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470원 돌파하며 7개월래 최고치…"변동성 국면 본격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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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금리인하 지연, 엔비디아의 호실적에도 이어지는 인공지능(AI) 거품 우려로 인한 나스닥 급락이 국내 증시를 강타했다. 간밤 미국 대형 기술주를 중심으로 급락이 이어지자 외국인들이 국내 기술주 대규모 매도에 나섰고, 원·달러 환율은 7개월 만에 1470원대를 넘어섰다.
'AI 거품론'이 재차 부각되자 밸류에이션 부담이 컸던 성장주 중심으로 즉각적인 하락 압력이 나타난 것이다.
21일 코스피는 전일 대비 3.79% 급락한 3853.26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개장 직후 급락해 장중 한때 전일 대비 4% 가까이 하락한 3838.46까지 밀리기도 했다. 외국인들이 개장 후 30분만에 1조원 가까운 매물을 쏟아내며 지수 하락폭을 키웠다. 결국 외국인들은 이날 하루 코스피에서만 2조8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국내 기관들은 대체로 관망한 가운데, 개인투자자들이 2조3000억원을 순매수하며 물량을 받아냈다.
시가총액 상위권은 대부분 약세를 보였다. SK하이닉스(-8.7%), 삼성전자(-5.7%), LG에너지솔루션(-3.5%), 두산에너빌리티(-5.9%), 한화에어로스페이스(-5.1%) 등 코스피 대표 AI·반도체·중후장대 업종 전반이 동반 하락했다. 코스닥 역시 3.1% 하락한 863.95로 거래를 마감하며 약세 흐름을 보였다.
이번 급락은 전날 미국 증시 변동성이 극도로 확대된 데 따른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전일 나스닥은 2.15%, S&P500은 1.56%, 다우는 0.84% 하락했다.
엔비디아는 전날 발표한 호실적의 영향으로 장 초반 5% 이상 뛰었지만 매출채권 증가로 인한 고객사 수익성 우려가 재부각되며 3% 하락으로 전환됐다. 주문은 폭주하는데, 주문자가 보유한 현금이 없기 때문에 매출채권이 늘어난 것이란 해석이 힘을 얻은 까닭이다.
이 여파로 마이크론(-10.9%), AMD(-7.8%), 팔란티어(-5.8%) 등 주요 기술주가 급락했다. 변동성지수(VIX)는 두 시간 만에 20에서 28까지 치솟으며 위험자산 전반의 스트레스 강도를 높였다는 평가다.
특히 연준 위원들은 자산 밸류에이션이 높고 금리 인하에 신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잇따라 내놓으며 12월 FOMC를 둘러싼 정책 불확실성도 키웠다. 이에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4.77% 급락했고 MSCI 한국 ETF는 2.24% 하락하는 등 아시아 시장 전반을 압박하는 구조가 이어졌다.
원화약세도 장 급락에 일조했다. 원·달러 환율은 1475.80원까지 오르며 지난 4월 이후 7개월만에 연중 최고점 수준에 도달했다. 장 초반 1471.9원으로 상승세로 출발한 원달러 환율은 장중 지속적으로 고점을 높여가며 1475원선에 도달했다. 달러 인덱스는 100.20 근처, 엔·달러 환율은 157.5엔으로 엔저와 달러 강세가 동시에 이어지며 외국인 수급에 부담이 커진 모습이다.
시장은 이번 급락을 두고 이달 내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투자심리에 피로감때문이라는 평이다. AI 고평가 논란과 연준의 신중론, 혼재된 고용지표가 한꺼번에 겹치며 시장이 단기적으로 과민 반응을 보이는 국면이라는 해석이 많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의 실적은 분명 서프라이즈였지만 단기 변동성 확대 국면에서는 이런 호재조차 반등 모멘텀을 만들기 어렵다"며 "지금은 나스닥 선물과 엔비디아 시간외 흐름 등 미국 기술주의 일중 변동에 국내 장세가 직접적으로 연동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AI 버블 우려는 과장된 면이 있고, 미국 빅테크의 현금흐름과 AI 인프라 투자는 여전히 견조하다"며 "12월 FOMC 전까지 정책 불확실성이 남아 있겠지만, 지금은 현금 비중을 과도하게 늘리기보다는 기존 포지션을 유지하며 단기 변동성을 감내하는 전략이 적절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