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F '협회'는 '협의회'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입력 2025.12.10 07:00
    현 협의체, 상설 인력·조직 없어 활동에 제약
    PEF 여론 악화 계기로 협회 전환 논의 본격화
    당장 비용 늘고 누구를 수장으로 모실지 고민
    태생적으로 경쟁 관계, 협회 실효성 의문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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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사모펀드(PEF) 시장은 각종 사건사고로 홍역을 앓았다. PEF 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위기에 처하자 각종 현안에 대응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해졌다. PEF협의회를 협회로 격상시키기 위한 논의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협회 설립까지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시장의 특수한 영역에 있는 PEF가 어떤 조직을 꾸리고 어디에 목소리를 내야 할지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태생적으로 경쟁자일 수밖에 없는 PEF 운용사들이 서로 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PEF협의회는 PEF 제도 도입기인 2005년 친목회 형태로 시작했고 2013년 비법인사단으로 전환했다. 협의회는 PEF의 전문성과 역할론을 부각시켜 각종 규제 부담을 더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상설 사무 조직과 인력, 예산이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매년 바뀌는 회장사가 자사의 역량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러 해 전부터 느슨한 PEF협의회 조직을 보다 고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구체적인 논의로 이어지지 않았다. PEF 산업은 유동성의 힘을 업고 매년 급성장했고, M&A와 구조조정 영역에서도 주축으로 떠올랐다. 강력한 대외 조직을 갖춰야 할 만큼 절박하지 않았다.

      올해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홈플러스 회생절차를 계기로 PEF에 대한 시선이 싸늘해졌고,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도 심화했다. 국회에선 차입 제한, 사업 내역 공개, 의무공개매수 등 내용을 담은 규제 법안을 앞다퉈 발의하고 있다. 협의회를 협회로 격상하거나 협회를 신설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부상했다.

      박병건 대신PE 대표가 9대 협의회장에 취임하면서 협회 격상 논의가 빨라졌다. 협의회는 협의회발전위원회 등 소위원회를 꾸려 조직 개편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는 협회 체제로 가자는 데 주요 운용사의 중지가 모여가는 분위기다. 초기적인 조직 및 인력 구성 논의도 하고 있는데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비용이 문제다. 지금은 전담 조직이 없으니 100곳가량의 회원사가 내는 회비만으로도 살림을 충당할 수 있다. 그러나 협회가 생기면 협회 수뇌부에만 각각 수억원의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사무실 임대료, 사무국 직원 연봉 등을 감안하면 매년 수십억원의 지출이 생긴다.

      협회 전환으로 의무 가입 운용사가 늘어난다 해도 각 사가 내야할 금액이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사무실 운영이 쉽지 않은 소형사는 물론 점점 대규모 성과보수를 거두기 어려워진 대형사에도 가볍지 않은 부담이다.

      협회에 어떤 인사를 모셔야 할지도 걱정이다.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는 관리 영역이 명확하지만 PEF는 정통 금융 영역과 차이가 있다. 규제를 받긴 하나 비밀스러움에 근간을 두고 있다. PEF 업을 잘 아는 인사는 대외 영역을 확장할 실익이 많지 않고, 발이 넓은 인사는 전문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협회가 아울러야 할 영역은 넓다. 운용사는 물론 출자자(LP), 금융당국, 국회까지 관리할 역량이 있어야 한다. 포트폴리오 기업에 사고가 나면 노동·환경·산업 등 각 정부 부처까지 상대해야 한다. 금융당국 올드보이, 대형 기관 출신 최고투자책임자(CIO), 1세대 PEF 전문가 등 누가 와도 고전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를 참고하기도 쉽지 않다. 벤처캐피탈(VC)은 여러 운용사가 모여서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함께 투자를 검토하고, 다른 곳이 심사를 마친 곳은 고민 없이 자금을 집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PEF는 한 투자 건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태생적으로 독자 활동을 하니 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 협의회의 한계가 협회 체제에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사례와도 비교할 만하다. 미국엔 American Investment Council(2007년 설립), 일본에는 Japan Private Equity Association(2005년 설립)이 있다. PEF가 산업으로 인정받는 데 기여했고 규제 대응, 사회적 책임 강조 등 역할도 했다. 미국과 일본 모두 PEF를 악마화하는 시선이 있었지만 이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많이 희석됐다. 자금력과 로비력이 부족할 PEF협회가 여론의 힘이 센 한국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PEF협의회를 상설조직화하기 위해선 회비부터 상주 직원, 나아가 외부 유력 인사를 영입하는 데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며 "PEF협회에 상주할 업계 인사가 있을지 의문인데 그렇다고 외부 인사를 앉히는 게 맞느냐 하는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