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은행' 설립 논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나
입력 2015.11.18 07:00|수정 2015.11.18 07:00
    ⑥정부, 선박은행 설립 의지 크지 않아
    해양금융종합센터·해양보증보험으로 격하
    대형선박 확보 위해 설립 필요
    • [편집자주] 구조조정의 파도가 조선업계를 넘어 이제 해운업계로 몰아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급조되고 실효성 논란이 큰 설익은 정책들만 거론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늑장대처, 낮은 업종 이해도, 방향성 상실과 미숙함을 탓하는 목소리가 높다. 인베스트조선은 국내 해운업계가 처한 구조적인 문제점, 적절한 대처 방안에 대해 진단한다.

    • 고효율 선박을 직접 건조해 소유하는 '선박은행(Tonnage bank)' 설립의 필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 논의는 7년째 매듭지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의지가 약해지고 있어 선박은행 설립은 내년에도 요원해질 가능성이 큰 분위기다.

       ◇ 신규발주·고용선 선박 부담해소 가능…정부는 예산부족 탓하며 기피

      선박은행 설립에 관한 논의는 지난 2008년 시작됐다. 어려움에 처한 선사에 유동성을 지원하고, 국내 선사가 단독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고가의 선박(Eco선 등) 확보를 도와 선사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목적이었다.

      이후 큰 진전이 없다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선박금융공사 설립'을 부산지역 7대 공약 중 하나로 내걸며 재조명받았다. 그러나 선박금융공사는 해양보증기구로 격하돼 논의됐고 결국엔 해양보증보험으로 기능이 최소화됐다. 자연히 선박은행 설립도 관심 밖으로 벗어났다.

      대규모 예산소요가 매번 발목을 잡았다. 정부는 지난해에도 1조원 규모의 선박은행 도입 계획을 발표했지만 무산됐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척당 약 2000억원인 1만8000 TEU급의 고효율 선박 10척을 발주하려면 2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선박은행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선사들의 신규 또는 중고선박 발주를 돕는 기능이 하나다. 선사들의 고용선 선박을 매입해 다시 저용선 선박으로 매각하는 역할도 수행이 가능하다. 이때 발생하는 용선료 차익은 선사들이 장기간에 걸쳐 상환하도록 해 당장의 상환 부담을 덜어주는 형태다.

      선박 발주의 경우 선박은행이 직접 나서서 선박을 건조하고 소유하는 구조다. 선사는 선박은행에 합리적인 수준의 용선료를 통해 고효율 선박을 확보하는 장점이 있다. 선박은행이 선박을 소유하기 때문에 선사가 지는 선박에 대한 부담도 적다.

      선박은행은 선가가 선박 인수 시보다 상승하는 호황기에 선박을 팔아 보유·관리·운영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

      현재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의 자회사인 선박자산운용이 선박은행의 일부 기능과 유사한 역할을 소화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선박자산운용의 역할은 선박펀드를 조성해 해운사들의 선박 발주를 돕는데 그치고 있다. 해운사들의 중고선박을 인수하기도 하지만 지난 4년간 지원규모가 4600억원에 불과했다.

    • ◇ 업계 "고효율 선박 확보 위해 필수"…논의 주도권 쥘 주체 모호

      한진해운·현대상선을 중심으로 고효율 선박발주에 대한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머스크는 글로벌 해운시장의 선박 추세를 18000 TEU급으로 바꿔놓았다. 국내 선사들은 세계 해상운송의 15% 차지하는 머스크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200척에 달하는 초대형 선박(18000 TEU급) 시장은 진입장벽이 높아 초기 진입여부가 중요하다"며 "선가·업황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지만, 얼라이언스 내 지위약화를 방어하기 위해서도 진입이 필수다"고 밝혔다.

      특히 국내 선사들은 아시아 국가(한·중·일) 중 유럽권 선사들의 공격에 가장 취약하다. 중국과 일본은 자국 선사에만 화물을 싣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내년에 확장되는 파나마운하도 대형선박 시장에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에 파나마운하가 확장되면 13000 TEU급 이상의 선박들도 통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박은행 설립에 대한 논의는 내년에도 본격화되기 힘들 전망이다. 지난 2012년 부활한 해양수산부가 선박은행 설립을 얼마나 추진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선박은행에 금융권 출자를 끌어내기 위해선 시일이 걸리는 법안 수정도 필요하다. 설립 논의를 이끌어 갈 명확한 주체가 필요한 또 하나의 주된 이유다.

      조선업은 수출입은행이 확실한 주도권을 쥐고 선박금융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반해 해운업은 자산관리공사(캠코), 해양금융종합센터, 선박운용회사, 해양보증보험 등 언뜻 보기에도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작은 규모의 기관들만 곳곳에 흩어져 있을 뿐이다.

      이러다 보니 업계 관계자들마저 각각의 기관의 역할을 놓고 혼선을 빚고 있다. 그런에도 선박은행 설립에 대한 정부 의지는 약해져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