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은 몸값에 조선 매물들은 매각 진땀
'호재' 분명하지만 세부적으론 기업들 셈법 복잡
마스가 관련 논의 속도 더뎌졌단 평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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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계는 연이어 호재를 맞이하고 있다. 고부가가치 선종의 교체 사이클이 본격화되며 수익성이 크게 개선된 데 이어, 미국발 상선·군함 수주라는 새로운 시장 기회까지 열리고 있어서다. 한미간 조선업 협력의 상징인 'MASGA 프로젝트'가 닻을 올리자 시장은 국내 조선사들이 향후 어떤 전략으로, 어디에 투자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미간 협력 기대감에 올해 들어 조선사와 조선기자재 업체들의 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HD현대중공업은 연초 대비 83%, 한화오션은 192%, 삼성중공업은 90% 올랐다.
기자재 업체들도 동반 강세를 나타냈다. 같은 기간 한화엔진은 165%, HD현대마린엔진은 236%, STX엔진은 95% 뛰었다. 현대힘스도 연초 대비 94%가량 올랐다.
호재성 이슈에 힘입어 주가가 급등했지만, 정작 매각을 추진 중인 기업들엔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MASGA 프로젝트 자체가 기업들의 투자 과정에선 변수가 되기도 한다.
업계에 따르면 STX엔진의 최대주주 지분 매각 작업은 현재 잠정 중단된 상태다. 최대주주인 연합자산관리(유암코)는 보유 지분 64.17% 전량을 매각할 계획이었지만, 주가가 1년 새 두 배 이상 치솟으면서 매각 시점을 조정하기로 했다. STX엔진의 시가총액은 1일 기준 1조6000억원을 넘어섰고, 유암코 지분 가치는 1조원을 웃돈다.
현대힘스 역시 과도한 몸값이 발목을 잡고 있다. 1일 현대힘스의 최대주주인 제이앤PE는 보유 지분 가운데 약 13%를 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하면서 지분율은 기존 52.75%에서 40%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최대주주 지위는 유지하고 있다. 제이앤PE는 연휴 이후 나머지 40% 지분에 대한 매각 절차를 이어갈 계획이다.
잠재적 인수자 입장에서는 블록딜로 인해 인수 금액 부담이 일부 줄었지만, 여전히 가격이 높다. 현대힘스의 시가총액은 약 9000억원에 달하며, 최대주주 지분가치만 4500억원 규모다. 회사의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익이 200억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제외하더라도 몸값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매각에 대한 기대감과 MASGA 프로젝트 수혜 가능성이 맞물리면서 주가가 치솟아 매각 작업이 순탄치 않단 평가다.
MASGA 프로젝트는 매각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주요 변수가 되기도 한다.
중형 조선사 케이조선도 매물로 나왔다. 최대주주인 유암코·KHI 컨소시엄의 지분 99.58%가 매각 대상이다. 티저레터도 배포됐다. 매각 측에서 희망하는 기업가치는 약 5000억원으로 알려졌다. 케이조선은 미 군함 MRO(유지·보수) 기지 후보로 거론되며 정부 펀드를 통한 인수 가능성도 거론된 바 있다.
대형 조선사들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이들이 케이조선 인수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로 두 가지가 지목되는데, 하나는 탱커·벌크선 건조의 채산성 문제다. 국내에서는 인건비 부담이 커 해당 선종을 건조하기 어렵다. 차라리 필리핀·베트남 등 해외 기지를 활용하는 것이 수지타산에 맞는다는 판단이다. HD현대그룹이 신흥국 시장으로 조선사 투자를 넓혀나가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또 하나는 케이조선을 인수하는 순간 마스가 프로젝트를 떠안아야 하는데, 정치·외교 리스크까지 함께 얽히는 것에 부담이 있단 설명이다. 한 대형 조선사 관계자는 "케이조선을 인수할 경우 마스가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기업으로 비칠 수 있는데, 국가 전략 프로젝트와 직접 연결되면 민간 기업이 자율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어 "케이조선을 MRO 전용 기지로 활용하기에는 수익성이 충분히 담보되지 않는다는 점도 부담"이라고 덧붙였다.
마스가 프로젝트의 논의는 일부 소강 국면에 접어든 모습이다. 한미 간 조선업 협력의 큰 틀에선 공감대가 형성된 분위기지만, 한발 더 들어가 살펴보면 각자의 속내는 복잡하다. 협상판이 관(官) 주도로 흘러가다 보니 기업이 공개적으로 의견을 내기도, 선제 투자 결정을 내리기도 애매한 국면이 됐단 분석이 많다.
미국과의 조선업 협력은 분명히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기회지만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수익성'을 가늠하기 어렵다. 조선업 협력 펀드 규모도 커 어느 한 기업이 선제적으로 앞에 나선 것으로 비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한·미 간 합의는 펀드 투자 금액을 먼저 정해두고 이후 구체적인 적용 방안을 논의하는 이른바 '톱다운'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세부 실행 안이 마련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마스가 프로젝트와 관련된 법안은 아직 소관 상임위원회 심의조차 진행되지 않은 상태로 파악된다. 최근 일어난 조지아주 비자 문제가 겹치며 진척 속도가 더뎌졌다. 정부가 큰 틀에서 방향성을 정리해 줘야 기업 차원에서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있는데 현 단계에서는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
당분간 한·미 조선업 협력 차원의 투자 계획은 유보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미국을 포함해 다양한 투자 방안을 검토는 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결정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APEC 정상회의로 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해 울산 조선소를 방문할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데, 현실화할 경우 주가는 또 한 차례 출렁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