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운용사들 너도 나도 해외 LP에 '러브콜'
기대와 달리 한국 시장 외면하는 해외 자금
기존 출자 받은 운용사 주춤도 한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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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주요 PEF(사모펀드)들이 연이어 블라인드 펀드 조성을 마무리하며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다. 눈에 띄는 변화는 과거 MBK파트너스, 한앤컴퍼니, IMM프라이빗에쿼티 같은 메가펀드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해외 LP(출자자) 유치에 중견·신생 하우스들까지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 자금 유치가 중요한 점은 장기적으로 펀드 규모를 키우고 메가펀드로 성장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다만 분위기는 녹록지 않다. 몇몇 하우스들의 성과에 너도나도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높은 장벽을 체감하며 돌아오고 있다. 탈(脫)중국 자금의 ‘반사이익’도 기대와 달리 일본·호주가 대부분 흡수하는 양상이다.
신흥 강자들의 약진…글랜우드·프리미어·UCK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글랜우드PE다. 올해 말까지 1조5000억원 규모의 3호 펀드를 조성할 계획으로,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와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산하 파빌리온캐피탈을 LP로 끌어들였다. 이들 투자자는 후속 펀드에도 재출자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에서, 글랜우드는 MBK·한앤코·IMM을 잇는 차기 메가펀드로 주목받고 있다.
프리미어파트너스는 1조원 규모 6호 블라인드 펀드를 조성하며 해외 자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플레이스먼트 에이전시(PA)를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넓히는 한편, 기존 투자자인 유럽 독립계 대형 운용사 아디안(Ardian)이 재출자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미국 최대 대학기금인 하버드대 기금과도 협의가 진행 중이다.
UCK파트너스 역시 해외 LP 유치에 성공하며 1조1000억원 펀딩을 마무리한 바 있다. 아시아 국부펀드 및 글로벌 기관들로부터 약 2000억원을 끌어온 배경에는 공차 매각 성공 등 투자 트랙레코드와 10년 이상 공들인 관계 구축이 있었다는 평가다.
신생사 아크앤파트너스, ‘잭팟’
상대적으로 신생 PEF인 아크앤파트너스는 싱가포르의 파빌리온과 미국 대학기금으로부터 약 1000억원을 유치하며 단숨에 2000억원 규모 펀드 조성을 마쳤다. 대형사 위주의 해외 LP 투자가 관행이던 국내 시장에서 ‘이례적 성과’로 평가된다.
아크앤파트너스는 비용 제약 속에서도 대형 PEF들이 국내에서 개최한 LP 총회를 적극 활용했다. 해외 연기금과 대학기금이 한국에 왔을 때 직접 접촉 기회를 늘린 전략이 주효했다. 창업 멤버들이 VIG파트너스 등에서 글로벌 LP 대응 경험을 쌓은 것도 강점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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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높아진 해외 자금의 문턱
이들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업계 전반적으로는 해외 LP 초청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미·중 갈등 이후 중국에 몰렸던 자금이 한국으로 유입될 것이란 기대는 일본과 호주에 밀리며 무색해졌다. 일본은 늦게 출발했지만 고수익 멀티플을 기록하는 펀드들이 등장하며 글로벌 투자자의 관심을 끌고 있고, 호주 역시 정치·규제 안정성을 무기로 자금을 흡수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규제 강화와 정치적 리스크 요인 속에서 기업·PEF 모두 투자 매력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해외 LP들은 과거 한국 펀드에 출자했다가 기대 이하의 성과를 경험한 뒤 ‘실망감’을 드러내며 신규 투자에 소극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 LP는 펀드 전체 기준 IRR기준 20%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한다”며 “현 시점에서 이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곳은 글랜우드 정도라는 평가가 많다”고 말했다.
기존 강자들의 부진과 구조적 변화
한때 국내 시장을 주도했던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앵커에쿼티파트너스·VIG파트너스 등은 주춤하는 모습이다. 어피너티·앵커는 차기 펀드레이징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고, VIG는 최근 펀딩에서 해외 LP 참여 비중이 크게 줄었다.
결국 업계는 ‘기존 강자들의 약화와 신흥 플레이어의 부상’이라는 구조적 변화를 맞고 있다. 펀드레이징 실패가 누적될 경우 일부 운용사에서는 경영진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PEF업계 관계자는 "펀드는 결국 사이즈를 키워야 하는 비지니스라서 해외 LP 초청이 경영진의 주요한 평가요소다"라며 "해외 LP 초청은 펀드레이정 성적표를 넘어 경영진에 대한 성적표로 이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