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에 2배, 3배 오르는 몸값…AI 투자 늘어나는 만큼 치솟아
엔비디아, "2030년 AI 투자 3조弗 이상"…AI發 자산가치 변곡점
전선, ESS, SMR, 수소 등지에 뭉칫돈 계속 유입될 거란 전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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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산업이 기업들의 몸값 순서를 뒤바꾸고 있다. 향후 AI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자산이냐에 따라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오르내리고 있다는 평이다. 당분간 AI 산업에서 병목이 발생하는 지점마다 막대한 자금이 유입될 거란 전망이 늘고 있다.
20일 HD현대일렉트릭 주가는 전일보다 1.8% 오른 67만9000원에 마감했다. 지난 16일 장중 기록한 역대 최고가(68만5000원)에 근접한 주가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정부의 상호관세 부과가 주가를 짓눌렀을 당시와 비교하면 반년 만에 160% 가까이 상승했다. 현재 시가총액은 약 24조5000억원 수준, 유가증권시장 내 24번째 규모다. 카카오, 한국전력, 하나금융지주와 유사한 몸값을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같은 날 효성중공업도 개장 직후 전일보다 7% 가까이 오르며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오후 들어 상승분 일부를 반납했지만 최종적으로 5.32% 오른 166만4000원에 마감했다. 몸값이 치솟는 속도 자체는 HD현대일렉트릭보다 가파르다. 지난 6개월 사이 3배 이상, 효성그룹이 계열 분리 계획을 발표한 2024년 2월 기준으로는 10배 이상 주가가 뛰었다. 시총은 약 15조5000억원 수준으로 SK㈜와 엇비슷한 위치까지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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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사 주가는 사실상 같은 이유로 오르고 있다는 평이다. 앞으로 AI 산업을 키워내는 데 반도체보다 변압기가 더 부족할 것이라는 판단이 계속 늘어나면서다. 변압기는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최종 소비처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승압·강압을 담당하는 설비다. 전선, 배전기기와 함께 송배전 핵심 인프라로 분류된다. 양사는 매출액 기준 각각 국내 1, 2위 변압기 제조·수출기업이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고압전선이나 초고압 변압기 같은 전력망 인프라가 AI 밸류체인에서 병목을 일으킬 거란 전망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닌데, 시장 규모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라며 "최근 빅테크들이 새로 발표한 설비투자(CAPEX) 확대 계획을 기반으로 밸류에이션 논리가 또 바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변압기가 부족할 것이라는 관측 자체는 이미 지난해부터 주목을 받았다. 2024년 3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AI 컴퓨팅(연산)을 제약하는 요소는 예측하기 쉽다. 1년 전에는 칩이 부족했는데 다음은 변압기나 전력 자체가 부족할 것"이라 말하면서 한 차례 전력 인프라 산업으로 자금이 몰려갔던 것이다. 이 때문에 실적 확대보다 주가 상승세가 가파르다는 이유로 오를 만큼 올랐다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이달 들어 전방 사정이 바뀌고 있다. 최근 엔비디아는 올해 AI 산업에 투입된 CAPEX가 총 7000억달러(원화 약 990조원)에 달할 전망인데, 이 수치가 2030년이면 매년 3조달러(약 4200조원)를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판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 구글, 메타의 지난 2분기 CAPEX는 약 880억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70%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전방에 투입되는 자금이 늘어나는 만큼 예상 전력이나 인프라 수요도 커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데이터센터 신설로 80기가와트(GW) 이상의 전력이 필요할 것이라 추산했는데, 그간 발전원에 비해 송배전 인프라 투자 속도가 크게 더뎠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필요 전력을 갖추기도 벅찬데, 이를 적재적소에 뿌려줄 인프라는 더 부족하다는 것이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미국 내에서 AI 데이터센터가 구축된 지역 전력 요금이 치솟으면서 현지 정부 차원에서도 전력망 확충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반도체 다음 병목은 전력난"이라며 "지금 반도체가 수년 뒤 전체시장(TAM) 전망을 근거로 밸류가 올라가는 것처럼 변압기나 전선, 에너지저장장치(ESS) 같은 인프라 자산에 대해서도 유사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단계"라고 말했다.
변압기 외 고압전선이나 ESS, 소형모듈원전(SMR) 등 전력망 인프라 전반으로 유사한 흐름이 이어질 거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 현지에선 이미 수개월 전부터 수소연료전지로 자금 이동이 본격화한 것으로 알려진다. AI 산업 내 병목을 해소하기 위해 자본비용이나 에너지효율, 규제 등 문제로 밀려난 영역까지 재부상하고 있다는 얘기다.
외국계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나 가속기(GPU)가 그랬듯이 지금 AI 판에서는 가격보다도 적기 확보 자체가 경쟁력"이라며 "국내 배터리사들의 ESS 공급이 부족할 테니, 수소전지 쪽으로 물이 들어오는 것처럼 AI에 필요한 자산들은 반도체에 가깝게 계속 키 맞추기가 진행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