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회장, 약속 깨고 하나-외환 조기통합 카드 꺼낸 이유
입력 14.07.07 11:11|수정 14.07.07 11:11
[하나-외환 투뱅크 3년째④]
존재감 줄어든 하나금융…우리證 인수한 NH금융, 턱밑까지 쫓아와
외환銀 컨트롤 한계 체감…"각종 악재 탈출 의도도 있어"
  • [07월04일 17:3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통합을 언급했다. 최근 수익성 악화로 '투뱅크' 체제로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얘기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인수 효과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수익성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존재감도 약해지고 있다. 올해 실적 개선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김종준 하나은행장의 추가 징계 가능성도 열려있다. 이에 노조의 반발을 감수하고서라도 여러 악재를 단숨에 해결하기 위한 김정태 회장의 카드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김정태 회장은 3일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통합을 거론했다. 기자들과의 자리에서 "이제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통합을 논의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은 2012년 외환은행 인수 당시 2017년까지 외환은행의 독립 경영 보장을 약속했다. 3년도 채 되지 않아 약속을 깰 수 있다는 의미이다. 회장이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 이사회 및 은행장들과 충분한 협의를 해봐야 한다고 한 발 물러서긴 했지만 앞으로 두 은행의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 명확히 한 셈이다.

    김정태 회장이 조기통합 카드를 꺼낸 것은 하나금융의 최근 수익성 악화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자산 규모는 늘었다. 2011년 178조원이었던 총자산 규모는 외환은행 인수 직후인 2012년 283조원으로 늘었고, 2013년에는 295조원, 2014년 3월말에는 300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수익성은 가파르게 꺾였다. 2011년 1조2224억원, 2012년 1조602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9339억원을 기록하며 3년 연속 순이익 1조원 달성에 실패했다.

    올 들어서도 상황이 좋지 않다. 1분기 당기순이익은 1927억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30% 이상 감소했다. 2분기에는 다소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3분기에는 동부그룹 구조조정 등 대기업 부실과 금융권 징계 등 악재가 등장하면서 성장세가 다시 꺾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내 금융지주사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지만 하나금융은 주목 받지 못하고 있다. KB금융은 LIG손해보험을 인수하며 손보업 강화에 나섰다. 우리투자증권 패키지를 인수하며 새로 4대 금융지주에 이름을 올린 NH농협금융지주는 자산 규모로 하나금융을 제칠 가능성이 커졌다.

    반면 외환은행을 인수하며 업계 큰 반향을 불러올 것이라 기대했던 하나금융은 제자리에 멈춰있다. 오히려 외환은행의 가치가 인수 당시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2011년 1조6000억원이 넘었던 외환은행의 순이익은 2012년 6600억원으로, 2013년에는 4400억원대로 급감했다.

  • 투뱅크 체제의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외환은행에 대한 경영 컨트롤이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투뱅크 체제라고는 하지만 지주사에서 컨트롤을 잘 했으면 외환은행이 이 정도까지 나빠지진 않았을 것"이라며 "외환은행 컨트롤에 사실상 실패한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노조의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김 회장이 조기통합 카드를 꺼낸 데는 이를 통해 여러 악재들을 뚫고 나가려는 의도가 있다는 의견이다. 임기가 1년 남은 김 회장이 연임을 위해선 은행간 통합만한 업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의 고민 중 하나는 김종준 하나은행장의 거취 문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김종준 행장이 당시 사장으로 있던 하나캐피탈의 저축은행 부당 지원과 관련해 문책 경고 상당의 중징계를 내렸다. 중징계를 받더라도 임기를 채울 수 있지만 향후 3년간 금융권 재취업이 제한돼 연임이 불가능하다. 거기에 KT ENS 협력업체 부실 대출로 최소한 주의적 경고 수준의 징계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태 회장은 김 행장의 거취에 대해 "본인이 판단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이 거론되는 시점에서 연임이 제한된 김 행장은 하나금융에 부담 요소이다. 이에 대해 김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서 악재 수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김종준 행장의 거취에 대해 정확한 시그널을 주지 않다보니 하나은행은 사실상 레임덕 상태이고, 외환은행은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상황이 나빠졌다"며 "김 회장이 각 사에 적합한 경영 컨트롤은 하지 못한 채 조기통합 카드로 이를 환기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수익성이 떨어지고, 지주사 존재감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김정태 회장이 연임을 위해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은행간 조기 통합뿐"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