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3차 상법개정안 통과 속도낼 듯
SK·두산·LS·HD현대 등도 직접적 영향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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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지주가 최근 국정감사에서 자사주 소각 의사를 내비치면서, 자사주 과다 보유 문제를 둘러싼 재계의 긴장감이 한층 높아졌다. 구체적인 시점과 방식은 밝히지 않았지만 사실상 '소각' 의지를 공식화한 만큼, 시장에선 "결국 롯데가 자사주 소각 대열에 합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사주 비중이 높은 다른 대기업들에도 직접적인 압박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고정욱 롯데지주 사장은 "신규로 취득한 자사주는 빠른 시일 내 소각하는 것이 맞고, 기존 자사주에 대해서도 취득 경위 등을 검토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주주들이 손해 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그동안 명확한 입장을 피했던 롯데지주가 자사주 소각 의지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감장에서는 롯데지주가 지난 6월 자사주 524만5000주(약 5%)를 계열사 롯데물산에 1450억 원에 매각한 거래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거래로 소액주주 지분율이 낮아지고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높아졌다며 "경영권 강화 목적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고 사장은 "여러 거래를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라며 즉답을 피했지만, "주주 손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히 검토하겠다"라고 답했다. 같은 당 이소영 의원은 "롯데지주가 자사주를 처분하거나 소각하는 과정을 면밀히 지켜보겠다"라고 말했다.
국감 발언의 수위는 비교적 완곡했지만, 시장이 받아들인 무게감은 상당하다. 롯데지주는 전체 지분의 27.5%를 자사주로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50대 그룹 가운데 태영그룹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소각이 현실화하면 자기자본 구조, 재무 전략, 지배력 균형이 모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동시에 롯데의 행보는 자사주를 대규모로 보유한 다른 그룹의 전략에도 방향성을 제시하는 신호로 작용할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발언이 자사주 활용 전략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롯데지주는 자사주를 장기 보유하면서도 필요 시 교환사채(EB) 발행이나 계열사 매각 등을 통한 자금 운용 여지를 열어둬 왔다. 그러나 고 사장이 소각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이런 대안들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번 국감으로 EB는 대기업들의 현실적인 대안이 되기 어려워졌다"라며 "롯데뿐 아니라 다른 대기업들도 자사주를 통한 조달은 부담스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의 움직임은 자사주 비중이 높은 다른 그룹에도 직접적인 파급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SK㈜는 자사주 비중이 24.8%, 두산·HD현대·LS·하림·태영그룹 등도 15~20%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신영증권(53.1%), 부국증권(42.7%)이 대표적인 고비중 보유사다. 롯데가 자사주 소각 실행에 나설 경우 이들 기업 역시 비슷한 조치를 취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여당은 국감 이후 자사주 관련 입법 논의를 가속화할 전망이다. 3차 상법 개정안에는 자사주 취득 후 일정 기간 내 소각을 의무화하고, 기존 보유분의 소각 유예기간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롯데지주의 구체적 실행 계획은 아직 불투명하다. '시간을 두고 소각하겠다'는 표현은 사실상 단계적 이행을 뜻하는데, 재무 구조와 지배력 변화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만큼 단기 소각은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소각이 이루어지더라도 그 규모와 시점, 처리 방식은 시장 환경과 내부 전략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롯데지주가 국감장에서 소각 의지를 공식화했다는 점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라며 "이제 다른 자사주 고비중 기업들도 내부적으로 대응 전략을 재정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