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의 이사회 장악, 내년 기대됐지만 예측 '안갯속'
이기려면 막대한 돈·시간 필요…전략 다시 고민할까
수익성 문제 크지 않아…신뢰 회복 및 명분 확보 전제
-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햇수로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자금력과 명분을 앞세워 우위를 점하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대응할 수를 찾는 양상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시간은 연합의 편이란 시각이 많았다. 양측의 지분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며 해가 거듭할수록 이사회의 무게추가 연합 쪽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등장하면서 판이 바뀌었다. 지난달 고려아연은 미국 대규모 제련소 건설 계획과 함께, 미국 정부 등이 참여한 합작사(Crucible JV)를 대상으로 3조원 가까운 신주를 발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최 회장은 단숨에 10% 이상의 새 우호주주를 맞으며 연합과의 지분율을 2%포인트 이내로 좁혔다.
연합 측은 이에 반발하며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는데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이어 환율 변동에 따른 자본시장법 상 발행가액 제한 규정 위반 가능성, 신주 발행 변경 등기 지연 등 문제도 제기됐으나 흐름을 돌리기엔 부족했다. 올해 주주총회에서 양측의 대등한 표대결이 펼쳐지게 됐다.
연합이 3월 임기 만료를 앞둔 사외이사 6명 중 네 석을 차지할 경우 이사회는 1석 차이로 좁혀지고, 2027년 이후부터는 역전이 가능했다. 그러나 미국 변수로 상황이 달라졌다. 2027년 주주총회부터는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2석을 3%룰을 적용해 선임한다. 우호 주주가 많은 최 회장에 유리하다. 해를 거듭해도 연합이 이사회를 장악하긴 어려워진 셈이다.
-
연합이 다시 이전의 우위를 되찾기 위해선 결국 지분율을 끌어 올려야 한다. 그러나 양측의 우호주주와 국민연금, 블랙록과 뱅가드 등 투자사를 제외하면 유통 물량이 적다. 지금부터 다시 8%가량의 지분을 사모으고 이사회 의석을 늘려가는 것이 녹록지 않다.
사실 연합 측은 수세에 몰린 최윤범 회장이 꺼낼 카드가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될 것이란 점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 회장의 전략을 막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앞으로 지분을 늘려가면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10년 대계를 내다봤다지만 불확실성이 크다. 두 나라가 낀 기업을 흔들기도 부담스럽다.
연합 입장에서는 중대한 변수가 생긴 만큼 향후 전략을 재점검할 만한 상황이 됐다. 경영권을 탈환하기 위해 치열한 힘겨루기를 이어갈 수도 아니면 멈출 방도를 찾을 수도 있다. 연합은 작년 하반기에도 꾸준히 고려아연 지분을 매집하고 있었지만 유상증자 발표 후에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만일 연합이 분쟁을 종료하기로 가닥을 잡더라도 수익 면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 경영권 분쟁 전 50만원대에 머물렀던 고려아연 주가는 지금도 100만원을 넘어 유지되고 있다. 공개매수(주당 83만원)에 추가 매수 가격까지 감안해도 매각 시 이익을 낼 수 있는 구간이다.
물론 연합이 지분을 시장에 팔기 시작하면 '경영권 분쟁' 소재는 사라지고 주가는 오버행 부담에 눌릴 수 있다. 매각 작업을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려 수행할 수밖에 없다. 반면 분쟁 종료로 인해 회사의 재무부담이 완화되고 주가와 주주가치에 득이 될 것이란 낙관론도 있다.
고려아연 측과 출구전략을 모색하거나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하는 안도 고려할 만하다. 연합 측 지분을 회사가 사주거나 제3의 투자자가 인수하는 식이다. 분쟁 과정에서 고려아연의 가치에 주목하는 미국 기업이 많아졌다는 후문이다. 자문 업계에선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 거래 일감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연합이 지분을 줄이기 시작하면 분쟁이라는 테마가 사라지지만 회사의 지정학적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주가가 크게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핵심 광물 수요가 많은 미국 기업을 대상으로 지분 매각을 타진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는 양측의 신뢰 회복이 전제다. 1년여의 진흙탕 공방으로 양측의 감정은 격해질 대로 격해진 상태다. 견원지간인 영풍과 고려아연의 꼼수에 분노해왔던 MBK파트너스가 반색하며 테이블로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뜻을 모으려면 서로 그럴 수밖에 없는 명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합은 회사의 문제를 알리는 데 기여했고, 회사는 그간의 제안들을 바탕으로 사업을 발전시켜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는 것이다. 실제 연합이 움직인 후 최윤범 회장의 무리한 경영 행보가 세상에 알려졌다.
과거 MBK파트너스는 UCK파트너스와 손잡고 오스템임플란트 공개매수에 나선 바 있다. 먼저 들어와 있던 행동주의펀드 KCGI의 존재가 걸림돌이었다. 인수자 측은 KCGI의 캠페인이 경영권 매각 결정에 큰 역할을 했다고 언급했고, 얼마 후 KCGI는 투자자(LP) 선관주의를 명분으로 투자회수를 결정했다.
연합 내 역학관계는 변수다. 영풍은 MBK파트너스에 고려아연 경영권을 넘기는 방식의 협력 구조를 짰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고려아연 경영권이 더 필요한 곳은 영풍이고, MBK파트너스는 회수가 최대 목표다. 영풍은 미국 변수가 대수롭지 않지만, 미국 LP가 많은 MBK파트너스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연합 내 경영협력계약에 따르면 오는 10월(공개매수 완료 2년 혹은 이사회 과반확보 중 앞선 날) MBK파트너스는 영풍 측 지분 일부를 현 주가보다 한참 낮은 가격에 사올 권리(콜옵션)를 행사할 수 있다. 이 경우 MBK파트너스는 한결 여유를 갖고 전략을 검토할 수 있게 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은 연합과 화해 논의를 하고 있지 않지만 주주총회에서 원하는 바를 얻으면 화해 협상을 해보자는 쪽으로 선회할 수도 있다"며 "MBK파트너스도 콜옵션을 행사하게 되면 더 여유로운 위치를 점하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