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IBM 메인프레임, 금융시장서 경쟁력 잃은 까닭은
입력 14.07.07 08:40|수정 14.07.07 08:40
[분석]독점·폐쇄적 구조…공개경쟁으로 성장한 유닉스에 '발목'
메인프레임 고객 유지에 총력…가격 후려치고 행장에 직접 이메일
"KB 사태서 분란 일으킨 한국IBM 책임 피할 수 없을 것"
  • [07월04일 13:27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한국IBM의 금융회사 주전산기 시스템인 메인프레임은 지난 2006년까지만 해도 국내 은행 대부분이 사용하는 '절대 강자'였다. 8년이 지난 지금 메인프레임을 사용하는 은행은 국내 7대 은행 중 3곳뿐이며, 이 중 1곳은 오는 10월 유닉스로 전환한다.

    금융권 IT 관계자들은 이를 '시대에 뒤처진 메인프레임의 몰락'이라고 평한다. 메인프레임의 몰락은 국내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려왔던 한국IBM의 위상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이번 KB국민은행 주전산기 사태를 촉발한 셜리 위-추이 한국IBM 대표의 이메일은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이건호 KB국민은행장에게 발송됐다.

    ◇ 폐쇄적 메인프레임 vs 개방적 유닉스…시대 변화 따라 평가 역전

    메인프레임과 유닉스의 관계는 쉽게 풀어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의 관계와 비슷하다. 메인프레임은 폐쇄적 구조로 IBM만이 개발 및 유지보수가 가능하다. 유닉스는 개방형 시스템으로 오라클·SUN·HP 등 다수의 개발사가 공급하고 있다.

  • 2000년대 중반 이전엔 메인프레임이 고용량·고성능 시스템으로 주목받았다. 유닉스는 개방형인 만큼 해킹 우려에 취약하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다수의 개발사가 공급에 참여하며 유닉스시스템의 보안성과 성능이 급격히 성장했다. 여기에 경쟁으로 인해 시장 가격이 전반적으로 낮아지며 2006년을 전후로 은행들이 유닉스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모바일뱅킹 서비스는 메인프레임의 단점이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메인프레임은 구조가 견고한 대신 유연성이 떨어진다. 모바일 등 새로운 대 고객 채널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메인프레임은 이에 대응하기엔 너무 무겁고 느렸다는 평이다.

    유닉스가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하자 한국IBM 역시 유닉스시스템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유닉스 사업부문은 공개된 경쟁시장인 만큼 메인프레임보단 수익성이 떨어질 거란 게 시장의 분석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IBM은 메인프레임을 사용하고 있는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데 총력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 메인프레임 가격 낮췄지만…'독점적 IBM에 종속 싫다'

    국민은행은 현시점에서 한국IBM 메인프레임의 가장 큰 고객이다. 메인프레임의 특성상 국내에선 대형금융기관 외 수요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민은행은 한국IBM이 지켜내고자 했던 '최후의 보루'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메인프레임을 지키기 위한 한국IBM의 선택은 '가격 후려치기'였다. 일반적으로 유닉스가 메인프레임 대비 비교적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난해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논의 과정에선 반대였다. 유닉스로의 전환을 결정한 지난해 11월 국민은행 경영협의회는 "비용 부분에서는 IBM이, 기술적인 부분과 트렌드(추세) 부분에서는 유닉스가 유리했다"고 판단했다.

    위-추위 대표는 이 행장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11월에 제시했던 1870억원보다 300억원 이상 더 낮은 1540억원을 제시했다. IT업계에서는 구축 비용을 낮추는 대신 메인프레임 시장을 유지하고, 운영 비용과 유지보수를 통해 수익성을 높이려는 전략이 아니었겠느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국민은행 경영협의회는 당시 ▲공급자에 대한 종속성 ▲장기 전략 ▲기술적 측면을 참작해 유닉스를 선택했다. 채널 유연성 등 기술적인 측면 역시 반영됐다. 메인프레임을 선택할 경우 2020년까지 한국IBM에 의존해 유연성이 비교적 떨어지는 시스템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이는 이전의 다른 은행들이 유닉스를 선택한 것과 유사한 논리다.

    ◇ "절박했던 한국IBM이 결국 KB 분란 일으킨 것"

    이번 위-추이 대표의 이메일을 한국IBM의 일반적인 영업행태로 보기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다. 2006년 이전까지 주전산기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한국IBM이 편법이라는 지적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한 영업을 할 필요가 없었던 까닭이다. 2006년 이후 유닉스로 전환한 상당수 은행도 일단은 한국IBM을 사업자로 유지했다.

    한 시중은행 IT 담당자는 "2009년 국민은행이 주전산기를 메인프레임을 유지하기로 했을 때 로비 의혹이 일부 제기된 점을 빼면 한국IBM의 영업이 특별히 튄다거나 한 점은 없었다"며 "유닉스도 상당수 은행에 한국IBM이 제공하긴 했지만 캐시카우(Cash-cow)였던 메인프레임 시장이 줄어들고 있는 게 안타까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한국IBM이 이번 KB 사태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거란 지적이다. 다른 시중은행 임원은 "절박했던 한국IBM 대표가 승부수를 띄운 건데 KB의 내부 분열과 행장·회장 징계로까지 판이 커진 것"이라며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이 한국IBM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건 법적 타당성을 떠나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로 읽힌다"고 말했다.

    ◇ 한국IBM,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늦어질수록 '이익'

    일각에서는 한국IBM이 KB 내부에 일부러 분란을 일으키려 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11월 이후 메인프레임 유지를 염두에 두고 비용 및 중도해지 등 일부 조건에 대해 추가 제안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한국IBM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입찰제안서 배포 등을 결정하는 지난 4월 이사회 직전 이 행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주전산기 교체에는 물리적으로 최소 2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국민은행이 지금 당장 교체를 시작해도 메인프레임 계약 만료일인 내년 7월까지 일정을 맞추기 빠듯하다. 계약 만료 후 한국IBM은 국민은행으로부터 교체가 완료될 때까지 매월 89억원의 사용료를 받게 된다. 계약 기간 내인 현재 사용료는 매월 26억원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어차피 유닉스로의 교체가 불가피하다면 일정을 지연시켜 추가 사용료를 받겠다는 전략을 세웠을 수도 있다"며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은 이 점에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현재 한국IBM 메인프레임은 국민은행 외에도 우리은행과 교보생명, 아시아나항공 등이 사용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경우에도 수년 전부터 유닉스로의 교체를 내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매각 이슈와 맞물려 지난해 메인프레임 계약을 연장해 실제 교체까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