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까지 2강체제 본격화…현업서도 우위 둔 갑론을박
둘 다 잘 나갈 텐데…고성장 낙관 속에 갈리는 톱픽 논쟁
비메모리도 있는 삼성전자vs순수 메모리 1등 SK하이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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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쇄신 1년여만에 보여준 추격전 성과가 눈부시다. 연초 D램 공정 재설계 작업이 한창일 당시만 해도 업계에선 게임이 끝나간다는 말까지 오르내렸다. 지금은 현직자들도 내년 이후 양사 경쟁우위를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에서 메모리 반도체 역할이 전에 없이 커지고 있는데, 적절한 시기 삼성전자가 화려하게 재기하며 2강 체제를 굳혀가는 상황으로 풀이된다. 투자가들도 양사 주가 전망을 놓고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떼돈을 벌기는 매한가지일 텐데, 어느 한 곳을 고르기 어렵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그래프는 거의 유사한 움직임을 보여왔다. 하반기 들어 전방 AI 시장에 천문학적인 돈이 쏟아지면서 갑자기 메모리 산업이 슈퍼사이클(초호황)에 진입한 덕이다. 지난 2년간 수요가 몰린 고대역폭메모리(HBM) 외에 범용 제품까지 공급 부족이 심화하면서 양사가 모처럼 동반 랠리에 들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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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업황이 돌아선 덕이라기엔 삼성전자 추격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연초만 하더라도 양사 기술 격차가 너무 큰 폭으로 벌어졌다는 인식이 팽배했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전영현 부회장 지시로 1a 공정 이후 D램 제품의 재설계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SK하이닉스는 최선단 1c 공정에서 이미 양산 가능한 수율을 달성한 참이었다. 단 한 번 공정 격차가 벌어져도 다음 사이클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산업이다 보니, 삼성전자가 제시간 안에 재설계를 마치고 HBM 추격에 나설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1년도 안 돼 밀린 숙제를 다 해치우자 안팎에서 놀랍다는 반응이 쏟아진다. 응용처·제품군 전방위로 경쟁사와의 기술 경쟁이 쉴 틈 없이 진행되는 가운데 D램을 재설계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내년 핵심 전장이 될 1c 공정에서까지 괄목할 성과를 거두면서 경쟁 판도가 다시 한번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많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연초만 해도 레거시인 DDR4 D램에서 중국 창신메모리(CXMT)한테 타격을 입고, HBM은커녕 DDR5 시장에서도 힘을 못 쓰는 상황을 자조하는 목소리가 상당했다"라며 "지금은 삼성전자가 지난 2년여 동안 SK하이닉스에 내줬던 많은 영역들을 하나 둘 되찾아오는 시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반전됐다"이라고 전했다.
기세를 뒷받침하듯 운도 따라주고 있다. 전방 빅테크들의 AI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비메모리 위탁생산) 사업부의 전략적 가치도 계속해서 불어나는 식이다. ▲구글이 직접 설계한 TPU가 엔비디아의 가속기(GPU) 시장 독점 구도에 균열을 내면서 ▲엔비디아를 비롯한 HBM 고객사들의 요구 성능은 갈수록 가파르게 치솟고 ▲선단 파운드리를 내재화한 삼성전자의 원가 경쟁력이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경쟁사들과 달리 HBM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가격이 비싼 대만 TSMC의 선단공정에 기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HBM4 이후로는 요구 대역폭이나 채널 수가 급증하면서 순수 메모리 기업이 베이스 다이까지 직접 소화하기 힘들어지고 있다"라며 "베이스 다이가 점점 로직(Logic) 영역으로 넘어가면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은 HBM 마진 상당 부분을 TSMC 선단공정에 양보해야 한다. 자연히 삼성전자가 원가 구조에서 앞서는 그림이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러 상황을 종합하면 내년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강 구도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추격 기세가 매섭다 해도 여전히 SK하이닉스가 고부가 시장인 HBM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고 지난 3년여 동안 누적한 양산·공급 노하우를 무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몇 달 만에 HBM 못지않은 수익성을 확보한 범용 D램이나 서버향 낸드 시장까지 고려하면 종합지표에서 누가 왕좌에 오를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것이다.
양사 주가 전망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이 교차한다. 최근 전방 AI 투자가 과열되면서 거품에 대한 걱정이 증시 발목을 잡고 있긴 하나 양사 모두 4분기에도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 연말 결산을 전후해 양사 주가의 동반 랠리가 재개될 거란 관측이 많다.
삼성전자 주가의 경우 기저효과를 무시하기 어렵다. 올해 상당한 주가 수익률을 기록했으나 작년 연말 이후 하락세가 워낙 깊었던 탓이다. 연초에 비해 2배 이상 주가가 올랐지만 전 고점을 기준 상승폭은 20~30% 수준이다. 실적과 주가가 회복기에 접어드는 때 HBM 추격 성과와 파운드리 사업부 가치 재조명이 따라붙는 형국이라 상승 여력이 더 높을 거란 기대감이 있다. 내년부터 테슬라·애플 등 대형 고객사와의 비메모리 협력이 본격화한다는 점도 잠재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반대로 순수 메모리 공급사인 SK하이닉스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실질 투자지표에서 경쟁사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가가 지난 3년여 동안 HBM 수혜를 고스란히 반영했다고 해도 여전히 마이크론과 같은 해외 경쟁사에 비해 저평가돼 있기도 하다. SK그룹에서도 미국증시 예탁증서(ADR)를 활용해 재평가를 유도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논의 중인 금산분리 완화 등 규제 완화 가능성도 주가를 밀어올릴 수 있는 소재로 회자 중이다.
외국계 투자은행(IB) 한 관계자는 "국내외 기관들도 올 연말이나 내년 초를 전후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동반 랠리를 재개할 것으로 내다보고 대기 중"이라면서 "실시간으로 실적 전망이 계속 올라가는 가운데 양사 밸류에이션 논리도 바뀌고 있다. 누가 대장주가 될지 관심이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