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어음 날개 단 증권사들, 롯데손보 인수 저울질…당국 제재에 ‘속도전’ 가능성
입력 2025.12.16 07:00
    IMA·발행어음 인가 확대에 증권사 체질 변화
    증권사들 메리츠 모델 벤치마킹 하면서
    보험사 M&A 수요 늘어나는 가운데
    당국 제재에 매도인 거래 압박 커져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증권사들이 롯데손해보험 인수를 놓고 본격적인 셈법에 들어갔다.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IMA) 인가를 기반으로 투자은행(IB) 기능을 확대하면서, 이를 뒷받침할 보험사 확보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메리츠금융의 성공 사례가 증권사들의 전략 전환에 불을 붙였고, 금융당국 제재는 매도자인 사모펀드에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거래가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4일 투자금융업계에 따르면 롯데손보의 대주주인 JKL파트너스는 잠재 인수자들과 물밑 접촉을 이어가고 있다. 이전과 같은 예비입찰–본입찰로 이어지는 공개매각 방식보다는, 인수 의지를 보이는 전략적투자자(SI)들과 개별적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보다 유연한 방식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절차보다 성사 가능성에 방점을 찍겠다는 전략이다.

      한 M&A업계 관계자는 “과거 매각 추진 당시 2~3조원대 가격 기대가 형성되면서 인수자들이 부담을 느낀 전례가 있다”며 “이번에는 외부에 노출을 최소화한 채 조건이 맞는 상대를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롯데손보의 유력 인수 후보는 우리금융 등 일부 금융지주에 국한됐다. 그러나 정부 출범 이후 IMA·발행어음 인가가 확대되면서 판이 달라졌다. 대형 증권사들이 사실상 은행에 준하는 수신 기능을 확보하게 되면서, 대규모 자기자본 투자를 안정적으로 운용할 구조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메리츠금융은 증권사가 딜을 소싱하고 보험사가 이를 소화하는 구조를 통해 빠르게 몸집을 키운 대표적 사례다. 메리츠금융은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순이익이 2조원을 넘어섰고, 증권·보험 간 유기적 결합 모델은 업계의 벤치마크로 자리 잡았다. 버크셔 해서웨이 역시 보험 자금을 기반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확장해온 대표적 글로벌 사례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DB, 흥국 등 개인 최대주주 체제를 가진 금융사들뿐 아니라, 보험 계열사가 없는 증권 중심 금융그룹들도 보험사 인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IMA를 확보한 한국금융지주, 발행어음 사업권을 보유한 키움증권·신한투자증권·하나증권 등이 대표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발행어음 사업자는 대규모 자금을 장기로 운용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 만큼, 안정적인 투자 파트너가 필요하다”며 “선순위를 담당할 보험 계열사가 있으면 대체투자나 구조화 딜에서 속도와 규모 모두를 가져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제재는 롯데손보 매각의 또 다른 변수다. 금융당국은 최근 경영실태평가를 통해 롯데손보에 적기시정조치를 부과했고, 롯데손보는 절차의 적정성을 문제 삼아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업계 일각에서는이복현 전임 원장 시절 비계량 평가를 근거로 한 제재의 타당성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로 인해 매각이 지연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그러나 매도자 측은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제재의 상당 부분이 사모펀드가 대주주라는 점에 기인한 측면이 있는 만큼, 증권사 등 전략적투자자가 인수할 경우 금융당국과의 관계 설정이 보다 수월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롯데카드 등 과거 사례에서 확인됐듯,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대주주 체제에 상대적으로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왔다는 점에서 JKL파트너스 역시 가격 고집보다는 거래 성사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사모펀드업계 관계자는 “손해보험 매물이 시장에 자주 나오는 상황이 아니다”며 “제재 이슈로 매도자의 눈높이가 일부 조정될 수 있다는 점은 오히려 거래 성사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