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갈 때는 묻혔던 위험…채권시장 급랭이 드러낸 민낯
입력 2025.12.24 07:00
    취재노트
    상반기 과열 속 중개·운용 혼합 구조 확산
    금리 반등에 북 손실 직격…리스크 관리 한계 노출
    중개 조직 축소로 이어진 채권시장 구조적 취약성
    현대차증권 개편, 묻혀 있던 위험 드러낸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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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현대차증권의 조직개편은 시장이 얼마나 안 좋은지 보여주는 신호탄”(한 채권운용 관계자)

      최근 현대차증권이 채권사업실 규모를 절반 가까이 축소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시장에 적잖은 파장이 일었다. 급작스럽고도 큰 폭의 조직개편 탓에 경영진 간 이견ㆍ내부 갈등설 등 여러 해석이 쏟아졌지만, 정작 업계는 논란보다 이번 일이 시장 상황을 드러낸 단편적 징후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금리 급등으로 누적된 손실이 채권업계를 짓누르는 가운데, 결국 터질 것이 드러났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지난 18일 현대차증권은 채권 관련 부서를 대폭 축소하는 조직개편과 인력 조정에 나섰다. 기존 채권사업실 산하 4개 팀 가운데 채권금융1·2팀과 캐피탈마켓팀을 폐지하고, 채권운용팀을 새로 꾸리는 구조다. 이에 따라 채권사업실은 멀티솔루션팀과 채권운용팀으로 중개와 운용 2개 팀체제로 재편된다. 인력 규모는 40명에서 20명으로 절반가량 줄어들며, 폐지 팀 소속 계약직 인력의 계약은 내년 2월 말 종료될 예정이다.

      이번 조직개편의 핵심은 채권 중개 조직의 대폭 축소다. 기존에 4개 팀이 분담해 온 중개 기능은 사실상 멀티솔루션팀 1곳으로 통합되면서, 기존 중개 조직의 역할과 규모가 크게 축소됐다. 현대차증권은 “중개 업무를 일원화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조직개편을 둘러싸고 시장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제기됐다. 내부 임원 간 갈등이나 대표이사의 결단에 따른 조치라는 등의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돌았지만, 업계 전반은 그 배경을 악화된 시장 환경에서 찾는 분위기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현재 실적과 시장 여건을 감안하면 기존 네 개 팀 체제를 유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채권 중개시장은 과열에 가까웠다. 여전채 등 주요 발행물에 대한 수요가 넘치면서, 중개 인력은 기관투자자들의 의향을 사전에 확인하기보다 북(계정)을 활용해 물량을 먼저 확보한 뒤 재매각(셀다운)에 나서는 방식을 택했다. 사전 수요를 확인하는 사이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판단과 함께, 운용 수익까지 노린 전략적 선택이었다. 중개 수수료에 운용 성과가 더해지며 일부 인력의 성과급이 수백억 원대에 달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들어가면 이기는 장세’였던 만큼, 이러한 구조의 취약성은 크게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

      하지만 상반기를 지나 금리가 반등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5월 2.2%대까지 내려갔던 국고채 3년물 금리는 6월 들어 2.4~2.5%대로 상승했고, 북에 담겨 있던 채권 가격은 하락하며 평가손실로 이어졌다. 7~8월에도 이 같은 흐름이 이어졌는데, 업계에서는 이 시기 적절한 손절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피해가 더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채권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약세를 보이기 시작하면 통상 손절 등을 통해 리스크 관리에 나서기 마련”이라며 “금리가 과도하게 올랐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일시적인 반등을 기대하는 시각이 많았지만, 금리가 일방적으로 상승하면서 대응 시기를 놓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10월 이후 은행채·여전채 약세가 본격화되면서 이러한 취약성은 더욱 뚜렷해졌다. 거래량이 줄어든 가운데 북 손실까지 확대되자, 중개와 운용 기능이 뒤섞인 일부 증권사의 채권 사업부 손실도 눈에 띄게 커졌다. 특히 중소형사의 경우 중개 인력 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충격이 더 크게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일부 증권사들이 중개 조직 축소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으며, 현대차증권의 조직개편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해석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현대차증권의 조직개편을 단순한 인력 조정이나 일회성 판단으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금리 인하 기대가 강하던 시기에는 중개와 운용이 뒤섞인 구조 속에서 위험이 수면 아래에 머물렀지만, 시장 환경이 바뀌자 그 부담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수요가 확인되기 전에 북으로 물량을 먼저 확보하는 관행이 이어졌고, 금리가 반등하자 그 부담이 고스란히 손실로 돌아왔다”며 “현대차증권 사례를 계기로 추가적인 조직 조정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채권업계의 부담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준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기대가 당초보다 늦춰진 데다, 은행채 발행 부담과 수급 불균형이 겹치면서 시장 심리가 단기간에 회복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금리 인하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 있는 만큼, 현재의 위축된 분위기가 장기화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앞선 관계자는 “당장은 거래 환경이 녹록지 않지만, 내년을 전후로 한 금리 인하 기대는 남아 있다”며 “시장 여건이 점진적으로 나아지길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