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무구조도 컨설팅, 수수료 덤핑에 '레드오션'…품질 저하 우려도
입력 2025.12.01 07:00
    책무구조도, 은행·금융지주서 저축은행·운용사로 이동
    로펌 저가 수임에 수수료 급락…5천만원 입찰 제안도
    회계법인 "더 이상 돈 되는 시장 아냐"…품질 저하 우려
    '운영 실효성' 강조하는 당국…관심은 1호 제재 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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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개정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시행으로 책무구조도 제도가 본격 도입되면서 이를 둘러싼 컨설팅 시장이 빠르게 과열되고 있다. 작년 금융지주·대형 시중은행이 먼저 착수했던 이른바 '1라운드'에서는 대형 회계법인이 주도권을 잡았지만, 올해부터 본격화된 저축은행·중소형 운용사 대상 '2라운드'에서는 로펌의 저가 수임 경쟁까지 더해지며 시장이 급격히 레드오션화하는 모습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한 저축은행이 실시한 책무구조도 컨설팅 입찰에서 일부 로펌이 5000만원 수준까지 가격을 낮춰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지주 시절 수억 원대였던 수임료가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 가격 경쟁이 되고 있다"며 시장 상황을 전했다.

      이처럼 가격 경쟁이 격화한 배경에는 책무구조도 제도 자체의 성숙 단계가 자리한다. 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 임원의 직책별 책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문서로, 각 임원이 소관 업무에 대해 내부통제·위험관리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제대로 운영·점검할 책임을 명시하는 제도다. 2023년 말 국회를 통과한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라임·옵티머스 사태, 대형 횡령 등 잇따른 금융사고를 계기로 추진됐다.

      도입 일정상 '1라운드'는 은행·금융지주가 맡았다. 은행·지주는 2025년 1월 2일까지 책무구조도를 제출·시행했고, 금융당국은 초기 혼선을 줄이기 위해 은행·지주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을 먼저 열어 조기 참여를 유도했다. 복잡한 내부통제 체계와 감독 리스크를 고려해 당시에는 대형 회계법인·로펌 중심의 프리미엄 시장이 형성됐고, 건당 수억 원대 수임료가 오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초기에는 사실상 회계법인이 시장을 장악했다. IFRS·내부회계관리제도·지배구조 컨설팅 경험을 갖춘 대형 회계법인들이 은행·지주 프로젝트를 대거 확보하며 주도권을 잡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지주는 사건사고가 터지면 곧바로 경영진 책임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첫 회 구축에는 비용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비교적 공격적으로 투자했다"라고 말했다.

      다만 1라운드가 마무리되면서, 시장 지형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금융당국이 책무의 개념·배분 기준·범위를 상세히 적시한 해설서와 기본지침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새 제도'에서 '답안지가 어느 정도 나온 제도'로 성격이 변했다는 평가다. 은행·지주 프로젝트에서 축적된 레퍼런스가 사실상 표준 역할을 하면서, 중소형 금융사는 굳이 고가의 회계법인을 선택할 이유가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2라운드인 저축은행·카드사·중소형 자산운용사 차례가 오자, 시장에는 가격 중심 경쟁이 본격화했다. 자산 7천억원 이상 저축은행과 자산 5조원 이상 카드사를 포함한 여전사는 2026년 7월 2일까지, 그 이하 저축은행·여전사를 포함한 나머지 금융회사는 2027년 7월까지 책무구조도를 제출해야 한다. 

      저축은행 업계는 이미 표준안 마련에 착수했고, 해당 용역은 김앤장 법률사무소–삼정KPMG 컨소시엄이 맡아 초안을 제시한 상태다. 자산운용업계 역시 대형 하우스를 중심으로 시범운영을 진행 중이며, 중소형 운용사는 내년 7월까지 제출 의무가 부여됐다.

      가격 경쟁의 중심에는 로펌의 전략 변화가 자리한다. 일부 대형 로펌은 회계·컨설팅 출신 인력을 대거 영입하며 내부통제·지배구조 컨설팅 라인을 확장했다. 규제 해석, 제재 대응, 소송까지 원스톱 패키지를 앞세워 책무구조도는 '진입용 상품'으로 저가 수임하고, 이후 포렌식·금융사고 대응·제재 절차 자문 등에서 수익을 보전하는 모델을 활용하고 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반면 회계법인은 책무구조도 시장을 '더 이상 돈이 되는 영역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은행·지주 프로젝트 때만 해도 건당 수억 원은 기본이었는데 지금은 반값, 3분의 1 가격 경쟁까지 가고 있다"며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노동집약적 업무 대비 수익성이 지나치게 낮아졌다"고 말했다.

      저가 경쟁이 심화되면서 품질 저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책무구조도는 회사별 사업모델·조직·리스크 특성을 반영해야 하는데, 짧은 기간·저비용 프로젝트로는 '표준안 짜깁기' 방식의 문서가 양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향후 금감원의 검사·실태평가에서 '종이 문서'로 평가받을 위험이 높아진다.

      실제 금감원은 최근 금융소비자보호 실태평가에서도 내부통제와 관련해 기준 '마련'보다 '운영'에 대한 평가 비중을 높이겠다고 밝히는 등, 책무구조도의 실효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특히 업계에선 내년부터 저축은행·여전사·운용사에 대한 책무구조도 제출이 본격화하는 만큼, '책무구조도 1호 제재'가 어느 업권에서 처음 등장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한 컨설팅업계 관계자는 "책무구조도는 많게는 수십 개의 임원 책무를 회사 구조에 맞춰 재배치하는 작업인데, 비용 절감을 우선하면 조직 특성을 반영하기 어렵다"라며 "지금은 저가 경쟁이 화제지만, 단기 비용 절감이 향후 리스크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금융사들도 인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