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자회사여도 정상적 관계로 보기 어려워"
반도체 기업에 바이오 경영 판단 맡긴단 우려도
바이오상장사 합산시총 90조…자율경영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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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의 개인정보 유출사태가 그룹의 '뉴삼성' 경영 행보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삼성그룹이 계열사별 정기인사를 내며 미래사업을 위한 인적기반을 다지는 동안, 삼성전자 준법감시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정보유출사태를 차기 안건으로 검토해보겠다고 하면서 그룹 차원의 문제로 커지고 있다.
유출사태로 공개된 정보 중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전자 사업지원TF에 인사와 관련한 내용을 보고한 정황이 포함돼 있다. 이번 사태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경영 활동 일부를 사업지원TF에 의존한 반쪽경영 체제가 드러났단 지적도 나온다.
삼성바이오發 정보유출사태 확산…준감위도 들여다볼까
삼성그룹은 최근 경영쇄신과 기술혁신에 방점을 찍은 임원인사를 계열사별로 진행했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과 차세대 반도체, 로봇을 비롯한 미래기술분야에 인사를 집중시켰고, 삼성SDS와 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분야 계열사들 역시 기술인재 확보에 중점을 둔 인사를 발표했다.
삼성그룹 내 다른 계열사들 역시 기술 중심 인사 기조를 이어갔다. 삼성전자와 같은 날 임원인사를 발표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신규사업인 항체약물접합체(ADC)부문을 이끈 정형남 부사장이 승진했다. 같은 바이오 계열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도 R&D 인력을 중심으로 승진 인사를 발표했다.
삼성그룹이 전열 정비에 힘을 쓰는 동안 한편에서는 삼성그룹의 준법 여부가 화두에 올랐다. 삼성전자 준법감시위원회 정례회의가 공교롭게도 그룹 주요 계열사의 인사 발표 직후 진행됐는데, 회의 직전 기자들 앞에 선 이찬희 준법감시위원장(위원장)에게 삼성그룹 내 정보유출사태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앞서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는 임직원 5000여 명의 개인정보 열람 제한이 해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자료를 이관하는 과정에서 다른 직원들이 이를 열람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는 임직원의 연봉, 고과는 물론 노동조합(노조) 측에 기부금을 냈는지에 대한 정보도 포함돼 있다.
이 위원장은 "정보보호는 중요한 영역인 만큼 (유출사태가) 위법한 영역에서 이뤄졌는지 살필 계획"이라며 "이번 회의에서 준법감시위원회의 차기 안건으로 다룰지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룹사 차원의 준법 감시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이 개별 계열사의 정보유출 이슈를 다뤄보겠다는 가능성을 연 셈이다.
준법감시위원회가 당장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감사를 진행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삼성물산 등 몇몇 기업만을 대상으로 준법 감시 기능을 수행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대상에서 빠져있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모회사인 삼성물산을 명분 삼아 사안을 살펴보기도 마땅치 않다. 현행법상 모회사가 자회사를 감사할 권한은 (현재 지분구조상)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삼성전자 사업지원TF가 그동안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영활동 일부를 보고받은 정황이 나온 만큼 사업지원실에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크다. 최근 삼성전자에서도 내부 네트워크에 임직원들의 정보, 고과가 노출된 점이 노조를 통해 드러나면서 사업지원실에 해당 사안의 후속 대응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관계사에 업무 보고?…자율적인 의사결정 구조 필요성↑
사업지원실은 올해 들어 임시조직에서 상시조직이 된 데다 기능도 강화되고 있어 다른 계열사로부터 보고를 받거나, 이를 통제하는 기능이 강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럴 경우 과거 미래전략실과 같은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터라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이사회 중심의 자율경영을 하겠다는 기존 계획을 뒤엎는 꼴이 된다.
앞서 삼성전자 사업지원실은 임시조직일 당시부터 그룹 전자부문 계열사의 경영 활동이나 연구개발(R&D) 상황을 보고받았다는 얘기가 돌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역시 미국 공장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에서 사업지원TF와 이견을 조율하는 데 애를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바이오에피스도 사업 초기 당시 신약 개발 상황을 직접 보고한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사업지원실과 지속해서 소통한다면, 기업의 중요한 경영판단을 이종산업기업인 삼성전자가 쥐고 있다는 논란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는 반도체가,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 제조생산이 본업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신사업 단계일 땐 다른 계열사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지만, 바이오 계열사 합산 시가총액이 80조~90조원에 달하는 현재 실질적인 자율경영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투자금융(IB)업계 한 관계자는 "지주사와 자회사 관계에서도 인사와 관련한 영역은 관여할 수 있겠으나, 자회사의 경영활동을 세세하게 보고받거나, 이에 간섭하지 않는다"라며 "(삼성전자가) 실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영활동에 관여한 것이라면 설사 지주사의 성격을 띠고 있다하더라도 정상적인 사례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산운용사 한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주주이자 모회사는 삼성물산"이라며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사업지원실(사업지원TF)에 의사결정의 최종 권한을 넘겼거나, 그동안 해온 보고를 삼성물산이나 다른 주주들에게는 하지 않았다면 주주들을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문제 삼을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그동안 사업지원TF에 내부 보고를 해온 것은 내부소통을 중시한 삼성그룹 특유의 기업문화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룹사 단위의 의사결정 구조로 인한 컨트롤타워와의 긴밀한 스킨십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글로벌 성장 동력 발굴과 인재 기용, 후임 육성에 어려움을 겪은 점과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IB업계 다른 관계자는 "글로벌 빅파마를 상대로 수주를 확대하려면 이런 기업을 대상으로 한 네트워크 역량과 커뮤니케이션 및 스피치 역량이 요구된다"라면서도 "삼성그룹에선 최고경영자(CEO)가 그룹사 내부 조직과도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에, 모든 역량을 갖춘 임원이 한국 기업 특유의 문화를 견디면서까지 자리를 옮기긴 힘들 것"이라고 했다.
실제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가 정보유출사태에도 연임이 확실시된 것은 그동안의 성과 창출과 함께 마땅한 후임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인재 수혈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존림 대표가 수주 활동 전면에 나서고 있어 성과 중심 인사를 추진하는 삼성그룹에선 부사장급 인사가 두각을 보이기 어렵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실질적인 자율경영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매출 대부분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어 국제적인 수준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사업지원실이 기존의 역할을 축소 혹은 확대할지에 따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사업 기조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