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증권의 'SPC 우회' 유상증자…배경엔 이중레버리지 부담
입력 2025.12.17 07:00
    지주 대신 SPC가 자금 조달…형식은 유상증자이지만
    이중레버리지·바젤Ⅲ 규제 비켜간 자본 확충 구조
    CPS 활용해 자기자본 인정…조기 상환 가능성은 변수
    키움·한투證 활용 가능성…당국·신평사 주목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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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메리츠증권이 연말을 앞두고 이례적인 방식의 자본 확충에 나섰다. 표면적으로는 유상증자지만, 자금 조달 경로와 구조를 뜯어보면 통상적인 금융사의 자본 확충 공식과는 결이 다르다. 자본비율 개선이라는 목적은 같지만, 그 과정에서 지주사의 직접적인 자본 투입 부담을 '비가시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메리츠증권의 이번 자본 확충은 메리츠금융지주가 지배하는 특수목적법인(SPC) '넥스라이즈제일차'를 통해 이뤄진다. SPC는 이달 11일 총 5910억원 규모의 사모사채와 자산담보부대출(ABL)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이 자금으로 메리츠증권이 발행한 전환우선주(CPS)를 인수한다. 메리츠금융이 직접 현금을 투입하는 방식은 아니다.

      SPC는 2년물 사모사채 2010억원(금리 4.0%), 5년물 3900억원(4.5%)을 발행한다. 5년물에는 발행 3년 이후부터 콜옵션이 붙어 있어, 시장에서는 사실상 만기를 3년 안팎으로 평가한다. 조달금리를 단순 가중평균하면 4%대 초중반 수준이다.

      다만 이 같은 구조는 은행 계열 금융지주였다면 사실상 선택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크다. 비은행 금융지주인 메리츠금융이기 때문에 가능한 설계라는 해석이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 관계자는 "일반 기업들 사이에서는 SPC를 활용한 유사 구조가 종종 활용돼 왔지만,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가 이런 방식으로 유상증자를 진행한 사례는 없다"며 "상당히 신선한 접근"이라고 말했다.

      왜 굳이 SPC였나…지주 부담은 드러내지 않고, 자본은 늘렸다

      메리츠증권이 이런 구조를 택한 배경에는 금융지주 체제 특유의 규제 부담이 있다. 금융지주가 자회사 증권사에 직접 증자할 경우, 지주사의 이중레버리지비율이 즉각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이중레버리지비율은 지주사가 차입 등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자회사를 지배하고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금융당국은 통상 130% 이내 관리를 요구한다.

      지주가 직접 나서지 않고 SPC를 중간에 둔 것은 이 지표에 즉각 반영되지 않도록 설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형식상 SPC가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해 증권사에 투입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지주사의 재무제표에는 직접적인 차입이나 자본 투입이 드러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비은행 금융지주'라는 메리츠의 지위를 활용해, 금융지주회사 규제와 자본 규제 사이의 경계선을 설계에 반영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 증권사 RM은 "지주가 직접 증자에 참여하면 이중레버리지 관리 부담이 곧바로 발생한다"며 "SPC를 활용하면 자본 확충 효과는 가져가면서도 지주 차원의 부담은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보통주 대신 CPS…자본 인정과 상환 가능성의 줄타기

      증권사 입장에서 자본 확충은 단순히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바젤Ⅲ 체계에서는 자본의 성격과 손실흡수 능력, 만기 구조까지 함께 평가된다. 메리츠금융은 은행 계열이 아닌 비은행 금융지주로, 바젤Ⅲ 규제를 동일한 강도로 적용받지는 않는다. 이 점이 SPC와 CPS를 결합한 이번 구조를 가능하게 한 배경으로 지목된다.

      메리츠증권이 보통주가 아닌 CPS를 발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CPS는 회계·규제상 자기자본으로 인정받으면서도, 지배력 희석이나 단기 현금 부담을 조절할 수 있다. 증권사의 순자본비율(NCR) 개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이번 거래는 SPC가 발행한 사채에 콜옵션이 붙어 있어, 조달 구조 전반이 영구자본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본으로는 인정받지만, 일정 시점 이후 상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다.

      합법과 규제 취지 사이"메리츠니까 가능했다"는 평가

      업계 평가는 엇갈린다. 현행 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금융사 출자 규제의 취지와 완전히 부합하는지는 애매하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보면 지주 영향력 아래에서 조달된 레버리지가 증권사의 자기자본으로 이전된 구조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앞선 증권사 RM은 "지주가 설계한 구조를 통해 자회사 자본을 키운 셈"이라며 "신평사들은 단순 이중레버리지비율 수치가 아니라, SPC 구조와 신종자본 성격 등을 반영한 '조정 이중레버리지비율' 관점에서 이 거래를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 수치에 반영되지는 않더라도, 구조적 레버리지로 인식될 소지는 남아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금융당국과 신용평가사들은 금융사 자본 확충을 둘러싸고 형식보다 실질을 중시하는 기조를 강화해 왔다. 유사한 구조가 반복될 경우, 감독 기준이나 평가 잣대가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이번 구조가 메리츠증권의 자금 조달 역량과 의사결정 방식이 결합된 결과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SPC 설계와 조달 금리, CPS 조건을 동시에 맞춰야 하는 구조인 만큼, 시장과 내부를 동시에 장악하지 않으면 구현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앞선 관계자는 "규정을 세밀하게 분석해 법적 자문을 받아 가능한 경계선까지 밀어붙이는 방식은 메리츠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라면서도 "키움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다른 비은행 증권사들까지 유사 구조가 누적될 경우 당국과 신평사의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