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상법개정이 ADR과 충돌?…국회가 막을 수 없지만, 주주 설득은 회사 몫
입력 2026.01.08 07:00
    SK하이닉스 ADR 부상하며 '소각 일변도' 원칙 완화
    예외 열려도 정관변경·주총표결·이사회 결의 절차 필요
    자사주 5% 이상 상장사 70여곳…지주사 선택지 좁아
    손쉬운 우회 수단으로 비치면 주주 반발·소송 불가피
    "소각보다 나은 주주가치 제고 수단"…주주 설득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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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3차 상법개정안의 자사주 소각 원칙이 일부 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각을 기본으로 하되, 미국주식예탁증서(ADR) 발행이나 인수합병(M&A) 등 예외적 활용 가능성을 열어두는 쪽으로 논의가 선회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다만 자사주를 예외적으로 활용하려면 정관 변경과 주주총회 승인 등 절차를 통해 주주를 설득하고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변함이 없을 전망이다. 

      국회에 따르면 여권은 최근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3차 상법 개정안 처리를 앞두고 예외적 활용을 조건부로 허용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일각에서 소각 외 방안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주식시장 저평가 해소라는 당초 입법 취지에 반하는 것은 물론 헌법상 재산권·경제 활동의 자유와 충돌 가능성을 고려해 규율 방식으로 가닥을 잡는 것 아니겠느냐는 전망이다. 

      'SK하이닉스 ADR'이 화두로 떠오르며 정치권 시각이 다소 유연해졌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동종 업계 글로벌 밸류에이션과의 괴리를 해소해 주주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현실적 사례가 제시된 덕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는 글로벌 선두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데 상장 시장과 투자자 기반이 다르다는 이유로 3위 마이크론에 비해 기업가치가 저평가된 상태다. 양사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준 멀티플(배수)이 통상 마이크론 절반 정도에 형성돼왔다. 자사주를 ADR에 활용하면 해외 자금풀을 유치해 가격차를 해소하는 식으로, 단순히 소각했을 때보다 더 큰 주주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처분 규정을 신설하되 소각 중심 체계로 일원화하겠다는 기류가 강했다. 법 개정을 주도하는 더불어민주당 측 논리 자체도 명쾌하다. 자사주는 국제회계기준(IFRS) 상 자본 차감 항목인데, 이미 차감된 자본을 최대주주 등 특정 주주 몫처럼 써온 모순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소각만이 답'이라는 식 결론으로 치달으며 ADR이나 M&A 등 다른 주주환원 경로까지 봉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게 쏟아졌다. 

      법안 처리를 코앞에 두고 주주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이 고려되는 점은 다행이다. 그러나 이 자체로 기업들의 안고 있는 자사주 처분 부담이 해소되긴 어렵다. 지배력 유지·방어와 같은 특정 대주주 이해관계만을 위한 활용이 아니고 장기적으로 주주에게 더 많은 몫을 돌려주기 위한 선택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과제는 그대로 남는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자사주 소각이 원칙이라 해서 ADR 발행을 막지 않겠다는 것일뿐 원칙에서 벗어나는 활용을 위해선 주주 동의를 구하도록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자사주를 경영상 목적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관 변경이 우선돼야 하고, 이후 주주총회와 이사회 결의를 거치는 등 절차를 지켜야 한다는 게 법안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한 번 사들인 자사주는 미발행주식과 동일하니 ▲신주 발행에 준하는 이사회 결의, 공시 등 주주보호 절차를 적용하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는 얘기다. 개정안이 통과하면 지분 교환을 통한 경영권 방어나 전략적 제휴를 포함해 유사시 조달 수단으로서 묵혀두는 행위 등은 대부분 주주 반발에 가로막히게 될 것으로 분석된다.  

      대형 법무법인 한 관계자는 "주총을 통해 정관 변경을 승인받는 것까진 가능해도 이사회 결의까지 겹겹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규제를 피하려고 우회방안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작년 통과한 개정상법으로도 이사 충실의무 범위가 확대되면서 주주대표소송 위협이 커졌다. 겹겹이 절차도 지켜야 하고, 법률적으로도 기업 스스로 정당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해졌다"라고 전했다. 

      기발행 자사주가 5~10% 이상 쌓여 있는 기업들로선 고민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지배력 관리와 무관하고 소각하는 것보다 우월한 주주가치 제고 효과가 있다는 점을 직접 입증하지 못하면 소각 의무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 9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자사주 비중이 5% 이상인 국내 상장사는 70여곳에 달한다. 비중이 20%를 훌쩍 넘는 롯데지주나 SK㈜부터 7.5% 수준인 ㈜한화까지 대형 그룹사 지주사 및 지주사격 회사 전반이 여기에 해당한다.

      SK하이닉스의 ADR 발행설을 겨냥해 미국·유럽·홍콩 등 해외 증시에 예탁증서(DR)를 발행하는 방안도 검토되지만 대체로 성공 확률이 낮다는 평이다. 글로벌 피어(Peer) 밸류에 비해 저평가됐고 뚜렷한 대기 투자수요가 있다고 특정할 수 없다면 소각이 싫어 우회하려는 움직임으로 비칠 수 있다. 외국계 투자은행(IB)은 물론 여권 내에서도 메모리 반도체 대장주 수준은 돼야 DR로 저평가 해소에 나선다는 논리를 내세울 수 있을 거라 보고 있다. 

      당장 시장성 조달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경우 교환사채(EB) 발행에 사용하거나 증권사와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을 체결하는 방안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EB나 PRS는 지난 2년 동안 조달 금리를 낮추거나 부채비율 관리를 위한 대안으로 쓰여왔다. 당장 자금 수요도 크지 않고, 마땅한 투자처도 보이지 않는데 자사주를 값싼 조달 수단처럼 쓰려고 하면 주주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대기업 재무팀 한 실무자는 "작년 3차 상법 개정안이 발의된 직후 자사주로 EB를 찍으면서 이사회에서 근거 자료를 만들고 외부 자문을 받느라 진땀을 뺐다"라며 "수년째 적자인 데다 자체 조달이 안 되는 상황이라 별 문제는 안 됐지만, 법 개정 후로는 허들이 더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수년 동안 M&A나 신사업 투자 성과가 전무한데 주가 관리마저 소홀했던 기업들이 가장 곤란해질 거란 시각도 있다. 자회사 지배만을 목적으로 설립된 순수 지주회사 중 승계 전략이 필요한 곳은 외통수에 놓였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자사주 소각으로 당장 현금이 유출되는 등 재무 타격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쌓아둔 자사주 비중 만큼 중장기 자본정책 옵션이 통째로 사라지고 단기적으로 주가만 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증권사 한 고위임원은 "사업 회사들의 경우 M&A나 신사업 투자처를 만들어내서라도 자사주 사용처를 마련하려 분주한데, 지주사들은 주가만 오르면 골치 아플 것"이라며 "국내 상장사 대부분이 언젠가 써먹을 요량으로 자사주를 쥐고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플랜B를 마련할 수 있느냐에서 입장이 갈린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