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 현대百 회장의 '실험'에 주목하는 유통업계
입력 14.09.15 09:00|수정 15.07.22 10:36
[Weekly Invest]
의류·조명·가구 이어 가전 진출도 노려
유통사 제조업 강화 성공 여부 관심
  • [09월10일 12:00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게재]

     

  • 현대백화점이 인수합병(M&A) 시장에서의 보폭을 넓히면서 유통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경기불황 장기화 전망 속에 유통업계의 부진이 이어지자 현대백화점은 제조업을 강화하고 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의 '실험' 성공 여부가 유통업계 전반으로 확대될지도 관심거리이다.

    지난 2011년 퍼시스가 현대리바트에 대해 적대적 M&A를 시도하자 현대백화점그룹이 백기사로 나섰다. 현대리바트 지분을 대거 매입하면서 단숨에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난해 경규한 전(前) 대표가 보유 지분을 대부분 처분하면서 경영권은 현대백화점그룹에 완전히 넘어갔다.

    현대백화점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현대리바트의 경쟁력도 한층 강화했다는 평가다. 특히 현대리바트는 백화점 유통망을 활용, 가구 시장 1위 한샘과의 경쟁 구도를 구축하고 있다. 현대리바트는 현대백화점과 롯데백화점에 16개의 매장을 입점시켰고 한샘과 같은 직영 플래그숍 4곳을 운영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인수 이후 현대리바트의 매출 규모는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고 영업이익의 경우 2012년 32억원에서 2013년 128억원으로 4배 증가했다. 올 상반기에는 이미 249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 지난 한해 실적의 2배 가까이 벌어들였다. 그 결과 올초 1만대였던 현대리바트 주가는 최근 4만원을 넘어섰다.

    의류업체 한섬은 현대백화점에 인수된 뒤 감소했던 매출이 3년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올 상반기에 2367억원의 매출을 기록, 전년 동기(2143억원) 대비 10% 상승했다. 해외업체를 중심으로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의 영향력이 커진 국내 의류업계에서 한섬이 두 자릿수 매출 증가율을 나타낸 것은 선방했다는 평가다.

    한섬의 토종 여성복 브랜드 타임의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했다. 현대백화점은 타임의 올해 매출이 1400억원을 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섬 토종 브랜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 증가했다.

    한섬이 국내 판권을 갖고 있는 해외 의류·잡화 브랜드의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3% 증가했다. 한섬은 최근 2년간 중고가 의류인 쥬시꾸뛰르·일레븐티, 명품으로 꼽히는 발리·지미추 등 9개 브랜드의 판권을 새로 확보했다.

    한때 한섬이 M&A 실패작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2~3년간 투자를 지속하면서 올해부터 현대백화점 인수 시너지 효과가 나기 시작했다는 평가로 바뀌었다. 5월 2만3900원까지 떨어졌던 주가는 현재 3만원대를 회복했다.

    현대백화점은 가전업계에도 계속 노크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현대그린푸드를 통해 글로벌 사모펀드 시티벤처캐피털파트너스(CVC파트너스)와 위니아만도 지분 100%를 매입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하지만 위니아만도 노조의 무리한 요구에 인수를 철회했다.

    현대백화점이 가전 사업에 대한 관심 자체를 끊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현대백화점이 인수를 추진한 위니아만도는 김치냉장고·냉장고·제습기·에어컨·정수기·에어워셔 등 여러 종류의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앞서 지난 4월 인수를 추진했던 동양매직과 비슷한 제품들이 많다. 현대백화점은 가전업과 유통업의 통합 시너지를 지속적으로 노리고 있다.

  • 유통업계는 현대백화점의 '실험'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2010년 ‘비전2020’을 선포하고, 신규업종에 대한 대형 M&A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유통업계 전반의 성장성이 멈춘 상황에서 현대백화점은 제조업을 강화, 유통과 제조의 시너지 확대를 꾀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이 인수한 제조업체들이 자리를 잡을 경우 유통업계의 제조업 강화 움직임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들이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업계가 PB(자체브랜드) 상품을 확대하는 움직임도 제조업 확대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는 소극적 전개"라며 "현대백화점의 경우 사업 확장 범위가 넓고, 앞으로 또 어떤 사업을 전개할 지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취임 11년째를 맞는 정지선 회장에 대한 재평가도 이뤄지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경쟁사인 롯데와 신세계에 비해 프리미엄아울렛, 면세점 사업 등 사업 확장에 뒤쳐진 게 사실이다. 이에 신동빈 롯데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아왔다. 신 회장과 정 부회장과 달리 '홀로서기'가 빨랐던 정 회장이 이제부터 제 색깔을 낼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지선 회장은 외연 확장 대신 안정적인 경영전략을 꾀했고, 그 결과 3대 유통사 중 재무건전성이 가장 우수하다"며 "사업적으로도 '고급화'라는 이미지를 고수한 것이 불황기에 오히려 빛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정 회장의 생각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백화점의 '라이프 스타일'을 구축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평소 심사숙고 후 실행에 옮기는 편인데 최근 행보를 보면 이제 공격적인 경영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