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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가 지난주 2025년도 정기 사장단 인사를 통해 정기선 수석부회장을 회장으로 승진시켰다.
HD현대는 1988년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회장에서 물러난 이후 권오갑 회장을 중심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해 왔는데 37년만에 오너 경영 체제를 다시 연 셈이다. 이번 인사로 HD현대는 전문경영인의 안정적 운영을 넘어, 오너의 책임 경영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일엔 '함께 힘 모아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는 퓨처빌더가 됩시다'라는 제목의 사내 메일을 임직원들에게 보내며 취임 일성을 밝혔다.
그런데 예상 못한 곳에서 HD현대의 정기선 시대 개막보다 더 화제가 된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HD현대그룹 소속의 K리그 축구팀 울산HD FC다. 가뜩이나 팀 성적이 좋지 않아 강등권에 놓였는데 최근 감독 경질과 선수단 내 하극상 논란으로 큰 후폭풍을 겪고 있다.
부임 두 달만에 경질된 신태용 감독은 최근 언론을 통해 자신이 바지 감독이었고, 항명한 고참 선수도 있었다고 폭로했다. 일부 선수가 감독을 건너뛰고 구단과 직접 소통해 자신의 거취까지 결정됐다고 밝히며 '하극상'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에 대해 구단은 "성적 부진이 경질 사유"라고 반박하며, 특정 선수의 월권이나 감독 '패싱' 정황은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이 와중에 18일 경기에서 울산HD 고참 선수인 이청용이 페널티킥(PK) 성공 후 관중석을 향해 골프 셀리모니를 펼쳤다. 신 전 감독이 울산 사령탑 때 원정 버스에 자신의 골프백을 실었는데, 이것이 구단 내부자에 의해 공개돼 논란이 됐었다.
이청용은 올 시즌 PK를 한 번도 차지 않았고 전담 PK 키커도 아니다. 이청용이 신태용 전 감독을 저격하려고 작정한 뒤 키커를 자처했다는 평이 나온다. 실제로 이청용은 경기 후 "누가 더 진솔한지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잔류라는 목표를 달성한 다음에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리그가 끝날 때까지 진실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HD현대그룹의 이미지에, 그것도 새 회장의 시대를 예고한 현 시점에서 긍정적일 건 하나도 없다.
하극상 논란은 가풍(家風)으로나 사풍(社風)으로나 범현대가, 특히나 적통으로 평가받는 범현대가 그룹에선 예상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이런 이슈가 최근에 불거진 것이 아닌,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묵혀있던 것이 터진 것이라는 얘기나 나오면서 그간의 구단 관리 문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 이 역시나 구단 수뇌부와 그룹에는 부담요소다.
이번 논란은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는 권오갑 회장까지 거론되게 만들었다. 명예회장으로 추대된 권 회장은 울산HD의 구단주이자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를 역임하고 있다. 권 회장은 K리그 총재로서 한 신년사에서 "미래지향적인 리그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울산HD는 권 회장의 유일한 오점이 될 처지에 놓였다.
정기선 회장의 아버지는 누구나 다 아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으로 축구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정기선 회장도 부회장 시절 직접 축구장을 찾아 응원을 할 정도로 팀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다. 그만큼 오너가와 그룹의 축구 사랑은 진심이다. 특히나 리그 3연패를 한 2024년엔 울산 문수구장을 방문해 선수들의 헹가레를 받았고 울산HD 팬들이 정 회장 이름을 연호했다. 그랬던 울산HD는 1년만에 강등권으로 떨어졌다.
정 회장도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울산HD의 구단주가 될 가능성이 크다. 팀의 성적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하지만 팀 문화는 한 순간에 바뀌지 않는다. 일개 축구팀 얘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재계와 프로스포츠가 엮여있는 우리나라에선 그렇게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HD현대가 곧 울산HD'라는 얘기다.
정기선 회장은 취임 메시지에서 현재를 위기로 진단하고 임직원들에게 힘을 모아달라고 말했다. 정 회장의 젊은 리더십이 명문 축구팀의 위기에는 어떤 바람을 불러올지 관전 포인트다.
입력 2025.10.20 11:28|수정 2025.10.2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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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5년 10월 20일 11:27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