히 블록딜은 회계법인이 할 수 없으면서, 업무 기간도 길지 않아 IB들이 가장 주목하는 일감이다.

      IB 입장에선 오랜 고객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주 고객을 찾아야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최근 요율이 박해졌지만 고객의 오랜 고민을 해결해주는 거래는 상당한 자문료가 발생한다. 리멤버나 CJ피드앤케어 M&A처럼 오랜 기간 공들이고 때를 기다리다 빛을 보는 거래도 있다.

      한 IB 관계자는 "시장에서 진행되는 거래들은 어느 IB에 맡겨도 다 할 수 있는 것들"이라며 "업무 실행보다 중요한 것은 고객들을 직접 만나 고민을 파악하고 거래를 발굴해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