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ㆍ바이오가 장악한 IPO판...증권사도 '이과 인재' 찾는다
입력 2025.12.02 07:00
    'AI·반도체·바이오'기술 중심으로 IPO 시장 재편…기술특례 2년간 68곳 상장
    기술 난도 높아지며 "실무도 이과적 능력 필요"…커지는 IPO부문 '이과 강세'
    VC까지 'IPO 경험 있는 이공계' 선호…기술력·금융 갖춘 이공계 인력 희소성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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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기술기업이 IPO 시장의 주요 매물로 자리 잡으면서, 이를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이공계 기반 인력에 대한 수요가 증권사 기업금융(IB) 및 리서치 조직에서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일반적인 재무 이해도를 갖춘 영업인력보다는, 기술 이해도를 갖춘 실무 인력의 필요성이 과거보다 더 늘어난 것이다. 기술특례상장만 보더라도 지난해 42곳이 신규 상장했고, 심사 난도가 높아졌다는 평가 속에서도 올해 26곳이 상장을 마치며 기술기업 중심 상장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28일 증권가에 따르면 최근 일부 증권사들은 IB 조직 내부에 이공계 인력 확보를 위한 자리(T.O)를 따로 배정하고, 인력 모시기에 집중하고 있다.

      대신증권은 최근 AI·바이오 분야 석·박사 지원자를 대상으로 채용 면접을 진행했다. 대신증권 IPO 부서 내엔 이미 실무자 중 이공계 출신 비중이 20%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술특례상장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는 삼성증권 역시 이공계 채용을 꾸준히 늘리며 일정 수준 이상의 인력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기술기업의 기술력이 워낙 고도화되다 보니, 실무진도 기본적인 기술 해석 능력이 있어야 상장 업무가 수월하다"며 "대신·삼성뿐만 아니라 미래에셋·NH투자증권 등 대형 하우스들도 이공계 인재를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이 이공계 인재를 찾는 흐름이 강화된 배경에는 기술기업 상장 환경의 구조적 변화가 자리한다. AI·반도체·바이오 기업은 기술 구조의 난도, 시장 진입 방식, R&D 중심 비용 구조 등으로 인해 일반 제조·소비재 기업보다 분석 부담이 크다. 

      특히 기술특례상장은 심사 과정에서 기술성·사업성·시장성 평가가 병행되는 만큼, 기술 이해도가 실무 효율을 좌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평이다. 예비심사 청구 단계에서도 기업 경영진과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기술적 배경에 대한 기본 이해가 필수적이어서, 업계에서는 과거보다 기술 기반 리스크를 감지하고 해석할 수 있는 실무자가 더욱 중요해졌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은 투자업계로도 확산되고 있다.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는 최근 가장 선호하는 인재 특성 중 하나로 '증권사 IPO 실무 경험을 갖춘 이공계 인력'을 꼽고 있다. 기술 기반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판단해야 하는 딜소싱 단계부터, 회수 전략에서 상장 시점·공모 구조 등을 고려해야 하는 투자 의사결정까지 IPO 경험이 중요한 경쟁력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VC 심사역은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인재는 인공지능 전공자 중에서도 증권사 IPO 실무 경험이 4~5년 이상 있는 지원자"라며 "기술기업의 비중이 커진 시장 구조 속에서 기술과 자본시장을 동시에 이해하는 인력의 희소성이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IPO 업무의 본질이 공모 구조 설계·가치평가·규제 검토 등 금융 중심이라는 점에서 재무·회계 역량의 중요성은 여전히 크다. 다만 국내 증시는 물론, 글로벌 성장의 중심 축이 반도체 및 인공지능(AI) 등 테크산업과 암 치료제, 비만 치료제 등 바이오산업으로 급속하게 이동하고 있는만큼 향후 신규 상장 기업들 역시 테크 및 바이오 업종에서 나올 가능성이 매우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하우스 상장 업무의 핵심은 재무·밸류에이션·규제 대응 능력이라는 사실이 변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유망 기업 대다수가 고도화된 기술을 다루는 업종으로 이동한 만큼, 기술 이해도가 있는 이공계 출신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결국 증권사·VC 등 금융투자업계 전반에서 이공계 인재 수요가 늘어난 흐름은 특정 업황의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비상장 기업 중 미래 성장성을 높게 평가받는 기업군이 주로 AI·반도체·바이오 등 고부가가치 기술 기반 기업이기 때문이다. 기술기업의 분석·평가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 비대칭을 줄이는 데 실무자가 일정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공계 출신 인재가 분명한 우위를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ECM 실무자는 "AI·반도체 중심 기업의 상장 파이프라인 증가는 결국 산업 구조 자체가 바뀐 결과"라며 "국가 차원에서도 AI 육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향후 2~3년 동안 상장 시장에서도 기술기업 비중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